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아리랑고개 ◈
카탈로그   본문  
1946.8
권환
1
아리랑고개
 
 
2
아리랑고개는 항상 열두고개라 한다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峯)을 본받아 그러나 이때까지 넘겨달라는 사람은 있어도 넘어봤다는 사람은 일찍 보지 못하였다. 그 너머엔 따라서 푸른 호수가 있는지 넓은 사막이 있는지 툰드라가 있는지 극락이 있는지 지옥이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넘겨달라는지도 그들밖에는 아는 이가 없었다.
 
3
그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어떤 고개엔 엄나무〔剌桐[발동]〕같은 큰 가시나무들이 빽빽이 서 있고 또 어떤 고개엔 표범 독사 고릴라 같은 사나운 짐승들이 야단을 치고 또 어떤 고개엔 대가리 둘 붙은 귀신 뿔난 도깨비들이 한낮에 푸른불을 반작인다 하였으니까
 
4
방랑객 탐험객 순례자들은 그러므로 열두고개를 한숨에 넘을 듯이 올라갔다 한 고개도 채 넘어보지 못하고 심장 약한 것만 한탄하며 되돌아온 이가 얼마나 많았는가 ?
 
5
그것은 눈보라가 바다물결처럼 내려때리는 캄캄한 밤이었다 감발을 친친 감고 남바위를 눈밑까지 눌러쓴 막을동(莫乙童) 청년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숨을 헐떡이며 척설(尺雪)이 쌓여 어슴푸레는 하나 골인지 길인지 분간할 수 없는 고개를 혼자 올라갔다.
 
6
그러나 닭이 세 홰나 운 뒤에 퉁퉁 부운 발을 끄을며 고개 밑으로 되돌아왔다 고개 밑 외따로 불이 반짝이는 주막집 젊은 여자는 부글부글 끓는 동태국과 부 ─ 연 막걸리 한 잔을 따라주며
 
7
“몇 고개나 넘다 왔어요 ?”
 
8
“곡 넘기가 사랑 끊기보다 더 힘드는데요.”
 
9
“내가 이 집 와서 낳은 아이가 지금 일곱 살 먹는데 아직 이 고개 다 넘어간 사람은 못 봤으니까요.”
 
10
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1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어
12
아리랑고개다 날 넘겨주소
13
아리랑고개는 열두고개
14
임 만나는 고개는 한 고개네
 
 
15
그러나 시간은 흘러갔다 아리랑고개엔 뜻밖에도 남포 소리가 쿵쿵 온 골을 울렸다 측량대가 갔다왔다하였다 곡괭이 삽들이 고개를 가차 없이 파내렸다 아리랑고개엔 경이와 흥분이 찼다 그러나 그것이 채 진정되기도 전에 어느덧 커 ── 다란 화강석 바위가 성벽같이 깎여지고 거인 같은 가시나무가 넘어가고 요철(凹凸)이 대패로 민 듯이 없어지고 포플러 병목(並木)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으로 서 있다. 봄 진달래꽃 가을 단풍잎이 산을 붉게 물들일 때엔 뚜껑 벗긴 유람 자동차가 오르락 내리락 하며 화물차가 범눈 같은 반사경(反射鏡)을 쏘면서 한밤중에 질주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이 고개를 야단스럽게 하던 산짐승 이매망량(魍魅魍魎)들이 일시에 그림자도 없이 자취를 감추지 않을 수 없었다 명랑한 아리랑고개였다.
 
16
그나 그뿐이랴 또 아리랑고개엔 옆구리에 표석(標石) 주머니 마치찬 부로커들이 숨을 헐떡이며 오르내렸다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 황금 가루가 반짝였다. 장미 같은 꿈이 구름같이 날렸다.
 
17
아리랑고개는 어느덧 굴이 뻐끔뻐끔 벌집처럼 되었다. 얼굴과 심장이 모두 몰라보게 변하였다.
 
 
18
그러니 아리랑고개엔 작년봄 다시 큰 사실(事實)이 생겼다 가장 큰사실이었다. 전체가 화강암으로 된 아리랑고개가 이편서 저편까지 막구멍이 뚫려진 것이다. 즉, 이 수도(隧道)로써 해안선과 연결시킨 Y선 철도가 개통된 것이다. 고개 밑엔 붉은 기와집 정거장이 섰는 동시에 매일 두 번씩 보통행 열차가 흰 연기를 품으면서 이 수도를 들어가고 나오곤 한다. 허리굽은 늙은 역장은‘태블릿’바퀴를 건네주고 기차를 보낸 뒤엔 한참동안 붉은 석양 햇빛이 싸고 있는 아리랑고개를 물끄러미 보는 것이 버릇이었다. 우렁찬 기적소리가 온 골을 울렸다.
 
19
이 역서 오르내리는 자 ── 시집오는 색시, 장가가는 신랑 고향 떠나는 남녀 서울가는 제복학생들이 많기는 하나 옛날 이 고개, 넘기 어렵던 그때를 꿈에도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그저 묵묵히 어두컴컴한 굴을 지나갈 뿐이다.
 
20
어제는 멀리 출정가는 막을동(莫乙童)의 아들 젊은 병사를 환송하느라고 많은 남녀가 국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그 소리에 아리랑 고개는 무너질듯 흔들흔들하였다.
【원문】아리랑고개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21
- 전체 순위 : 2175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299 위 / 882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아리랑고개 [제목]
 
  권환(權煥) [저자]
 
  1946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아리랑(-)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본문   한글 
◈ 아리랑고개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2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