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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카 잡기 - 서북미주의 항구를 돌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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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7
박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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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메리카 잡기
 
2
─ 서북미주의 항구를 돌아
 
 
 

1. 떠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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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5일 부산을 출항하여 아메리카로 향하는 기선 남해호를 타기까지 나는 불과 1주일간의 여유가 있었다. 즉 2월은 25일 저녁 필자가 생활을 위하여 근무하고 있고 대한해운공사 사장은 월급날인 그날의 월급 대신에 한 번 미국 구경을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던졌다. 참으로 영문 모를 이야기에 잠시 놀랐다. 하지만 박형처럼 문학을 전공하는 분으로서 한번은 태평양을 넘고 미국의 풍물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장의 부언에는 많은 그의 진의를 엿볼 수 있었다. 사실 그 무렵 나는 무척 우울했다. 돌아온 지금 역시도 그때와 다름은 없으나 우둑하니 회사에 나가 어떠한 부서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는 ‘책상’…… 그것도 회사에서는 제일 낡은 물품……을 앞에 놓고 남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는 일을 근 3개월간 지속해 왔다.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그리고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회사에 나가는 길밖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몇 줄의 시나 영화 평론을 들고 이 신문 저 잡지사를 돌아다닌댔자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도 없고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문필은 사회적인 직업으로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큰 회사의 사원이라는 것이 도리어 체면을 만든다면 어찌 나로서는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여하튼 남궁 사장과 개인적인 친면이 있기도 해서 해공에 나가기로 했던 것이다. 2, 3만 환만 회사에서 얻으면 이 험난한 세상에서 겨우 가족의 생계는 해결되겠지, 분야는 다르지만 전에도 근무해 본 일이 있는 회사니깐 좀 실무를 배워가지고 안정해 보자는 이런 ‘각오’로 지난해부터 3개월 이상을 그 책상 옆을 지켰다. 그러나 사령(使令)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도대체 일거리를 주지 않는다. 추운 겨울날 남들은 땀을 흘리면서 사무를 보는데 나는 떨면서 옛날 신문철이나 뒤적거려야 한다. 그분들을 보기에도 미안하고 내 자신도 무척 처량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몇 달을 보낸다는 것도 나에게 이처럼 해주고 있는 사장에게 어떠한 뜻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물론 사령이 없으니 월급도 나오지는 않았다. 겨우 사장의 호주머니돈을 얻어 쓴 일이 몇 번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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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1년 동안은 지속할 힘이 나에게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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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태 하에 2월 말 미국에 갔다 오라는 것이다. 꿈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평상적인 일은 절대 아니다. 그래서 머릿속이 어찔해졌다. 사실 선박회사의 직원이 해외에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다. 남들처럼 몇 달을 걸려 여권을 만들 필요도 없고 승선 발령서 한 장만 받으면 선원 수속을 하여 그 선박의 직무를 형식적으로 얻으면 일본이나 비율빈이나 독일이나 세계 어느 곳이고 배가 기항하는 곳이면 마음대로 함께 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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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도 이와 똑같은 절차를 밟았다. 원외(員外) 사무장이란 직함으로 선원 수첩을 해사국에서 얻고 3월 3일부터 남해호의 한 인원이 되었다. 원래는 4일 밤 부산을 떠날 것인데 배의 전기사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출항시까지 승선하지 못했기 때문에 5일 정오에 기선은 기적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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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소리는 언제 들어도 처량한 것이다. 해방 후 처음으로 고국을 떠나는 나로서, 더 말하자면 심리적으로 무척 고통을 당하고 있던 나는 이 기적 소리가 귀에 들리자 무한한 정막에 사로잡혔다. 그 전까지 혼란한 이 나라를 탈출해 봤으면 속이 시원해지겠다고 늘 생각했으나 막상 떠나게 되니깐 마음이 서운해지는 것이었다. 허나 마음 한구석으로는 즐거운 기분도 있었다.
 
