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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朝鮮)의 학생(學生) 기질(氣質)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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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5
방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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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조선]의 學生[학생] 氣質[기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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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학생 기질은 지지 않는 데 있다고 한다. 프랑스의 학생 기질은 규율적이요, 숫자적(數字的)인 데 있다 하고, 영국·미국의 학생 기질은 모험성에 있다 하고, 일본의 학생 기질은 만용적인 데 있다 하면, 조선의 학생 기질은 어떤 것이라 할 것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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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평범한 것 같으면서 대단히 중대한 문제인 것이니, 이것의 건전하고 하지 못한 분간으로써 우리 전체 장래의 사활을 어느 정도까지 점칠 수 있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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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곳과 같이 자리잡힌 사회 같으면 20 내외의 학생들의 문제를 가지고 그다지 과중한 기대를 하거나 중대히 취급하지 아니하여도 좋을 것입니다. 그들은 배우는 중에 있는 사람이요, 아직 어린 사람이니, 그들의 직접 실사회에 나오기까지는 아직도 오랜 세월이 있는 까닭이요, 아직 성인이 아닌 이유로, 나어린 시절이라 하여 제풀대로 노는 것을 너그럽게 보아 줄 수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저들에게 있어서도 학생계(界)의 경향 기풍이 가장 중대시되어 그것을 선도하기에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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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사회는 자리잡히지 못했습니다. 옛날의 세력을 가지고 지탱하며 온 사회는 모조리 허물어져 버렸고, 새로이 지어진 것은 아직 완전히 선 것이 없는 세상입니다. 옛날 지식, 옛날 생각밖에 가지지 못한 인물들은 백·천 가지 일에 실패하여 패망하였으니, 그들은 재기할 기운도 재주도 없어저 버렸고, 오직 새 사람이다, 새 일꾼이다 하고 새 인물이 나와서 새 일을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아닙니까. 이 판에서 새로 자라 나오는 새 일꾼 중에, 제일 먼저 앞장서서 맨 먼저 뛰어나오는 것이 여러분 학생군(學生群)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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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니라, 또 여러분은 다른 나라의 학생과 달라서 학생으로부터 실사회로 뛰어나올 날이 멀지를 않습니다. 대개는 중학만 마치고 곧 뛰어나올 사람들이요, 더 간대야 10년, 20년 두고 연구할 사람이 못되고, 간신히 전문(專門)쯤 마치고 뛰어나올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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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까닭으로, 이 위 두 가지 까닭으로 ⎯⎯우리 사회와 같은 데서는 학생급처럼 중요한 급(級)이 더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학생들뿐만이 한국이 기다리고 있는 새 사람이요, 여러분뿐만이 새 일꾼입니다. 잘 되어도 여러분의 손으로, 이보다 더 잘못 되어도 여러분의 손으로 되게끔 모든 형편이 주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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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이라면 남이 업신여기고 흉보고 푸대접할 줄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리 싫어도 , 나는 ‘조선 사람이요.’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책임을 지기 싫어도, 아무리 싫어도, 잘 되게 하거나 잘 못 되게 하거나 조선의 새 운명의 책임을 미리부터 지고 있는 것이 여러분 청년 학생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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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갑갑한 우리의 새 운수(運數)를 점쳐보기 위하여 오늘 조선의 학생 기질이 어떤 것인가를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봅시다. 