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닭 ◈
카탈로그   본문  
미상
이명선, 곽말약(郭沫若)
목   차
[숨기기]
1
(郭沫若[곽말약])
 
 
 

일(一).

 
3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데는 동경(東京)시에서 얼마 떨어저 있지 안은 강호천(江戶川)이라고 하는 내 건너에 있다. 십여분간 전차를 타고 다시 한 반시간쯤 걸리면 동경 도심지대에 다달은다. 그러나 여기는 아주 완전히 시골이다.
 
4
살고 있는 집은 기리가 사장(四丈), 넓이가 일장 반(一丈半)쯤 되는 장방형(長方形)의 집으로, 구격이 똑 바른 한일자 집이다. 그 속을 오륙간으로 칸을 막어서 서제, 객실, 자노마(茶室), 부엌, 어린아이들 공부하는 방까지 있어 소위 ‘참새가 작기는 하야도 오장육부가 다 있다’는 격이다.
 
5
집 앞에는 시렁을 매어 등(藤)나무를 올리고 그 앞에는 채마밭과 화단을 겸한 공기가 건평보다 좀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공지에는 흑인들의 쨔스 음악식으로 각종 화초가 잔득 심어 있다. 장미화 옆에 자소(紫蘇)가 훨신 자라 있으며, 목연화 밑에 조천숙(朝天椒)이 짝 부터있고 한복판에는 모란을 중심으로 하야 그 은저리에 우방(牛蒡)이 있고, 양하(蘘荷)와 도마도가 한데 이웃하야 있다. 이처럼 아주 무질서한 상태라, 전문적인 원예가나 혹은 가축을 길르고 원정(園丁)을 둔 사람들이 본다면 물론 웃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우슴거리밖에 안되는 성적에 대하야서도 나는 성명하여야 하겠다. 이것이 모두 안해와 어린아이들의 노력의 소산이지 나라는 이 ‘게름뱅이’는 여기에 조곰도 공헌하지 않은 것이다.
 
6
뜰 주이에는 엉성한 대나무 울타리가 둘러 있고 서쪽과 남쪽 울타리 밖은 모두 논이 되어서, 어린아이들이 이 논둑에 나단일 수 있도록 서남방 구역지를 티어 놓았다. 동편에는 S라는 성(性)을 가진 일본인이 살고 있는데 그 남편(男便)은 동경 모회사에 단이고, 그 분인이 우리 집과 퍽 친하게 진내어 두 집 사이의 울타리를 한 중간쯤에서 티어놧다. 게화(桂花)나무와 매화나무가 그 곳을 푹 덮어서 언듯 봐서는 알지 몯하얐다. 그러나 두어 달 전에 형사가 하나 왔다가 단번에 이것을 간파하얐다. “흥, 이웃집과 통합니다 그려!” 그는 별로 염두에도 두지 안은 듯이 말하얐다. 나는 속으로 깜작 놀랫다. 그네들처럼 특별한 훌련을 받은 사람은 암만해도 닯다. 잠간 남의 집에 들어와도 단번에 그 집 주인의 도망갈 구멍을 알어채는 것이다.
 
7
집 뒤로는 딱 붗어서 송판대기로 둘러 막고, 대문은 그 동북 모통이로 났다. 대문 밖은 지주의 채마전이고, 이 채마전 건너편 큰길로 통하는 좁다란 길이 한 가닥 나 있다. 그 큰길은 자동차가 단기고 부근에 철관공장(鐵管工場)이 하나 있기 때문에 늘 철판이니 철재를 싫은 자동차가 왕내하고 있다. 이것이 이 동리의 평화한 공기를 요랂게 하는 유일한 큰길이다. 큰길 건너 편으로 소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슨 나지막한 산이 있어 거기가 동리 사람들의 공동묘지로 되어 있다.
 
8
나의 안해 양게벽(養鷄癖)은 예나 다름없이 지금도 몇 마리 치고 있다. 뜰 동남 편 구역지에다가 철사로 닭ㅅ장을 만들고 그 속에는 지상에서 서너치 높이가 되는 닭ㅅ집을 지었는데 이것이 닭의 침실이다. 닭ㅅ장과 대문이 서로 맛대있고 그 사이에 나무가 들어서서 겨울이 아니면 대문 밖에서는 그렇게 용이하게 보이지도 안는다.
 
