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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소’ 는 酒可飮[주가음] 兵可用[병가용]의 땅이다. 그처럼 경개로도 드러나거니와 지리로 보아도 一夫當關[일부당관]에 萬夫莫開之地[만부막개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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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백 년 몇 천 년 묵어 내려오는 수림에 흙을 볼 수 없는 준엄한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黑龍江山流[흑룡강산류]를 끼었으며 강 건너편에는 깎아세운 듯한 千仞絶壁[천인절벽]이 병풍같이 둘러내렸다. 트인 데라고는 강물이 돌아들어 흘러나가는 아래 위 산과 산이 대치한 사이뿐이다. 그러므로 ‘달리소’로 들어가려면 蜀道[촉도]의 險[험]을 무릅쓰고 뒷산을 넘거나 그렇지 않으면 강에 구유통 같은 원시적의 배를 저어서 올라가야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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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소’ 는 그 지리의 혜택으로 백두산의 北麓[북록], 서간도의 一隅[일우] ─⎯ 마적이 무시로 출몰하는 곳에 있으면서도 그네의 침입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거기에 거주하는 조선 사람은 2, 3가구에 지나지 않고 또 경개를 찾아서 가는 이도 없다. 그것은 중국인인 그곳 지주가 다른 지주보담 횡포가 자심함으로 소작농의 부적지가 되는 것이요 또 모두 생활에 쪼들림으로 어느 겨를에 경개를 찾을 여유를 못 가진 까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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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개는 경개로서 때때로 보는 이의 가슴을 흔들게 된다. 石逕[석경]을 더듬어 뒷산에 오르는 것도 좋거니와 小舟[소주]를 저어 동구로 돌아드는 맛은 길가는 사람으로 한때 나루를 건너는 것이건만 어쩐지 가슴이 벌어지는 것 같다. 푸른 소나무 사이에 진달래가 불긋불긋한 봄날에 배를 저어 오르면 水光[수광]과 天色[천색]이 어우러진 사이에 松影花影[송영화영]이 雲影[운영]과 相映[상영]하여 무어라 말할 수 없는 奇觀[기관]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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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소’ 의 景[경]은 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시를 통하여 어느 때나 좋지만 특히 여름 달밤은 더욱 좋은 것이다. 달 아래 피어 오르는 모깃불 가에 모여 앉아서 강물 소리를 들으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世苦[세고]를 잊어버리는 것도 한 약이 아니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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