 
 

2.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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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현해탄을 6시간에 걸쳐 16마일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몹시 롤링이 심하여 머리가 아프다. 그러나 뱃멀미는 별로 하지 않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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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경 시모노세키와 모지 간을 지났다. 사방은 어둡고 거대한 남해호는 이 암흑을 조용히 뚫고 나가고 있다. 멀리 일본의 촌락에서 불이 빛난다. 그 불은 나에게 잠을 가리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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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경 나는 처음으로 세토나이카이의 풍물을 접할 수가 있었다. 바다는 아직 잠든 듯이 조용하다. 현해탄의 노기에 비하면 이것은 천사의 얼굴이다. 많은 섬과 어선들이 좁은 바다에 아름답게 떠 있고 멀리선 붉은 태양이 점잖이 모습을 나타낸다. 배의 진로에 따라 태양은 바다에서 떠오르는 것 같고 또는 섬의 산봉우리에서 하늘에 올라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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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빛은 바다에 반사되어 푸른 물결은 어느 사이 붉게 물들고 있다. 마치 천연색 영화와 같은 아름다움이다. 여러 서적과 사람들이 이 좁은 바다의 우아한 미를 이야기한 것과 더욱 다름이 없는 인상적인 풍경이다. 이러한 몇 시간이 지나고 배는 더욱 육지와 접근되어 기항지 고베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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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해안 도시들이 눈에 환히 나타난다. 많은 공장의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오르고, 새벽부터 화물차는 짐을 재(載)하고 달리고 있다. …… 움직이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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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에 가까울수록 공장과 도시의 모습은 웅대하다. 여러 섬과 항구를 향하여 경쾌한 속력으로 떠나고 있는 신조 화물선은 아담하기 짝이 없으며 우리의 배 부근에는 작은 어선들이 수백 척씩 일단이 되어 어로에 열중이다. 대강 두 사람씩 탄 2, 3톤의 어선들은 전부 합치면 수천 척이 될 것이다. 그들은 데크에 매달린 나에게 손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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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부산을 떠난 후 23시간 후 남해호는 고베에 입항했다. 가와사키 조선공작소 앞 도크에는 2, 3만 톤급의 조선 중인 배들이 4, 5척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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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모든 풍경은 한국과는 딴판이다. 우리들은 해방이 되어 혼란한 몇 년을 보내고 다소 안정되어 생산에도 힘쓰며 살아가려고 할 때에 불의의 전쟁이 발발되고 국토는 황폐화한 고장이 되고 말았는데, 일본은 그저 건설과 재건에 힘을 썼다. 고베와 오사카의 거리는 완전히 복구되고, 새로운 고층 건물이 많이 신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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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간은 일본 구경을 했다. 고베, 오사카, 교토 등지를 편리한 전차를 타고 왔다 갔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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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크게 눈에 띤 것은 파친코라는 영업이다. 그것이 일본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세 도시의 도심지대에는 파친코 밖엔 없다. 교외에서는 공장이 움직이고 환락가에서는 파친코 소리가 요란하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 시민이 모여들고 있는 감이 있는데 어떤 큰 영업장소에는 천여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베의 메인 스트리트의 대부분은 술집이다. 물론 파친코도 많고 아침 일찍부터 밤 한두 시까지 술을 팔고 있으나 일본은 최근 불경기가 되어 우리와 같은 한국인이나 외국 사람이 오면 대환영을 받게 된다. 간사스럽고 애교가 많은 일본 여자들의 교태에 빠진 남해호의 선원들은 즐겁게 밤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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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선 속에서 바라다본 육지의 세계와 상륙한 후의 육지의 내부가 참으로 다르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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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파친코가 문제가 아니라, 일본은 기묘한 새로운 형태의 현실을 만들고 있다. 그것이 건전한 것인지 불건전한 것인지 내가 판단하기에 4일간이란 일자는 참으로 짧다. 하지만 내가 만난 몇 사람의 상류층(지식적으로)의 사람들은 무척 비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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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술집과 상인을 제외하고 대체로 한국에 대하여 또는 한국인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아직 그들은 어리석은 우월감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내가 욕설까지 한 어떤 일본 관리는 “이 대통령의 인기는 나쁘지요?”라고 나에게 건방진 태도로 말했다. 그래도 나는 “적어도 그 국민에게 그 나라 원수의 얘기를 할 때 너는 조그마한 경의도 없이 참으로 실례스러운 말을 하고 있지 않는가. 너희들의 민주주의는 그러한 것인지 모르나 우리 국민은 대통령을 시정적인 인기에 비해 볼 바도 없고 더욱 너희들에게 우리 대통령의 훌륭한 얘기를 한댔자 알아듣지도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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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것은 내가 겪은 단 한 사람이었으나 대체적으로 여러 사람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멸시적이라는 것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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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있을 때는 웃고 좋은 낯을 뵈나 뒤돌아서면 달라지고 있는 것이 일본인인 것이다. 이러한 단적인 예는 한일회담이나 최근 하도야마의 대공(對共) 정책에서도 쉽게 볼 수가 있다. 생산을 훌륭히 하고, 예술적이고, 많은 좋은 점이 있으나 결국 일본은 대수롭지가 않는 것 같다. 더욱 미국을 보고 난 후인 지금 일본을 생각할 때 일본이 낸 토이(완구)가 세계적으로 우수한 것처럼 일본은 토이의 나라밖에 되지 않는다. 파친코로 소란스러운 거리는 ‘장난감’ 자동차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상기시키며 아직 성숙치 않은 토이의 주인공들이 남의 흉내만 내고 있는 것 같다.
 
