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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시내는 물론이요 나 사는 교외의 동네에서도 통히 구경도 할 수가 없어, 부평(富平)의 가형에게 청탁하여 게다 두 켤레를 사왔다. 벌써 월전(月前)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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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창이 나다시피한 것을 끌고 다니던 가인(家人)이 귀중한 물건이 생겼대서 그 자리에서 한 켤레를 신고, 옛날 같으면 갖신이라도 한 켤레 얻어 신은 만큼이나 만족하여 하면서 부엌으로 들어가기까지는 무사하였으나, 들어가더니 이내 한짝을 벗어 들고 도로 나온다. 끈이 떨어져버린 것이다. 남은 한 켤레에서 한 짝으로 짝을 채워 신게 하였다. 또 떨어졌다. 또 채워 신었다. 이렇게 해서 명색이 새로 산 게다 두 컬레가 신은 지 단 한 시간이 못하여 한짝만 남기고 세 짝은 모조리 끈이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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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악품에 대하여는 엔간치 관대하여질 대로 관대하여진 터이라 “쯧, 딴 걸로 끈을 해 달라 신는 수밖에……” 하고 말기는 말았으나, 심중에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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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표(査定票)가 뻐젓이 다 붙어 있었다. 나는 이런 소악품을 만들어낸 상인을 나무라기보다, 달지 아니한 설탕, 짜지 아니한 소금 따위처럼 사용가치라는 것이 없는 상품에다 “이 물건이면……” 하고 그 가격에 대한 품질보장을 하는 사정표를 척척 붙여주고 앉았던 그 사정원씨의 얼굴을 좀 구경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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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바 사정원이라면 대부분이 업자들이요, 업자 중에서 제노라는 소위 유력자들이라고 한다. 상계(商界)의 유력자면 사회의 일반 유력자에 오(伍)하는 패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일반 유력자와 더불어 시국강연도 할 것이며 민중을 지도도 하며 가장 애국자연(然)하고 다닐 것이다. 그 애국자연하고 다닐 때의 얼굴과 제네의 동업자의 제품이라서 달지 아니한 설탕, 짜지 아니한 소금처럼 한 시간에 두 켤레씩 끈이 떨어져 버리는 게다에다 척척 사정표를 붙여주고 앉았는 얼굴과를 특히 좀 비교하여 구경을 하였으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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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 추계경마(秋季競馬)라는 것이 끝나던 날, 안동행(安東行) 제 45열차 삼등실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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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간은 그야말로 초만원이었다. 좌석이 꼭꼭 찬 것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복도와 세면소, 심지어 승강대에까지 사람이 매어달려 꼼짝할 틈도 없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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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부지런히 일찍 나가느라고 나가기는 하였으나 원체 초(超)부지런꾼이 많아 좌석을 잡지 못하고 복도에 서서 가는 사람 중의 한 사람 노릇을 하게 되었다. 경성서 평양까지 거진 열 시간을 서서 갈 일을 생각하니 아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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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옹색한 찻간에서다. 바로 내가 서서 가는 옆엣걸상을 중심으로 한 십여 명이나 되는 동행의 승객이 있었다. 저마다 자리를 잡고 편안히 앉아서 서로 농담도 하고 담배와 과실도 나눠먹고 하는 양이 매우 절친한 일행들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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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단첸가 하였다. 그러나 찻간이 이윽고 진정됨을 따라 그네들이 서로 주거니받거니 하는 소리가 무언고 하면 경마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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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야, 내 말 듣고 ××××를 샀으면 큰수 잡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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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권(馬券), 이거 넣구 다니다 순검한테 띄우면 정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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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커나, 이번 피양 경마 때 다시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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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들 지껄이는 것으로 미루어 평양서 경성까지 경마를 하러 온 일파들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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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절 시방이 어느 때라고 평양서 경성까지 십여 명씩 떼를 지어 경마를 하러 오고 하는 그 친구들의 철딱서니 없는 것이야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려니와 대체 그 십여 명이 제각기 무슨 명목으로 여행목적 증명서를 얻어가지고 차표를 샀는지 궁금한 노릇이었다.(조선문인보국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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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光[조광] 10권 10호, 19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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