9
칠월 말에 레구홍 한 마리가 알을 안으랴고 할 때 뒤ㅅ산에 사는 H라는 대목의 여펜네가 않기겠다고 빌리어 가버렸다.
 
10
얼마 안 있다가 중학과 소학에 단기는 어린아이들이 여름 방학으로 돌아와서 즈 어머니는 이 아이들을 다리고 근처 해안에 해수욕을 하러 갔다. 이것은 아이들의 몸을 달련하야 겨울에 툭허면 감기가 들어 딴 병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간 것이다. 아이 어머니는 사실에 있어선 더 편벽한 데로 가서 여전히 살림일을 하여야 하니까 다른 사람들 피서와는 물론 의미가 다르다. 나도 같이 갈여면 갈 수 있는 것이다. 이 길기만 한 집은 잔득 직히고 있을 값어치가 있을 리 없고, 오즉 길으는 닭 몇 마리가 맘에 걸리기는 하겠으나, 갖다 팔든지 잡어먹든지 하면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만 나에게 문제가 될 만한 사정이 있다. 내가 어데고 새로 이동하야 가면 새 형사의 보호를 ─ 일본 형사는 사양해서 감시라는 두 글자 대신에 보호라는 말을 쓴다 ─ 받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것이 처자들을 도모지 부자유하게 만들 것 같다. 그래서 나만 집에 머믈러 자취 생활을 하야 잠시동안 그들과 떨어저서 그들로 하야금 정신적으로 유쾌하게 하고, 나도 이 시기를 이용하야 얼마간의 돈버리 일을 해 보자는 것이다.
 
11
그들은 해안에 갔다가 한 달도 채 몯돼서 팔월 말경에 돌아왔다. 구월 일일부터 중학 소학이 일제히 개학하야 아이들은 또 그전처럼 통학생활을 시작하얐다. 큰 아이들 둘이 단기는 중학교는 동경에 있기 때문에 아침과 점심 변도를 준비하여야 하며 또 전차를 타고 가서 지각하지 않도록 하랴면 아이 어머닌 아모래도 다섯 시 전후해서는 일어나야 한다.
 
12
구얼 십일 날 아침 나절 H의 여펜네는 빌려갔든 레구홍을 도로 가지고 왔다. 그 여펜네는 벌서 그 산에 살지 않었다. 소문에 듯쟈니까 다달이 내는 오원식의 집세가 아홉 달이나 밀리어, 집 주인한테 쪼껴나서 지금은 동리 동쪽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13
닭은 빌려간지 오주일 동안에 좀 적어진 것 같었다. 날개와 다리를 묶어서 시렁을 맨 기둥 밑에 부뜰어매어 엎울어저 있었다.
 
14
그래서 나는 그 ‘레구홍’을 부뜰어맨 것을 풀러서 닭ㅅ장 속에 노아주었다.
 
15
닭끼리는 서로 떨어진지 오주일만에 벌서 전연 알어보지 몯하는 모양이다.
 
16
그 전부터 있든 암닭 세 마리와 숫ㅅ닭 한 마리가 모다 쪼랴 뎀비고 불과 몇 일 전에 사다 넌 암ㅅ닭 두 마리까지 저들도 그전부터 있는 닭한테 혼이 나고 있으면서도 덩다러 뎀벼드는 것이다. 이리하야 이치로 땃이면 제 고향에 돌아온 이 암ㅅ닭이 도리혀 자유를 잃고 그 속에 굴러 있는 간장통 속에 몸을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17
이튼날 오후에 나는 우연히 닭ㅅ장 옆에 갔을 때 그 암ㅅ닭이 눈이 띠이지 않었다. 그러나 그 집속에 숨어 있으려니 하고 별로 주의하야 보지도 않었다. 내가 안나(安那[作者[작자]의 婦人[부인] ])한테 말하니까 그도 필시 그 집속에 숨었을 것이라고 대답하얐다. 이런 것이야 물론 닭ㅅ장 속에 들어가서 그 집속을 조사하야 보면 단번에 명확할 것이다. 그 놈의 수ㅅ닭 한 마리가 아주 싸홈 대장이라, 닭장을 무슨 난공불낙(難攻不落)의 성인 것처럼 직혀 닭ㅅ장 속에 드러갈려고만 하면 맹열히 뎀벼들어 쪼는 것이다. 그래서 닭ㅅ알을 가저올 때도 밤에 몰래 끄집어 내오는 수밖에 없었다.
 