 
 

3. 태평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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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기분으로 여하튼 즐겁게 술을 마시고 구경을 다닌 4일간의 일본을 뒤에 남기고 남해호는 9일 밤 고베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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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13일간 태평양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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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은 갈매기도 있었다. 온 몸이 흰 것도 있고 전부가 까만 것도 있고 그렇다가는 동체만 희고 날개가 까만 여러 가지 가지의 갈매기(조류학적으로 이름은 다를 것이나 나는 그것을 모른다)들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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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거의 어느 날치고 갠 날이 없다. 구름과 안개에 가려 태양은 보이지도 않고 차갑다. 그래서 바람을 차고 진행하는 배의 데크에도 추워서 잘 나가지도 못하고 좁은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책을 읽는 수밖에 없다. 그 덕택으로 나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세 번이나 읽었고 다른 10여 권의 책을 독파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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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선내에서의 수일간의 생활이 지나자, 나는 처음으로 만난 선원들과 친교를 얻게 되었다. 선원생활 35년이 되는 스토커 영감, 20년이 되는 보승, 그 외 20여 명의 고급 선원들과 이야기를 하게 된다. 책을 읽지 않으면 잠자고, 깨면 식사를 하고 그 후엔 여러 선원들과 접하며 그들의 지난날의 환희와 비애에 잠겼던 체험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 덕택에 많은 인간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다행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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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선원들에게서 사회에 나와 ‘육지에 올라와’ 배울 만한 것을 얻을 수는 없다. 그들은 육지의 사회 아니 현실적인 사회와 격리되어 있고, 그들은 육지를 무서워하고 있다. 배에서 담불 소지를 하고 데크에 페인트를 칠하고 엔진에 기름을 주입시키는 일 외에는 모르는 그들은 육지에 올라가면 고아와 다름이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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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항구에 들어가 여자들을 껴안고 술을 마시면 그것으로 족하고 일 년에 두세 번 돌아가는 부산에 가서 첫날 어린것과 아내를 만나면 벌써 바다와 외국의 항구가 그리워질 뿐이다. 그러나 선원들에게는 도저히 육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좋은 점이 있다. 그것은 ‘순진’과 ‘버릴 수 없는 외로움’이다. 나는 이것에 매력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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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반의 아침 식사가 끝나면 그들은 각자가 맡은 작업을 한다. 자기의 집을 거드는 것처럼 선내의 일을 한다. 갈매기들이 머리 위를 오고 가는 것을 보고 휘파람을 불며 적적함을 푼다. 롤링이 몹시 심해도 조금도 겁내지 않고 갑판 위를 뛰어다닌다. 기관부의 선원들은 기름으로 젖어버린 작업복을 입고 기계와 기계 속 요란한 엔진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는 듯이 책임 맡은 일을 소정의 시간까지 이행해 나간다. 그들은(몇 사람은) 내실에 가끔 들어와서는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거의 생각지 않고 그저 과거에 살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선원들에게는 희망보다도 회고가 앞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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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호의 고급선원들은 아직 젊다. 해양대학을 나온 26, 27세 정도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젊어서 그런지 또는 학교를 나오자마자 배의 사람이 되어서 그런지 아직 인간적으로도 미숙한 점이 많다. 하지만 훌륭히 배를 운항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열심히 항해에 관한 서적을 읽고 컴퍼스와 해도를 가지고 한국민의 손으로 태평양을 용이하게 항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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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호가 180도선(일부변경선)을 지나 며칠 후 아메리카 대륙에 가까워지자 바다는 잠잠해지고 속도는 평균 17~18마일로 달리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캐나다 방송이 보내는 경쾌한 재즈 뮤직이 스피커를 통해 선내에 퍼진다. 삼각파로 인한 피칭의 공포에서 벗어난 나는 배에서 배급 주는 맥주를 다시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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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저기압도 없다는 말을 선장이 했다. 2, 3일이면 아메리카에 도착한다. 배의 입항을 앞둔 청소작업도 끝나고 여러 사람들은 머리를 깎고, 깨끗이 면도를 한다. 웅대한 자연 그저 푸른 파도와 푸른 하늘과 그 외엔 아무 것도 없는 태평양을 건너서 온 세계의 한촌 한국 사람은 아메리카에 간다는 것이 무한히 즐거운 일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우리들을 아니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무엇을 나는 보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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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밤 10시 5분 정각에 케이프 프레터리의 등대가 보였다. 이것이 처음 본 아메리카의 불빛이다. 배는 캐나다 반크바섬과 아메리카 워싱턴주 사이의 해협을 달리고 있다. 나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데크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4. 아메리카 상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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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아침은 하늘이 높이 개고 우리들의 배는 내가 처음으로 보는 아름다운 풍경…… 조용한 바다와 수목이 우거진 산과 그림처럼 고운 집……들이 환히 보이는 좁은 해협을 지난 후 오전 11시 45분 정각 아메리카 최초의 항구 올림피아에 입항하였다. 인구 3만 가량의 이 작고 깨끗한 도시는 워싱턴 주의 주부이며 그 청사는 우리나라의 중앙청과 비슷한 스타일의 건물이다. 세관에서 배에 올라와 몹시 까다로운 서치(수색)를 했다. 그들이 목적하고 있는 것은 혹시 아편이나 귀금속을 숨기지 않았는가 하는 데 있으며 중국선 같은 데서는 그러한 물품이 적발될 때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배에서는 그 여하한 것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한국 선원들은 아편을 밀수시킨다는 것은 생각조차도 하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선량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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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 허가증이 하부되었다.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남해호가 미국에 있는 동안에는 어디든지 갈 수가 있으며 어떠한 곳도 들어갈 수가 있다. 그 후의 일이지만 사실 미국에서 어떠한 사람도 우리의 허가증을 보자는 사람도 없었고 제복을 입은 경찰관은 시애틀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몇 사람 외에는 본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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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에 2일간 터코마, 시애틀, 에버렛, 아나코테스, 포트엔젤, 포틀랜드 등 나는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올림픽 국립공원, 위싱턴주의 주립공원 등 가볼 수 가 있는 데까지는 아침 8시부터 밤 한두 시까지 발목이 닳도록 왔다 갔다 했다.
 
