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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우(病友) 조운(曹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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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11
최서해
1
病友[병우] 曹雲[조운]
 
 
2
曹雲[조운]이 병들었다.
 
3
가을 바람은 나날이 높아간다. 정열에 타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신음하는 曹雲[조운]의 병석에도 이 바람이 스칠 것이다.
 
4
지난 초가을 내가 호남에 갔을 때였다. 법성포에서 그와 작별하고 한양으로 온 뒤에 그는 곧 선운사의 가을비를 찾아갔다. 이것은 金[김]의 편지로 알았다. 그 뒤에 나는 그에게 두어 번이나 글을 부쳤으나 회답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그저 선운사에서 돌아오지 않은 줄로만 믿고 회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5
달밝은 추석날 밤이었다. 나는 늦도록 무엇을 써놓고 자리에 누워서 창문에 환히 비치인 달빛을 보고 전에 어떤 절에서 중 노릇할 때 밤마다 자지 못하던 것을 회상하다가 언뜻 선운사에 간 曹雲[조운]을 생각하였다.
 
6
선운사에도 이 달빛이 흐를 것이다. 단풍도 아름답고 물소리도 맑을 것이다. ──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법당 뜰에 외로이 서 있는 曹雲[조운]을 눈앞에 그려보고 나도 그런 데로 가고 싶었다. 뜻맞는 벗과 옛절 난간에 비켜서서 이 달을 맘껏 보고 싶었다.
 
7
나는 벌거벗은 채 일어서서 종이와 붓을 찾아,
 
8
‘벗아, 옛절 가을달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9
하는 편지를 써놓고 드러누웠다.
 
 
10
그 뒤 사흘이 지나 내가 朝鮮文壇社[조선문단사]를 나오던 날이었다. 나는 曹[조]에게서, "曹雲[조운]이 병들었다. 그는 선운사에서 병이 나서 지금은 구름다리 본댁에 돌아와서 치료한다."
 
11
하는 편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 편지는 퍽 모호하였다. 그가 어느 날 어떻게 병들어서 어느 날 어떻게 돌아왔다는 말은 쓰이지 않았다. 나는 무슨 병이냐, 요사인 어떠냐, 하는 편지를 곧 써서 부치고 그날 밤에 공교로이 柳[유]를 만나서 그의 병증을 자세히 들었다. 듣고 그 병의 위중한 것과 심상치 않은 것을 알았다.
 
12
나는 그날 밤새껏 曹雲[조운]의 병을 생각하였다. 천날 만날을 생각한들 의사가 아닌 내게서 처방이 나올 리는 만무하고 설령 처방이 나온대야 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녀석이 약 한 첩이나마 어떻게 보내 주랴. 그저 나로도 억제할 수 없는 걱정이 그의 병을 생각하였고 평시에 내가 생각하던 그의 정신 상태가 그의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조였다.
 
 
13
이튿날 아침에 나는 또 헛된 편지만 써서 曹雲[조운]의 병석에 부치고는 평소와 같이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뭉클한 것이 마치 위에 가득찬 啖飮[담음]이 내리지 않은 것 같았다.
 
14
우리들의 처지로 병석에 눕게 되면 세 가지로 앓게 된다. 첫째 병으로 앓게 되고, 둘째 돈으로 앓게 되고, 세째 걱정으로 앓게 된다. 그런 까닭에 우리들 병은 속히 회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15
曹雲[조운]이도 이 세 가지로 앓을 것이다.
 
 
16
지난 초이렛날이었다. 方春海[방춘해]가 받아서 전하는 曹雲[조운]의 편지를 나는 받은 그 자리에서 뜯었다. 급히 뜯노라고 첨에는 몰랐으나 읽고 보니, 사연은 그의 뜻이나 글씨는 남의 솜씨였다. 나는 더욱 놀랐다. 그의 괴로운 호흡이 나에게까지 서린 것 같아서 내 가슴은 더욱 갑갑하였다. 이처럼 그의 병이 심한가? 그의 병이 위중한 줄은 짐작하였으나 두어 줄 편지까지 남의 손을 빌도록 되었으리라고는 나의 상상이 미치지 않았던 바다. 그 때에 나는 별별 생각을 다 해 보았다.
 