좀 진중(鎭重)한 생각으로 여러분도 각각 학교에서든지 하숙(下宿)에서든지 이것을 화제로 하여 이야기해 보십시오. 과연 오늘 조선의 학생 기질, 대표적 기질은 과연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다수의 학생의 기질·기풍이 어떠한 것인가…….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곧 우리 전체의 ‘명일’을 이야기하는 것 입니다. 우선 여기서 이야기해 봅시다. 무엇이 과연 대다수를 점하는 대표적 기질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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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학생들은 거의 반수나 될 만큼 안경을 쓰고 다니니 독서열이 많은 점에 학생 기풍이 있다 하겠습니까? 그 중에도 각(角)테 로이드 안경이 대부분이니 희극가를 좋아하는 낙천적인 점에 조선 학생 기질이 있다 하겠습니까? 남학생이나 여학생이나 나팔바지니 라디오머리니 하고 유행으로 눈감고 따라다니니 유행의 앞을 걸어가는 데 있다 하겠습니까? 의미깊은 강연회보다도 2, 3, 4배나 더 하는 관람료임에도 불구하고 각 극장이 매일 학생으로 만원이 된다 하니 남다른 애극가(愛劇家)라는 점에 조선 학생 기질이 있다고 자랑하겠습니까? 만일 이외에 또 있다면, 집집마다 월부 오르간이 있고, 하숙집마다 바이올린이나 플루트가 있으며, 가는 곳마다 선생 별명, 선진(先進)의 욕설을 기탄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음악 기호라는 점이나 선배를 욕하는데 과감하다는 점에 조선 학생 기질이 있다 하겠습니까? 그런 점에 있다고 하게 되어도 어심(於心)에 편안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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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학생 여러분, 나의 경애하는 학생 여러분! 우리 조선 학생 기질은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앞으로 뻗는 원기(元氣)가 있어 씩씩하다.’는 점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원기는 아무 때라도 있어야 하지마는, 오늘날 조선의 학생군에게 제일 먼저 있어야 할 것이 오직 원기입니다. 만용의 기(氣), 모험의 기상, 의협의 정신, 이 모든 것을 오직 씩씩한 원기에서 나올 것입니다. 나머지 초가 삼간이 마저 쓰러진다 하여도 그 집 젊은이에게 남달리 뛰는 원기만 있다 하면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오늘날 우리의 고생이 이보다 몇 배 더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새로 일어나는 학생군에게 씩씩한 원기가 넘쳐 뻗는 바 있다면 무엇이 슬픈 일이겠습니까. 원기외다! 원기외다! 새 사람들까지 늘어져서는 안 됩니다. 최후의 시각이 이마에 붙더라도 오히려 씩씩한 원기로 휘두를 기운을 가져야 아니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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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의 학생 생활 그 어느 곳에를 찾아가면 미더운 원기를 구경할 수 있습니까. 체조 시간에는 비단 와이셔츠를 아끼느라고 허리를 구부리고 머리를 긁으며 성한 몸을 병중이라 핑계하는 학생이 종종 있다고 합니다. 다른 기자의 말이나 혹은 투서류(投書類)에 적혀 오는 말을 듣고 노상에서 주의해 보면, 과연 물분을 바르고 다니는 남학생이 결코 한두 사람뿐이 아닌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당신은 조선의 아들이외다. 조선의 학생이외다. 싫거나 좋거나 조선의 새 운명을 좌우할 책임을 짊어진 청년치고는 야속하게까지 섭섭한 짓이 아니겠습니까. 심한 이는 이상한 빛깔의 와이셔츠 소매를 학생복 소매보다 길게 해 놓고 기생 종류가 띠는 비단실로 짠 분홍 허리띠를 양복 위에 매고 대활보하는 것을 봅니다. 나이가 젊은 사람이니 더러는 젊은 때 모양도 내 보고 싶겠지. 같은 값이면 색깔 고운 물건을 쓰고 싶어할 나이 때도 있겠지……. 그까짓 것을 가지고 과히 책망할 것은 없다고 스스로 도리켜 생각해 보기도 늘 하였습니다마는, 오늘 우리의 처지를 생각할 때 그런 것까지는 지나친 타락입니다. 학생 양복에 비단 와이셔츠를 입고, 더구나 기생배류(妓生輩類)의 허리띠를 사서 남이 보라고 겉으로 늘이고 다니는 그 심정을 생각하면 실로 기가 막히는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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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조선 청년이 그렇게 해도 좋겠습니까? 옆에 동무가 그렇게 하는 꼴을 보고도 달려들어 충고하거나, 빼앗아 없애거나, 경고 한 마디 해 주는 학우가 없을 만큼 조선 학생들이 모두 원기가 없어도, 그다지 없어도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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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학교로 조회 시간을 보러 다녀 봤습니다. 