 
 

5.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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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많이 간 곳은 역시 술집이다. 태번이란 곳에선 맥주와 와인을 팔고 칵테일에 들어가면 위스키나 브랜디를 마실 수 있고 카바레에서는 춤을 추거나 좋은 여자들을 만날 수도 있다. 대체적으로 미국의 맥주는 우리의 입에 맞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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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나 일본에 와본 일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오비OB맥주와 일본제 맥주를 찾는다. 그만큼 미국 맥주는 신통치가 않다. 심지어 광고문에 “이 맥주는 물이다” “칼로리가 없다”까지 써 있는데 원인인즉슨 가령에 맥주를 침투시키기 위해서는 주부(여자)가 애용하여야 되고 맥주에 칼로리가 많으면 몸이 비대해지니깐 여자들이 피하게 된다. 그러니 하는 수 없이 몸이 퉁퉁해지지 않는 맥주를 많이 팔아야 하고 선전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블루리본, 버드와이저 같은 것은 미국에서의 최고의 맥주이며 한 병에 그것도 여기 사이다병 정도의 것이 30∼40센트가 되니깐 참으로 비싼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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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말하는 양주…… 위스키나 브랜디는 작은 잔으로 75센트서부터 1달러를 받는다. 대개 술값은 어느 곳이나 비슷하여 양주만은 각 주에서 직영하는 판매소에서 팔고 있는데 한 병에 평균 6, 7불이니깐 우리나라에서 양주를 사먹는 편이 되니 돈이 적게 든다……. 미국에서도 대개 칵테일에 들어와 위스키를 마시는 부류면 대체적으로 수입이 많은 사람들이거나 중류 이상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사실 미국에 가면 싸게 좋은 술을 많이 먹자고 생각을 했으나 이에 반하여 한국에서보다도 2, 3배에 가까운 돈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술집의 구조나 분위기가 참으로 좋았으니 그게 그 값이다.
 
