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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후감(選後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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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1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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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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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로 들어온 작품이 통틀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거기서 초벌 고름을 해서 내게로 넘어온 것은 합쳐 꼭 40편이었다. 말이 닿지 않고 이야기가 통히 어찌된 영문인 걸 알아볼 수 없는 작품도 의무적으로 절반 이상은 읽었다. 절반 이상을 읽어도 쓸모가 없고 싹이 보이지 않는 작품은 한편으로 골라놓았다. 이렇게 해서 끝까지 읽어 가지 못한 작품이 열 편이었다. 이 열 편은 먼저 선(選)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서른 편 중에서 다시 열 편을 가려내었다. 스무 편이 남은 것이다. 이 스무 편에 대해서는 간단 간단히 선자의 느낌을 기록하여 두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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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편 가운데서 네 편을 골라 가지고 인문사 주간인 최재서 씨와 상론키로 하였다. 최씨가 이 네 편을 읽은 뒤 나와 다시 상의해서 한 것이다. 고선(考選)의 경위는 대개 상숭한 바와 같다. 될 수로 신중히 하느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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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느낀 바를 종합해서 말하면 첫째로, 스토리가 너무 없다. 둘째로 소재나 제재가 보잘것이 없다. 셋째로 문학의식이 너무 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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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이라고 모두 스토리나 플롯을 기피하고 경원하는 것 같지만 이것이 있어야 소설의 본도에 들어선다 할 것이다. 스토리를 무시하고 플롯을 깨뜨려 보리는 것도 좋겠으나, 이러한 새 시험을 하려면 우선 스토리와 플롯을 졸업한 뒤이어야 한다. 세련되지 않은 수법에 스토리나 플롯까지 없으니 도무지 읽어갈 머리가 없어지고 만다. 인물의 성격이나 심리도 평상된 것을 배운 뒤에야 비범상한 것을 그릴 수도 있고, 성격이나 심리의 해체를 실험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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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나 제재 같은 것은 2, 30년을 보아오고 생각한 것 중에서 골라잡은 것이니 만치 그래도 좀 새롭고 싱싱한 것이 있을 법도 하지만 모두 낡아빠진 생낡은 것들 뿐이었다. 국경의 밀수입 같은 것을 진기한 소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지만, 신문지에 나는 상식 정도로는 문학의 소재가 될 자격이 없다. 기계 이름만 나오는 공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좀더 문학적으로 소재를 파악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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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식은 이러한 때 무엇보다도 필요한데, 모두 작품의 핀트나 또는 주제를 세우고 그것을 심화하려는 생각이 얕다. 가끔 문학의식 같은 것이 엿보이면 틀림없는 문청 취미가 이것을 잡쳐놓고 말곤 한다. 이러한 비상한 시기에,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문학을 하여야만 하는가를 다시금 또 다시금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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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개별적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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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가구 집」,「무아간」은 서명은 다르지만 같은 작가의 것이 분명한데 장면의 연결이 특히 분명치가 못하다. 그러므로 전하려는 이야기도 그저 누적일 따름, 하나로 통일된 인상을 주지 않았다. 인물도 약도앟는 것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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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뻐꾹새 우는 마을」도 한 작가의 작품인데, 이것은 라디오 소설의 현상만치나 문학의식이 얕다. 장면 취급, 이야기의 진전 방법 둥이 안이하나 술술히 읽어갈 수는 있고, 초점의 설정, 심리를 다루는 방식 등이 요즘 이름 모를 여배우들이 낭독하는 라디오 소설감이다. 좀더 문학정신을 높은 데다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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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호」도 그렇다. 이것은 남녀관계의 치정 묘사가 저급해서 라디오 소설로도 되기 힘들 것이다. 