18
그 이튼날 오후가 되어도 그 암ㅅ닭은 보이지 않었다. 우리는 혹 다른 닭한테 쪼여서 그 집속에서 죽지나 않었나 하고 안나가 그 숫ㅅ닭을 닭ㅅ장 밖으로 꾀어낸 뒤 그 속에 들어가 조사해 보았으나 그 암ㅅ닭은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19
이 닭이 없어진 데 대해서 언제 어떻게 없어젔나가 당연히 문제가 되었다. 내 생각같애선 그 닭이 돌아온 십일 날 밤에, 그 집에서 쪼껴 나왔다가 그은저리에 숨어 있든 쪽제비한테 물려간 것 같었다. 안나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쪽제비는 피만 빨아먹지 닭은 물어가는 법이 없고, 또 물어갔다 치드라도 닭ㅅ장 안에서 그 은저리에 피 흔적이라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안나는 여성의 독특한 제 육감을 가지고 누가 흠처갔다고 단정하얐다. 한 번 왔으면 또 한 번 올 것이고 닭을 흠쳐갔으면 다른 것도 흠처갈 것이라고 그는 붗어 말했다. 닭이 없어진 십이일부터 그는 특별히 조심하야 밤에는 문을 꽉 잠그고 닭ㅅ장도 닭이 잠든 뒤에 가서 제 손으로 채웠다.
 
 
 

이(二).

 
21
오늘은 십사일이다.
 
22
새벽 다섯 시 반쯤해서 서남편 들창문을 여니까 양화 꽃 향기를 먹음은 새벽 바람이 정신이 번쩍나게 얼굴에 확 불어왔다. 서남 편에 있는 옹이가 많어 뒤틀린 늙은 매화나무, 그 밑에 무성한 푸른 입사구와 흰 꽃을 단 양화, 그리고 꽃봉오리가 금시에 필랴고 하는 부용(芙蓉) 이밖에 뜰 우에 있는 왼갓 것이 아즉 잠을 깨지 않고 있다.
 
23
그 때 돌연 흰 닭 한 마리가 눈에 띠였다. 그 동남 편 철망 속 누런 꽃이 핀 쑤셈이 넝쿨이 엉키어 있는 곳에 ─.
 
24
(없어젔든 닭이 돌어온 것이 안일까?)
 
25
이러한 생각이 뇌신경 중추에 떠오르자마자 벌서 소리가 먼저 나왔다.
 
26
─ 파오(博 [作者[작자]의 아들의 일홈])! 너 좀 가봐라. 닭이 돌아왔나보다.
 
27
나는 옆방에서 들창문을 열고 있는 둘재 아이한테 일렀다.
 
28
─ 그럴 리 없어요. 그 전부터 한 마리 있어요.
 
29
아파오(阿博)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얐다. 그 애는 벌서 그 닭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30
─ 그 전부터 있는 것은 좀 누리께 하고 털도 저렇게 반지르하지 않을 게다.
 
31
나는 여전히 나의 생각을 주장하얐다.
 
32
연다러 넷째 게집아이 슈쓰(淑子)도 모기장 속에서 기어나와 나 있는 데로 쫓어왔다.
 
33
─ 어듸요? 흰 닭이요?
 
34
일변 두 손으로 눈을 비비며 일번 물었다. 그리하야 그 닭을 보드니 아파오와 마찬가지 소리를 한다. 그럴 리가 없고 흰 닭은 그 전부터 있는 것이라 한다.
 
35
─ 아이들은 나와 의견에는 모두 반대하며 하나도 가 볼려고 하지 안는다. 내 자신도 그냥 들창문을 열고 있었다.
 
36
얼굴에다가 거멍 칠을 한 안나가 머리도 푼 채 맨발로 후면 서북 편 부엌에서 앞뜰로 돌아나왔다. 그는 바로 닭ㅅ장 앞에 머춤하니 슨 채 좀 머리를 기웃둥거린다.
 
37
─ 그렇지?
 
38
나는 마루에 멀지간이 서서 물었다.
 
39
그는 대답을 하지 않은 것 같다. 혹은 대답한 소리가 적어서 반 귀먹어리인 [作者[작자]는 가는 귀가 먹었다.] 내 귀에 들어오지 않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돌아서서 우리 있는 데로 와서 몹시 이상하다는 듯이 말하얐다. “아이 참말로 그 닭이오!”
 
