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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도 내 터가 아니요 한 헌 집 한 채를 사 일변 수리를 하면서 일변 이사를 하면서 하였다. 작년 4월 이래 그동안까지는 세째 중형의 찌부러진 일산(日産) 가옥에 덕붙어 같이 살고 있다가, 이를테면 분가를 하여 나온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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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45만 원을 인세 들어온 것 30만 원과 은행에다 집을 잡힌 15만 원으로 무릇 다섯 번에 나눠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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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45만 원 외에 소개료, 대서료(代書料), 등록세, 부동산취득세 그리고 집 수리비 같은 것이 한 15만 원 드는데 역시 다 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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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옹색스럽게 도득(圖得)한 집인 줄은 모르고, 서울의 문우들은 ——특히 입이 험한 젊은 악동들은——채만식이가 작금 인세로 부자가 되어 굉장한 주택을 장만하고 무어 생활이 호화스러워지고 했다더라면서, 축복과 다행스러하기를 마지않는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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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축복이 너무 지나쳤거나 혹은 소위 쌍놈이 감투를 쓰면 뒤통수가 곪아터진다는 격으로, 평생 셋집살이나 하게 마련인 천하의 궁민(窮民)이 45만 원짜리 주택이라니, 심히 분수에 넘는 외람된 직이라 하여 재신(財神)의 눈에 거슬린 바 되었거나, 아뭏든 이사한 지 순일(旬日)이 못하여 하룻밤 밤손님의 내림(來臨)하심을 받자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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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잠이 이몽가몽하는 참인데 아내가 심상치 않게 불러 고의춤을 움키면서 나가 보았더니, 부엌바닥이 난장판이요 첫눈에 밤손님이 다녀간 자취임을 알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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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할 무렵에 아내가 지청구와 눈치를 먹어가며 장만한 우리 식구에 게 최소한도로 필요하였던 사기그릇을 거의 전부와 한 30근이나 되는 배급받은 백 ․ 황(白黃) 두 가지의 설탕과, 빨래한 내의 한 벌과, 이렇게가 우선 피해였다. (우물이 깊고 물이 시원하여 올 여름에는 얼음냉수를 흠씬 많이 달게 타먹게 되었거니 한 것은 이리하여 꿈으로 사라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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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어떠한가 하고 방으로 들어와 양복장이며를 열어보았으나 아 무 탈이 없었다. 실내에까지 들어왔었다면 주인에게야 단벌옷이 되었거나 말거나 양복도 한두 벌은 소득이 있었을 것인데, 궐 야객씨(夜客氏)를 위하여 애석한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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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불 실내에도 들어오려고 한 흔적까지는 있었다. 아직 수참을 아 니한 머리방 들창 밑에 가, 마당에 놓았던 걸상이 옮겨 놓이고, 그 들창이 환히 열려 있고 한 것으로 미루어 정녕 실내에까지 들어오려고는 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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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가 다 백일해에 걸려 몹시 기침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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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두 아이를 데리고 안방에서 자면서, 나는 한 아이를 데리고 웃방에서 자면서 아이들의 기침 발작이 일 적 마다 기침하는 가슴을 눌러 주고 담도 뱉게 하고 하느라고 하룻밤이면 4,5차씩 잠이 깨어야 했고……하기를 한 달이나 계속하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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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에도 그래서 여러 번 잠이 깨었고 야객씨가 실내를 엿보기까지는 하였으면서도 뜻을 이루지 못하기는 매양 그 때문이었기가 십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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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병이 도난의 확대를 막아주었으니 주인편으로는 불행중 다 행이요 새옹마(塞翁馬)의 득실이었을는지 모르나, 일껏 반결사(半決死)의 각오를 가지고 들어온 야객씨에게는 공교로운 마장이 아닐 수 없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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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보다도 야객씨에게 문득 참으로 동정스런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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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들은 다 잠이 들었거니 하여 안심을 하고서, 그러나 혹여 드러날세라 새숨을 쉬어가며 홰성냥의 한심한 광선으로(그 흔한 회중전등 한 개도 마련해 가지고 영업을 다닐 사세가 못되는 가난한 야객씨였다)가 만가만 작업을 하고 있는데, 별안간 방으로부터 잠이 깬 기척이 일어 놓았으니 담소(膽小)한 야객씨 기급을 하게 놀랐을 것은 묻지 않아도 알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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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이런 호통을 치면서 장비 같은 주인녀석이 대들보만한 몽둥이를 둘러메고 벼락치듯 달려드는 성만 싶어 간이 콩만 해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을 그 정경이 얼마나 민망한 꼴이었더냐 말이었다. 