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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작품의 영화화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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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5
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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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작품의 영화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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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뷰 ─’와 발성영화가 전세계를 뒤흔드는 이 판에 남들이 실컷 떠들고 난 찌꺼기 문제를 주워가지고 새삼스러이 논의거리를 삼는 것은 필자와 독자가 아울러 부끄러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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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의 세기로는 적어도 20년쯤은 뒤떨어진 조선의 영화계는 이제야 영화이론의 봉화를 들게 된 시기에 이르렀고 문단인이나 일반 영화감상자 사이에도 아직껏 문학과 영화, 소설과 활동사진을 구별치 못하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없으므로 그 경계선을 정확하게 갈라놓고 싶은 생각으로 두어마디 적어볼까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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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조선영화계에도 문예작품의 영화화 문제가 대두하는 모양이요 몇 해 전의 〈개척자〉를 위시하여 〈유랑〉〈벙어리 삼룡〉, 최근에는 〈약혼〉 등이 제작되었다. 〈춘향전〉〈심청전〉〈장화홍련전〉 따위는 고대의 대중소설이라고 칠 것이므로 문제 밖으로 삼고라도 근래에 와서 문예작가들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가지고 영화화하려는 경향이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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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작자들이나 또는 돈벌이를 먼저 염두에 두는 흥행업자들이 문예작품이나 유행소설을 각색해가지고 활동사진으로 박으려는 심리를 세 가지로 해석한다. 첫째는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되었던 소설은 이미 그 내용을 알고 그 중에도 애독한 작품이면 누구나 다시 한 번 다른 형식으로 써보고자 하는 애착심이나 호기심을 포착해가지고 수십 만 혹은 수백 만이나 되는 달아나지 않는 고정된 독자를 끌어서 급조로 영화 팬을 만들려는 데 있다. 흥행상으로는 선전이 영화의 생명인데 막대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다수의 관중을 그 작품의 인기에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이니 업반공배(業半功倍)의 효과를 얻고자 함이요, 둘째는 그 작가를 예술가로서 존숭(尊崇)하거나 그 작품의 내용이 예술적 가치가 있는 점을 취하는 것보다는 이름난 공장의 신용있는 상품의 레테르 모양으로 유행작가의 이름을 내걸어가지고 구육(狗肉)이라도 팔려고 하는 자본가의 이용책이요, 세째로는 머리 골치 아픈 원작 즉 내용의 시비를 슬그머니 원작자에게 전가시켜서 비평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방패막이를 삼으려는 실제 제작자의 돈지(頓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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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문학’과 ‘영화’는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전연 별개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많은 영화론자가 주장해온 묵은 문제다. 영화는 ‘보는 것’ 소설은 ‘읽는 것’이다. 소설 원고는 붓으로 쓰는 것이요, ‘스크린 이란 ‘캔버스’는 카메라로 그려야 하는 것이다. 심경소설이 한 풀이 꺾어진다 하더라도 소설은 심리와 떠나지를 못한다. 오늘날의 소설가가 독자가 염증을 내는 심리묘사를 집어던지고 그 밖에 달리 나타나는 형식을 대신하여 표현하기에 노력한다 하더라도 역시 그 내부 세계의 지배로부터는 탈각치 못할 것이다. 그런데 ‘보는 것’인 영화에 있어서는 그것이 거꾸로 되어 있다. ‘듣는’ 영화가 완성의 경지에 이르러서 가까운 장래에 적어도 연극만한 정도로 인간 내부의 세계까지 파고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영화의 생명은 시각에 호소하는 동작의 묘사로부터 해방될 수 없는 것이다. 이제까지 동서를 막론하고 소설을 영화화 한 이른 바 예술영화의 거의 전부가 실패를 하고 만 것은 (그 실례는 한이 없겠으므로 들지 않으나) 소설과 영화가 각기 별다른 독자의 세계를 점령하고 있으므로 원질상 차이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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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해야만 한다. 번루곡절(煩累曲折)이 중첩한 스토리보다는 명쾌단순한 ‘이야기’로써 만드는 것이 확실히 유익한 것이다. 그 이유는 누누이 말할 것도 없이 복잡한 스토리 때문에 화를 입은 작품이 여간 많지가 않은 것이다. 그 까닭은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영화란 한가지의 표현양식이 소설종류의 표현양식과는 그 기능에 있어서 판이한 점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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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나온 우수한 영화의 스토리는 거의 전부가 영화인 자신의 ‘시나리오’요, 그 ‘시나리오’는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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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루’(철로의 백장미), 가튼―(파리의 여성), 가튼―〈황마차〉〈제국호텔〉〈설베이슌 한다스〉〈피에로의 탄식〉〈바리에테〉〈썬 라이스〉 〈제7천국〉과 같은 예를 들 수가 있는 것이요, ‘에른스트 루비취’ 일파의 작품은 비교적 착종(錯綜)한 스토리를 가졌으나 감독의 힘으로 소화시키거나 정복해버린 것 외에는 그 예가 극히 드문 것이다. 