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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삼국지]〉 魏書[위서]의 東夷傳[동이전]에 馬韓[마한]의 풍속을 기록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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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瓔珠爲財寶[이영주위재보], 或以綴衣爲飾[혹이철의위식], 或以縣頸垂耳[혹이현경수이], 不以金銀錦繡爲珍[불이금은금수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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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라 한 것이 있읍니다. 瓔珠(영주)란 것은 佛經[불경]의 菩薩[보살]님네의 복색을 말한 데 瓔珞(영락)이라 한 것과 마찬가지로 구슬을 꿰어 둥그런 테를 만들어서 목에 걸치는 것입니다. 馬韓[마한]이란 것은 대개 시방 경기도 일부와 충청·전라를 합하는 지역을 가리키는 것인데, 여기 사는 韓[한]이라는 민족은 구슬 테를 보배로 알아서 혹 옷깃에다가 꿰매어서 노리개를 삼기도 하고, 혹 그냥 목에 걸기도 하며 귀에 매달기도 하고 금·은이나 좋은 비단은 도리어 귀중하게 여기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는 三韓[삼한] ── 韓[한]이라고 부르던 부족이 크게 세 덩어리에 나뉜 서방에 있는 馬韓[마한]만의 풍속만으로 이렇게 기록하였지마는, 〈三國志[삼국지]〉의 三韓[삼한] 풍속에 관한 기사는 특별히 따로 명기한 것이 있는 외에는 대개 馬韓[마한]의 條下[조하]에 적은 것이 그대로 馬韓[마한]의 동방, 시방 경상도 지방에 당하는 辰韓[진한]·弁韓[변한] 두 나라에 공통하는 것입니다. 이 瓔珠[영주]로 보배로 여김도 무론 馬韓[마한]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辰韓[진한]·弁韓[변한]이 죄다 그러하다 함으로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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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고분 같은 데서 나온 유물로써 말하건대, 馬韓[마한] 지방이라던데서보다 瓔珠[영주]의 유물은 辰韓[진한]·弁韓[변한] 지방에서 많이 발견되었음이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박물관이나 큰 고물상의 가게를 가서 보면 파르스름한 瑪瑙(마노)나 수정이나 옥이나 翡翠[비취]나 다른 여러 가지 재료로써 흔히 손가락 마디만큼씩 올챙이 모양으로 고부장하게 갈아서 노리개감으로 만들고, 고부장한 머리빼기에 구멍을 뚫어서 끈을 꿰게 만든 물건이 수북하게 진열되어 있음을 보실 것입니다. 이렇게 올챙이 같은 것 외에 또 가느다란 댓개비 모양으로 만든 것도 있고, 납작한 돈짝 같은 것도 있고, 大棗[대조] 모양, 콩알 모양, 기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든 것이 있어서, 이것들은 걸름걸름 뒤섞어 꿰어서 중의 염주 테 모양으로 둥그런 테를 만들어서 모가지 근처에 걸어 노리개를 삼은 것입니다.
7
조선어에 「구슬」 혹 「구실」이라고 하는 것이, 본래 이 물건의 이름이던 것입니다. 이 풍속이 반도 전부에 행하지도 않고 또 행하던 데서도 없어진 지가 오랜 고로, 후세의 반도인은 자기 나라 옛날에 이것이 큰 노리개로 쓰였던 줄도 알지 못하고, 따라서 그 이름조차 잊어버린 까닭에, 일본 고대의 역사에서 그네들이 「句玉[구옥]」(まがたま(마가타마))란 것을 크게 보배로이 여긴 말을 듣고, 또 그것을 여러 가지 노리개로 사용한 보물의 그림같은 것을 보고서, 이것은 아마 고대 일본에만 있던 특수한 풍습이던가 보다 함이 보통이 되었읍니다마는, 실상은 이 마가타마가 곧 〈三國志[삼국지]〉 瓔珠[영주]라고 한 것으로서, 그 실물이 특별히 시방 경상도 지방 각처에서 많이 발굴되어 저 박물관이나 고물상점에 진열된 것이 대개는 조선 내에서 출토한 것들입니다. 이 구슬은 다만 테를 만들어서 옷에 꿰매거나 목, 귀에 걸 뿐 아니라 머리에 쓰는 갓, 허리에 띠는 띠 같은 데도 시방 금강석이나 녹옥·홍옥을 卵[란]박는 셈으로 이 구슬을 군데군데 매달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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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기억이 새로우실 근년 廣州[광주] 부근에서 여러 개 파낸 신라의 왕관 ── 신라 임금이 생전에 쓰시던 황금관은 곧 柱[주]대와 橫桿(횡간)을 금으로 하여, 허다한 우물 井[정]자 간살을 하고, 그 층층이와 모퉁이마다에 비취로 만든 올챙이 모양의 구슬을 고리에 꿰어 무수히 매달아서 데그럭데그럭 흔들거리게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마가타마라는 구슬을 줄잡아도 반도 남방의 부족 간에서 매우 보배로이 알았음은 문헌과 실물이 일치하여 사실이 명백한 바입니다. 동일한 〈三國志[삼국지]〉魏書[위서] 東夷傳[동이전]에, 시방 강원도 지방과 함경도 일부분에 당하는 듯한 濊(예)라는 부족의 풍속을 기록한 곳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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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女衣皆著曲領[남녀의개저곡령], 男子繫銀花[남자계은화], 廣數寸以爲飾[광수촌이위식], 云云[운운], 不以珠玉爲寶[불이주옥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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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하여, 여기서는 주옥을 보배로 알지 아니하고 은으로 만든 노리개를 남자들이 차고 다닌다고 한 것입니다. 이 濊[예]는 부족상으로 말하면 夫餘族[부여족]에 속하여 韓族[한족]으로 더불어는 좀 다른 내력을 가진 자이므로 풍속, 습관 등이 두드러지게 다른 것이 있는데, 주옥을 쓰고 아니 쓰는 것이 현저한 차이의 하나이었던 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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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에 살던 북방 계통의 부족 간에서 구슬을 중히 여기지 아니한 것이 본래부터의 일인지 중간부터의 일인지, 또 어떠한 이유의 일인지는 간단하게 말씀할 수 없는 일입니다마는, 여하간 그때 지나인의 눈에 이러한 차이점이 인정된 것처럼 반도에서는 구슬을 숭상하는 인민이 남방에 치우쳐 살았음이 실물에서도 증명되는 바인데, 이 풍속이 물을 건너 고대 일본으로 더불어 공통함은 우리가 매우 주의할 바입니다. 원채 반도에는 구슬을 숭상하던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으니까, 구슬에 대한 옛날 관념을 상고한다는 수가 없게 되었읍니다마는, 다행히 똑같은 풍속을 가졌던 고대 일본에는 여기 관한 사실이 더러 전하므로 얼마쯤 편의를 얻을 수는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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