호령이 떨어져도 10분이나 넘어 꿈적거리는 그 늘어진 몸뚱이들, 죽지 죽지 못해서 살아 있는 몸뚱이, 움직이기가 지긋지긋한 아편쟁이 같은 태도, 조선의 장래가 너무도 한심하지 않습니까? 만일 그 각자 각자가 자기네의 책무(責務)를 자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신들의 발 소리는 쇠 소리 같을 것이요, 당신들의 입김은 그대로 불길 같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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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의 운동회마다 정성스레 쫓아다녀 봤습니다. 번화한 듯하면서 쓸쓸한 그 마당, 타오르는 불길같이 용솟음쳐 뛰어오르는 원기를 보기 어려웠습니다. 여러분의 학교 잡지를 정성들여 모아 읽어 보았습니다. 기운 하나 없는 늙은 샌님의 하품 같은 작문만 모아 놓은 것 외에, 읽는 사람의 조금 남은 기운조차 아주 늘어져 버리게 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는 데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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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학생들에게는 앞에 보이는 광명이 없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해 나가면 어떻게 어떻게 출세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길이 전혀 보이지 않으므로, 아무 노력도 없고 원기가 생길 수가 없습니다고 누구든지 말합니다. 그런 까닭으로 불쌍한 사람 중에도 더욱 불쌍한 사람이 조선의 학생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찌 하겠습니까? 불쌍한 처지에 있으니까 그것이 싫어서 자살해 버린다면 모르거니와, 불상하면 불쌍한 처지에 있을수록 남보다 더한 원기를 길러 갖추어야 아니합니까? 처지와 환경이 험난하면 할수록 그 험난을 능히 이기고 뚫고 나가서 새 세상을 가져올 기운을 길러 가져야 아니합니까? 지금 우리에게는 이 기운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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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한두 사람의 기운이나 우리 전체의 기운이나 결코 어느 한 시기에 별안간에 덩어리로 몰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극히 작은 일에서부터 게으름을 일소하고 원기를 진작해 가기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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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데 기울어지는 경향을 일소해 내는 것도 원기요, 문약(文弱)·연애에 흐르는 경향을 물리쳐 내는 것도 원기요, 작게는 학교 명예를 위하여, 크게는 조선 학생으로서의 명예를 위하여 일체의 긴장한 공기를 지어 내고 새로운 미더운 경향을 지어 내는 것도 오직 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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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남자 · 여자 간에 화사함을 즐기는 자는 학생계에서 천대를 당하게 되고, 일반 집회는 시간을 엄수하는 점으로나 내용이 긴장한 점으로나 엄숙해지고, 조기 운동·등산 운동이 성해지면서 전체로 새로운 원기와 패기가 넘쳐 흐르면 교원이 또한 이에 자극되고, 부형이 자극되고, 또 일반 사회가 자극되어, 신흥하는 패기는 이윽고 삼천리 전폭에 차고 넘칠 것이니, 온갖 모험의 기(氣)와 지지 않으려는 기백은 그 속에서 샘솟아 나올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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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학생 여러분! 일은 결코 커다란 데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나, 심사(深思) 또 심사, 당신과 함께 뜻있는 학생 간에 이 일이 여론화하게 힘쓰지 못하겠습니까? 우선 이것이 학생계에 문제가 되어야겠습니다. 의논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하숙마다 이것이 논의되고 학교마다 이것이 논의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학교마다의 한 힘있는 여론이 되어 가지고 그것이 상급으로부터 하급에 차차로 퍼져야 하고, 한 학교가 그리 되는 동안에 전체가 그리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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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5월, 《학생(學生)》1의 3〉
【원문】조선(朝鮮)의 학생(學生) 기질(氣質)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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