 
 

6.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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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여자들은 대체적으로 건강하고 인물이 곱다. 물론 좋은 옷을 입고 있다. 나는 한국에 온 미국 여자들밖에 그 전까지 보지를 못했으니깐 대수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직접 그곳에 가서 가장 놀란 것은 그들이 참으로 곱고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백화점에서 와서 물건을 사는 여자들, 거리를 보행하는 여자들, 카페나 카바레에 나와 술을 마시고 춤추는 여자들……. 모두가 개성적인 미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나 제법 조화가 된 화장을 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훨씬 광채를 띠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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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부인들도 심심하거나 생각이 나면 혼자서 술집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고 좋은 친구를 만나면 춤을 춘다. 여학생들은 술집에까지 발을 뻗치지 못 하나 카페에 들어가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담배를 피운다……. 그러한 여자들이 대체적으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건전하고 잘생겼다. 내가 가장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미국에선 어린 중학생이나 여학생까지도 모두 담배를 피우는 것이며, 그 부형들이 묵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일요일 우리의 배 구경을 온 13,14세 정도의 소년소녀들이 모두 담배를 피우고 한 국제 담배를 좀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작’ 담배가 교제용으로 환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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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회에 알게 된 미스터 몬은 그의 딸 돈나 켐벨을 나에게 소개해 주었으며 그의 집에도 여러 번 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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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회사의 세일즈맨인 몬은 제법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있고 돈나는 귀여운 칼리지걸이다. 우리들은 호숫가를 산보도 했고 함께 살롱에서 음악도 듣고 리처드 라이트의 소설 얘기도 했다. 그래서 무척 친해진 줄만 알고 나는 그에게 영화 구경을 함께 가자고 했더니 먼저 혼자 가서 기다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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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일이면 떠날 사람이고 나는 이 거리에 오래 살 사람이니 함께 다니는 것을 사람들이 보면 자기에게 좋지 않다”고 돈나는 말하는 것이다.
 
 
 

7. 유학생과 이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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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 6명의 유학생과 세 가정의 이민 가족을 만났다. 유학생들은 우리들을 보고 참으로 기뻐하며 한국 이야기를 묻는다. 한국 소식은 그곳 신문에는 보도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많은 향수에 젖어 빨리 한국에 돌아갔으면 하고 원하고 있으나 학교의 졸업이 남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숙사에 있다는 세 사람은 우선 책을 사고 용돈을 쓰는 데 큰 걱정이며 일반 가정에 하숙하고 있는 학생은 자동차가 없어서 곤란을 받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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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도착하여 입학할 때에는 환영도 받았고 파티에도 여러 번 초대되었으나 지금은 그렇지도 않고 돈이 모자라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더욱 놀란 것은 그 중의 한두 사람은 학교에 가지도 않고 야간공부에서 노동을 하고 놀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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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용이한 일이 아니다. 더욱 외국에서 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학교보다도 빠지기 쉬운 여러 가지 것이 있다. 학생들은 단순히 미국에 와 있다는 어리석은 우월감에 사로잡히고 미국에서 돌아가면 한국에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다는 생각만으로 그날그날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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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가족들은 우리를 우정 찾아왔고 나는 그분들의 차로 그들의 농장과 집 구경을 했다. 포틀랜드에서 한 30마일 떨어져 있는 그레셤에는 10여 년 전 몬태나주에서 나와 사는 박씨, 김씨, 황씨의 세 가족이 있다. 대체적으로 그들은 하류 계급의 생활상태이며 25에이커의 스트로베리 농장을 가지고 있는 박씨 부인은 한국에 오고 싶으나 여비가 없다는 것이다. 2세들은 얼굴과 그의 부모만이 한국인이지 그들에게 다른 한국적인 것은 도저히 찾을 수도 없으며, 우리들 한국인이 찾아가는 것도 그의 어머니가 우리들을 만나러 오는 것을 반갑게 여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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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국에서 30년 전에 이민했다는 현재의 집주인들도 한국에 나가면 장관이 아니면 높은 벼슬자리 큰 이권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독립운동에 많은 돈을 거출했다는 것과 자기들은 왜놈과 싸운 후에 살 수가 없어서 미국으로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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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들이 우리를 찾아오는 심정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한국 사람이 만나고 싶은 것, 둘째는 자기들이 한국에 사는 사람보다 훌륭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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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그곳에 사는 이민들은 서로 대립되어 잘 만나지도 않는 모양이다. 일본인들은 잘 합심하고 있는 데 비하여 한국인들은 정치적인 견해의 차이로 이웃에 살면서도 만나지도 않는다. 여기 관해서 구체적으로 적을 필요도 없지만 한국인은 어디 가든지 정치에 관심이 많고 잘 분열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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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희망』(1955. 7)
【원문】아메리카 잡기 - 서북미주의 항구를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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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희망 [출처]
 
  1955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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