난륜(亂倫)을 취급하려면 성욕적인 것을 걸러 버려야지 그것을 이렇게 작자 자신이 침을 흘리며 그려 놓으면 추잡스러워서 보아 나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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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는 작자의 생각이(동정) 한 번은 점산에서 서고, 한번은 복남 어머니에게 서고, 그뿐 아니라 작자의 안구(眼球)가 안정을 못하고 어리더벙해서 내두르는 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불구자는 좀더 이상심리나 이상성격에서 그려야 하며, 단편인 만치 작자의 눈이 한 군데를 노리고 안정하여야 한다. 도수 맞지 않은 안경을 쓰고 도리질을 하는 때처럼 사뭇 골치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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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류」- 유약한 청년과 방자한 여자의 이야기가 투명하지 못하게 그려진이 소설은 성격이나 심리를 사건을 통해서 묘사하지 못하고 해석하려 들기 때문에 인상이 명징치가 못하다. 뿐만 아니라 청년의 무능력과 무기력을 표상하기 위해서 작자가 동원시킨 상상력이 너무 빈약해서, 가령 주인공과 원구의 교섭이나 투전꾼과의 교섭이 모두 어리벙벙하고 또 춘실을 데리고 나가는 영감과의 상호관계 등이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독자의 심금에 울려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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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녀」는, 나오는 인물들을 깊이 이해하고 피상적으로 교섭시키지 않았다면 제법 소설이 될 수 있을 작품이었다. 양모, 본댁 아버지, 머슴, 소녀 - 이러한 인물을 만일 고도의 문학의식이 취급한다면, 광인으로 되지 않고 응당히 주인공 소년의 심리적인 갈등으로 집중되었을 것이다. 작자의 흥미의 초점이 미친다는 데 있어서는 망발이다. 소년의 심리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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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점(五羊店)」과「생리」,「대지의 정열」은 국경의 밀수를 취급한 작품들인데, 후의 두 작품은 한 작가의 것이다. 「오양점」이 밀수를 취급하면서도 그것을 문학적 높이에 있어서 살펴보려고 애썼고, 「생리」,「대지의 정열」은 국경 지대의 배경과 사건을 높이 파악하려는 예술적 기백이 부족하였다. 현경준 씨의 약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작가면서, 현씨보다도 물론 훨씬 서투르다. 경향문학의 후예가 가지는 좋지 못한 경향을 「생리」,「대지의 정열」의 작자는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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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가 역시 적지 아니 공식적이다. 작자의 사물을 보는 눈엔 틀림이 업다 할 것이나, 그 눈이 불행히 문학적 형상을 거치지 못하였다. 문학적인 눈이어야 비로소 작품세계에 들어와서 바른 관찰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사와 소년공과의 교섭이나 관계가 가장 생경하고 서투르다. 장면으로서 약간 생채(生彩)를 띤 것은 원유회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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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타공(土打工)」은 익살이 너무 야(野)하다. 작중인물이 자기의 말을 통해서 사물 전체를 바라보기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닌데, 이 작자는 그 방면에서 과히 파탄을 보이지 않았으나, 역시 노공자의 말씨가 문학어가 되려면 커다란 세련을 받아야 할 것이다. 작품 전체의 명랑색도 어딘가 허황하다. 끝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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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우(黃金雨)」는 식량배급원을 주인공으로 하여, 생생한 현실이 읽히는 힘을 가졌으나, 취사선택이 정밀치 못하다. 식량 조사, 전표 없이 쌀 사겠다는 여자와 구장의 관계, 주인공과 그 우인들과의 꽌계 등 새 사건이 긴밀한 연관성 밑에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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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지」, 「근육의 향수는 요즘의 서구소설의 이미테이션을 목표한 작품이라 볼 수 있는데, 「도야지」는 고(故) 이상의 어떤 불건강한 면에서 철저하게 한 작품이다. 문맥이 쓸데없이 뒤설켰고, 외에 외설(猥褻)에 수(隨)한 군데가 많아서 작자의 악취미가 코를 찌른다. 「근육의 향수」는 자살자의 이상심리나 착각적 환영을 분석코자 한 것인데, 작자 자신 이에 대하여 깊은 문학적 준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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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기」는 판타지가 아름답고 어딘가 동화적인 데가 있어서 끝가지 읽었으나, 수기로서는 어색하고, 읽고나서 알맹이가 살아난 것 같아서 판타지도 부자연하게 느껴졌다. 「향수」는 묘사가 간결해 좋으나 꼭 필요한 대문과 그렇지 않은 대목이 한결같이 조략(粗略)해서 경중(輕重)이 없다. 묘사가 많아야 할 곳은 많아야 하고 깊이 들어가야 할 곳은 깊이 파고 들어야 한다. 어딘가 여자다운 센스가 있어 보였다.(이상 무순)
 
21
「차륜」은 당선작인데 씨가 가지고 있는 문학의식을 높이 보고 작품을 택했으나, 앞으로의 노력 없이 한 사람 앞에 작가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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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평론』, 194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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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