17
그의 몸 위에 떠흐르는 애처롭고 참담한 역사를 회상도 하여 보고 현재 구름다리 달마지방에 쓸쓸히 누웠을 그의 여윈 그림자를 눈앞에 그려도 보았다. 어떤 때는 차마 말로 표시할 수 없는 무서운 상상을 하고 나로도 알 수 없이 주먹을 부르쥐고 가슴을 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중에 나는 이것저것 다 집어치우고 하루바삐 그의 곁으로 가서 말벗이 되려고 별별 애를 다 써 보았지만 얽힌 자기를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공연히 마음만 졸였을 뿐이었고 찬 달빛에 무심한 꿈만 호남 하늘에 달렸을 뿐이다.
 
 
18
열 이튿날 아침이었다.
 
19
어찌 추운지 동창에 해가 들도록 이불 속에서 궁굴궁굴하는데 배달부가 편지를 던지고 간다. 그것은 趙[조]의 편지였다. 끝에 가서 曹雲[조운]의 병은 좀 차도가 있다고 극히 간단하게 쓰였다. 그래서는 이 편지 문구와 같이 단순하게, 건강을 회복하나보다 하고 마음을 좀 놓았다.
 
20
이때 내 눈앞에는 겨우 일어나 앉은 曹雲[조운]의 파리한 얼굴, 여러 날 병간호에 쪼들린 그의 어머니, 그의 누이, 그의 벗들이 언뜻 지내갔다.
 
21
모두들 얼마나 애썼으랴, 괴로웠으랴.
 
22
큰 걱정의 납덩어리는 또 내 가슴을 눌렀다. 趙[조]의 편지 받은 이튿날 저녁이었다. 모가지가 늘어나고 눈깔이 빠지도록 기다려도 오지 않던 金[김], 曺[조], 徐[서], 和[화]의 편지가 한시에 흩날리는 꽃같이 내 방바닥에 떨어졌다.
 
23
나는 먼저 和[화], 徐[서] 젊은 부부의 편지부터 읽었다. 金[김], 曺[조]의 편지에까지 曹雲[조운]의 병은 그저 한모양이라고 써졌다.
 
24
나는 이 말을 듣고 찌푸리고 머리를 숙였다. 趙[조]의 편지에는 차도가 있다고 하였는데 金[김], 曺[조], 徐[서], 和[화]의 편지에는 한모양이라 하였으니 어느 것이 옳은가? 趙[조]는 아침저녁으로 雲[운]을 찾는 사람이라 거짓말할 리가 없을 것이요, 그렇다고 金[김], 曺[조], 徐[서], 和[화]도 역시 雲[운]이와 엎디면 코닿을 곳에 있는 터이라 없는 말을 쓸 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룻밤새에 그의 병이 덧쳤나?
 
25
曹雲[조운]의 건강이 어디서 상하였을까?
 
26
건강한 그를 본 것이 어제 같고 느릿느릿한 그의 글씨 받은 것이 아직 기억에 새로운데 대필로 쓴 그의 편지를 받고 위중하다는 그의 병보를 받으니 어리둥절한 것이 꿈 같기도 하나 믿는 벗들의 글이 있으니 분명한 사실이라 알 수 없는 우수사려가 가슴을 찌긋이 눌러서 견딜 수 없다.
 
27
그가 병든 지 벌써 며칠이냐? 낫〔鎌[겸]〕같은 초승달이 그새에 둥글었다가 이지러졌으니 그의 괴롬이 얼마나 크랴. 흐르는 세월에 덧없는 인생이 이제 다시 느껴진다.
 
28
나는 그가 건강을 잃은 것을 생각에 생각을 해 봐도 그 뿌리를 찾을 수 없다. 여러 가지로 추측은 하지만 그까짓 추측이 무엇이 되랴?
 
 
29
그는 자기의 병을 아는지?
 
30
장연강 추석달에 그 감정이 끌었던가?
 