40
이 놀라온 소식은 곧 쫙 퍼저서 아이들은 모다 헐러벨덕 하고 닭을 보러 몰려갔다.
 
41
닭을 만약 누가 흠처갔다가 돌려보냈으면 그 통로는 물론 그 울타리의 두 군데 티워진 곧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처자들이 뜰이 조사한 결과 새로운 발자옥은 도모지 없었다.
 
42
집안 식구가 부엌 마루 창 우에 둘러앉어서 아침을 먹을 때에도 화제의 중심은 역시 이 닭이 돌어왔다는 데 있었다. 닭을 흠처갔다가 돌려보냈다는 것도 물론 놀랠 일이다. 그러나 이러이러한 사람이 이러이러한 놀라운 일을 하얐다는 것은 더구나 한 개의 기적과도 같다. 이것이 누굴가? 누가 왜 이러한 기적을 행하얐을가? ….
 
43
─ 암만해도 H라는 일본인 대목의 짓 같다.
 
44
나는 말하였다. 그 여펜네가 닭을 빌려간 지가 꽤 오래 되었었고 아마 이것은 H가 돌려보낼려고 하지 않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여펜네가 도로 가지고 온 그 날 밤에 흠처가버린 것이다. 닭ㅅ장도 그 자가 만들지 않었는가? 통로에 대해서 그 자는 횅할 것이다. 아마 흠처갔다가 부부 사이에 싸홈이 버러저서 어제밤에 또 몰래 갖다 논 것이다.
 
45
안나는 극단으로 나의 의견에 반대하얐다. 그는 H의 여펜네는 의리를 직히는 사람이라고 말하얐다.
 
46
─ 옳구먼 그래. 의리를 직히는 사람이니까 돌려보냈지.
 
47
─ 분명히 우리 집 닭인 줄 알면서 흠치러 오다니 그들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을 게요.
 
48
─ 그 여펜네야 안하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 목수는 능히 할 것이어. 그 자는 지금 한참 몰리는 판이라구 하잔어?
 
49
안나는 종시 그들을 변호하얐다. 그들은 지금은 궁하게 지내지만 전에는 잘 살었었다. 그들은 화태(樺太) 사람으로 동경 대지진 후 일년 지나서 왔는데 무슨 큰 공사를 떠맡어서 큰 돈을 남길야다가 그만 게산이 틀려서 실패하얐다는 것이다.
 
50
아침을 먹고나서 큰아이들 넷은 모두 각각 학교로 갔다. 안나는 그릇을 치우면서 나한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한 번 그 닭을 가 보시요. 그것은 어째 우리 닭이 안인 것 같읍니다. 닭 벼슬이 좀 더 컸었든 것 같어요.”
 
51
내가 난 지 반년밖에 안된 홍얼(鴻兒)을 안고 나스니까 그는 말을 이었다.
 
52
“닭ㅅ집을 열어놓지 마셰요. 닭이 나오지 몯하게. 좀 있다가 H의 여펜네를 불러다 그 닭인가 안인가를 보여 보겠어요.”
 
53
그가 H의 여펜네를 불러온다는 데에는 나도 매우 찬성이다. 그는 그 여펜네한테 닭을 봐 달라지만 나는 그의 얼굴빛으로 나의 문제의 답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54
나는 뜰을 대각선(對角線)으로 걸으면서 지면의 발자옥을 주의하야 보았으나 정확하게 그 전 발자옥과 새 발자옥을 구별할 수 없었다.
 
55
얄구진 암ㅅ닭은 닭ㅅ장 속에서 유연히 모이를 주어먹고 있다. 털은 백학처럼 하얗게 간초롱하고 벼슬은 맨두람이 꽃처럼 밝앟고 귀 밑으로 일부분이 유달리 히어서 레구홍의 특증을 표시하고 있다. 다만 머리 맨 꼭댁이의 일부분이 색이 좀 흐리고 또 한쪽으로 몰려 있지 않다. 이 닭은 대개 순종(純種)이 안일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이것이 그 전부터 있든 닭인지 안인지는 나로서 단정할 수 없었다. 그 전부터 있든 닭은 자세히 보아둔 일이 없었고 H의 여펜네가 가지고온 닭도 인상이 도모지 모하하얐기 때문이다.
 