그 단순한 줄거리를 가지고 감독자의 힘, 또 그를 도와주는 배우의 연기나 촬영의 묘(妙)한 것으로써, 그리고 각색의 양념을 쳐서 한 통일된 작품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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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영화에는 아무러한 ‘줄거리’라도 덮어 놓고 단순하기만 하면 영화를 경작할 토지로써 훌륭할 것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족히 들어서 논의할 만한 거리도 못 되는 우문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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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단순해야만 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 내용이 좋아야겠다는 말과 호모(毫毛)도 틀림이 없다는 것만은 명료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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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토리’는 어디까지든지 훌륭한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훌륭한 ‘이야기’는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써 충분히 무식한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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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의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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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처럼 문학작품만 숭상하다가는 장래의 영화는 ‘그림’이 없어지고 자막만 늘어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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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한 것은 ‘피·타·판’의 원작자인 ‘빠리’의 통절한 풍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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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장래에 이르러서는 종래의 ‘스토리’, 또는 억지로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려던 ‘스토리’는 영화로 하여금 진정한 영화가 되려는 길을 가로막고 선 적(敵)이다 ─ 라고까지 한 아주 단정적인 스토리 부정의 절규까지 해서 시각에 호소하는 예술로서 순수한 경지를 밟아나가게 하기 위하여 절대영화, 순수영화를 부르짖는 기둔(氣鈍)한 신인들이 뒤를 대어 나오고 또는 그와 같은 이론 아래서 제작된 작품도 속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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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관중의 시각으로부터 다시 뇌 속을 통하여 빨려 들어가서 보는 사람의 감정이나 이지를 진감(震撼)시킬 때에 영화는 그 자신의 시각적 기능 이외에 당당히 문학의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다. 그 상쾌한 기쁨은 과연 무엇에 비할까? 저 ‘황마차’가 받은 방대한 상탄은 장쾌를 극(極)한 시각미에만 그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불모의 땅을 개척하는 선구자의 가슴 속에 불타는 장열한 정신이 명쾌한 로맨스의 점채(點彩)를 갖추어서 굳세게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영화의 포객(包客)하는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웅변으로써 말하는 한 가지 실례라고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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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그 문자적 기교의 구사로써 직접 눈에 부딪치는 시각미로 다소간이나마 감각적인 미를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가능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을 영화가 문학적 세계를 정복하고 나가는 힘에다가 비교해 볼 때에 그 효과의 양과 질에 있어서 너무나 말초적인 것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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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영화가 시각과 청각을 겸해서 감정과 이지에 부딪치고 그것을 흔들어서 문학적 기능을 정복하기 위하여서는 영화가 우수한 문학적 요소 즉 스토리를 필요로 한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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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말한 것은 요컨대 이름이 나고 내용이 좋다고 아무러한 원작이나 영화화 할 수는 없는 것이요 영화는 순수히 영화적인 스토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 영화적인 스토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단순해야만 한다는 것을 중요한 조건으로 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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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말하면 영화는 시각을 건반으로 하여 연주할 청각, 감정의 연소, 이 지의 고양을 동시에 발효시킬 수 있는 가장 능력이 있고 가장 신선한 예술의 ‘도가니’요 근대의 기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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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문단인이나 영화비평가(?)들이 해석하는 것과 같이 영화는 문학에 예속한 것, 문학적 내용을 이야기해주는 한 가지의 문학적 표현형식이라고 인정할 것 같으면 〈최후의 인(人)〉이나 〈황금광시대〉같은 영화를 원고지 위에다가 펜으로 그려볼 수 있는가 없는가를 한 번 시험해보라고 하고 싶다. 다만 한 장면이라도 영화와 똑같이 묘사를 해놓지 못할 것을 나는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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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없는 영화, 문학적 요소로부터 독립한 순수영화가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한낱 환상에 불과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영화의 최초는 또 최후의 것은 스토리다. 그리고 가장 필요한 것은 문학적 해석을 가질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을 맺기 전에 영화의 스토리라는 것이 문학의 기식자가 아니요 문학은 단순히 제8예술의 1구성분자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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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선의 영화를 감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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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32행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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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창간호(1929년 5월 1일).
【원문】문예작품의 영화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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