31
선운사 붉은 잎에 그 마음이 상하였던가?
 
32
그가 법성 바다 새벽달에 목메인 울음으로 눈물지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 때문에 병든 적이 없었고 그가 서백리아의 저녁 눈 속에 뛰었건마는 일찍 건강을 상한 일이 없었거늘 이제 선운사의 달빛 물소리에 병석에 눕도록 마음을 상하였을까?
 
33
그러나 건강이란 하루이틀에 상하는 것이 아니요 병이 역시 하루이틀에 드는 것이 아니다. 북쪽나라의 눈과 남쪽나라의 비에 타고 끓어서 그도 모르게 슬근슬근 그의 건강을 먹던 정열이 선운사 붉은 잎과 장연강 달빛에 높아지고 끓어넘쳐서 그의 몸을 눕게 만들었는가?
 
34
혜불암 떨어지는 볕을 차마 버리지 못해하고 칠산 비낀 달에 날새도록 잠못 이루는 것을 내 여러 번 보았는데, 거기선들 그의 건강이 안 상할 리 없을 것이다.
 
 
35
소여물간에 주저앉아서 입술이 부르트도록 부는 시골 머스매(曹雲[조운])의 갈잎피리를 누가 알고 듣는가?
 
36
대숲 논두렁으로 뛰어다니면서 목구멍이 터지도록 지르는 외론 이(曹雲[조운])의 목메인 소리를 누가 정신차려 듣는가?
 
37
曹雲[조운]은 시 쓰는 사람이다. 시 읊는 사람이다. 그가 잘 쓰는지 못 쓰는지, 잘 읊는지 못 읊는지, 그것은 나도 모르거니와 그도 모른다. 마지못하여 쓰고 마지못하여 읊는다. 그가 읊고 그가 쓰는 시는 목메인 여울 소리 같고 뜨거운 불과 같다.
 
38
그러나 흰옷 입은 그의 설움! 흰옷 입은 그의 소리! 알아주는 이 없다. 귀담아주는 이 없다. 그는 쓸쓸하다. 그 쓸쓸이 병되었는가?
 
 
39
曹雲[조운]에게는 세상에 드문 어머니의 품이 있고 누님의 사랑이 있고 누이의 존경이 있다. 그러나 그 가슴속 깊이 숨은 설움을 알 사람이 누구냐?
 
40
曹雲[조운]의 집은 호남서도 부요한 시골에 있다. 그의 집 앞에는 누런 나락이 금물결을 치고 뒤에는 터진 목화밭이 흰 담요를 깔아놓은 듯이 벌여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틀 먹을 식량이 없다.
 
41
아아, 그의 건강을 무엇으로 회복하며 그의 쓸쓸함을 무엇으로 위로햐랴?
 
 
42
그러나 曹雲[조운]에게는 위대한 용기가 있다. 굳세인 믿음이 있다. 이것이 그의 건강을 속히 회복할 것이며 그의 고독을 물리칠 것이다.
 
43
물도 흐르다가 돌에 부딪쳐서 소리를 치는 셈으로 이번 병은 그의 용기를 시험한 것이며 말할 수 없는 고독은, ‘고독은 우주의 열쇠다’ 부르짖는 그의 뜻을 시험하나보다.
 
44
曹雲[조운]은 죽음이 두려워서 병을 슬퍼할 사람이 아니다. 병이 괴로와서 세상을 버릴 사람은 더구나 아니다. 그는 병석의 고독에서 큰 수수께끼를 풀었을 것이며 병의 괴롬에서 인생을 더 깊이 보았을 줄 나는 믿는다.
 
45
멀지 않아 그에게 새봄이 오는 때에 그에게 새 생활이 있을 것이며 새 생활이 있는 때에 새 믿음이 있을 것을 나는 믿고 기뻐한다.
 
46
曹雲[조운]아 어서 일어나라! 뛰어라! 읊어라! 새로 푼 그 수수께끼를 읊어라! 새로 본 그 인생의 속을 읊어라! 나는 그것이 듣고 싶다. 그것이 듣고 싶다.
【원문】병우(病友) 조운(曹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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