그러나마 그것이 한 번도 아니요, 마악 두루 조용해진 틈을 타 작업을 다시 계속한다치면, 또 그렇고…… 또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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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씬 소변을 지렸을 것은 물론이요, 아마 모르면 몰랐지 이날 밤의 야객씨 넉넉 십년 감수는 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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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30근은 제값을 다 받는다고 하더라도 5천 원 미만이요, 사기그릇과 내의는 고물값으로 처분했을 것이니 2,3천 원에 불과했을 것이요, 그러고 보니 겨우 7,8천 원의 재물을 들여, 고의는 아닐망정 남으로 하여금 십년 감수의 애를 태우게 하였은즉, 주인의 죄 대단히 가볍지 아니한 것이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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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에는 이 봄에 서울로 올라가 살 요량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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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정월인가, 김만선(金萬善) 군을 서울서 만나 그 근처(성북동) 에서 3,40만 원이면 오막살이라도 한 채 살 수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예의 크막한 눈을 연방 끄덕거리면서 “온 선생님두!…… 아 우리 집 같은 것도 백만 원인데, 아 3,40만 원으로 무슨 집을 사시우?”라는 핀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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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도 더 알아본 것이 역시 3,40만 원으로는 기껏해야 남의 사랑 채를 전세로 얻었지 온채집은 생의(生意)를 못할 일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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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집 아이들과 마악 손이 맞아 싸움질이나 하기 마침인 어린것들을 줄레줄레 거느리고 구차스러이 남의 사랑채살이의 서울살림을 하느니보다는 백사(百事)가 불비미흡하고 종종 서울 왕래를 해야 하는 불편이 있고 하더라도 차라리 시골서 온채집을 사 오붓이 살기만 못한 노릇이라고, 그래서 이 고장에 한동안 더 주저앉기로 하고 집을 산 것이요 했던 것인데, 막상 집을 사고 보니 예상보다 일이 커 빚을 많이 지고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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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은 졌어도 집은 비교적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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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선이 잘 들고 여름에는 퍽 시원할 성싶었다. 광선이 잘 들어 다양 (多陽)하고 정남향으로 앉은 집이라 겨울에는 춥지 않을 것이고. 일산 (日産)이나마 대지가 백여 평이니 정원도 조금은 만들 수가 있으려니와, 30평쯤은 채전을 가꾸어 정갈한 채소를 먹을 수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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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지대인데 앞이 탁 터졌고, 터진 전면이 나직한 구릉을 가진 꽤 넓은 평야가 다한 곳에 모악산(母岳山)의 이쁘장스런 모습이, 앞마루에 나서면 우선 먼저 눈에 들어오곤 하는 것이 만냥 값에 족한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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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도 산도 숲도 다 없고, 공원 한 조각 시설한 것 없고, 다만 펀한 벌판에 가 보기 싫은 상가가 아무렇게나 들어앉은, 천하에 몰풍경하고 정신적 빈민굴인 이 고장에서 내 집의 마루에 앉아 명산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것만 하여도 적지않이 보배로운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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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길로 면하여 따로이 가게채가 한 채 덤처럼 딸린 것이 있었다. 실 상은 이 행길로 면한 가게채로 인하여 집값이 45만 원토록이나 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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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에 세태가 변한다든지 혹은 늙어 꼬부라져 인세나 원고료의 수입이 없게 된다면, 가게채를 이용하여 장작장사나 사탕장사라도 해서 구복(口腹)을 도모하느니라 하면, 쌀이나 몇 섬 사 숨겨둔 것보다 오히려 마음 든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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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뭏든 그래서 집을 장만하고 하였으니, 속히 속히 수참이 끝나는 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 이른봄 이래 밀린 집필도 하고 하려니 하여 자뭇 기대가 즐거운 참인데, 제일착으로 찾아온 것이 생각지도 아니한 야객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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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며 일체를 보살펴주던 세째중형은 당황하여 판장 울타리 위에 철 조망을 늘인다, 부엌문과 방문마다에 잠글고리를 마련한다 하면서 일변 재수가 없다고 걱정을 하는가 하면, 액땜을 했느니라고 자위를 하고 하는 것이나, 나는 집에 대한 애착과 흥이 절반이나 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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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에서 사는 둘째중형은 ‘정감록(鄭鑑錄)’의 찰신도요, 곧잘 동네 사 람의 혼인 택일도 하여주고, 도야지울의 방위도 잡아주고 하는 특수기술을 지니고 있는 미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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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동생이 집을 샀다는 기별을 듣고 반겨 달려와서 집을 한바탕 칭 찬한 후 새로이 사립문을 낼 방위와 이사 택일을 하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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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문 낼 방위는 내가 정한 것과 우연히 일치하였고, 이사날은 역시 그 무렵이 계제가 좋겠어서 나는 둘째중형의 호의를 쾌히 쫓기로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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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이 길일(吉日) 중에도 상(上)길일이요, 문은 이리로 내면 재수가 있을 것이다. 문을 잘못 내면 좀도적이 끓어 성가신 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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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째중형이 판장울타리 위에다 늘이는 철조망 너머로 오늘도 단정히 서 있는 모악산을 바라다보고 섰다가 문득 둘째중형이 하던 그 말을 생각하고 혼자 속으로 “둘째형님의 면목이 민망하군!” 하면서 실소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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