56
얼마 안있다가 안나도 닭ㅅ장 옆에 왔는데 그는 아모리 하야도 이것은 그 전부터 있든 것이 아니고 어쨌든 H의 여펜네를 불러다 보여야겠다고 주창하얐으나, 근심이 되어서 몹시 맘에 걸린다고 말하얐다.
 
57
나는 그의 이러한 심정을 일종 이상한 심리라고 생각하얐다. 돌아왔다든가 이 닭을 누가 갖어왔다든가는 그에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그의 생각의 초점은 외인이 밤에 두 차레나 우리 뜰에 침입하얐다는 이 일점에 있다. 그는 이 닭의 배후에 무슨 좋지 몯한 증조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는 일종 막연한 공포를 느끼어 앞으로도 또 외인이 밤에 침입할 것이라고 근심하였다.
 
58
닭ㅅ장 앞에서 홍얼을 그에게 맛기고 나는 동편 낭하를 지나 나의 서제로 향하얐다.
 
 
 

삼(三).

 
60
언제 나갔나 모르게 나갔든 안나가 홍얼을 업고 돌아와서 동편 유리창 밖을 지나갔다. 뒤에는 그 키 짝달만한 H의 여펜네가 딸어왔다. 여펜네는 나를 보고 그 적은 키를 두어 자밖에 안되게 꾸불이어 인사를 하얐다. 영양부족으로 파리한 그 세모진 얼굴에다가 창백한 우슴을 띠우니까, 그 앞니도 송곳니도 다 빶인 빈 입몸만이 입술 사이로 내다 보였다. 나는 그의 웃는 얼굴을 보고 바로 내가 의심한 것이 잘못인 것을 깨달았다. 그의 태도는 평소와 조곰도 달름이 없는 것이다. 만약 닭을 참말로 그의 남편이 훔처갔다가 그가 도로 갖다 놓았다면 그의 웃는 얼굴이 결단코 그처럼 천진란만할 수 없을 것이고 그의 태도도 그처럼 침착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또 알 수 없게 되었다.
 
61
그들 둘은 곳장 닭ㅅ장으로 가서 거기서 한참 조사하고서 돌아왔는데 그들 말에 의하면 이 닭ㅅ은 그 전부터 있든 닭과 조곰도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62
그들은 등을 올린 시렁 밑으로 해서 서편 남향으로 된 마루로 차를 마시러 갔다. 얼마 안 있다 S부인도 게화나무 밑 울타리 터진 데로 해서 우리 집으로 왔다. 이 여자는 부신(副腎)에 병이 있는지 언제나 얼굴에 검은 빛이 나고, 몹시 파레하였다.
 
63
세 여자들의 말소리로 그들이 거기서 토론되는 것은 물론 닭의 문제를 벗어나지 몯했는데 다만 내 귀가 시원칠 않어서 그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분별할 수 없었다. S부인의 말소리는 코ㅅ소린가 닭에 무슨 먹을 것을 입에 물고 떠드는 것 같아서 제일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 말소리 속에서 의외에도 조선인(朝鮮人)의 세 글자를 들었다.
 
64
─ 아아 조선인!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으며 어두운 길에서 돌연 광명을 발견한 것 같았다.
 
65
일천 구백 이십 삼년(一九二三年)의 대지진으로 페허가 되었든 동경은 십년 동안 경영하고 글래(近來)는 다시 범위를 확대하야 일약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세게 제이(世界第二)의 대도시로 되었다. 피상적(皮相的) 관찰자는 혀가 달토록 일본인의 건설 능력을 칭찬하야 그들의 동경이 불 속에는 재생한 봉황같이도 형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봉황을 불 속에서 재생케 한 것은 도리혀 대지진 당시에 일본인에게 대살육을 당한 조선인이 아닐가. 이것은 뜻밧게도 일종의 반어(反語)가 되는 것이다. 팔구만의 조선 노동자가 비바람도 피할 수 없는 벌판에다가 동경을 회복해 놓았다. 아니 ‘대동경’을 맨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얻은 보수는 무었이었을까? 치사의 뜻을 표하는 두 글자 ─ 그것은 곧 ‘실업’이다.
 
66
그들은 대개 삼십 전후의 장성으로 조선의 소농(小農)이다. 혹은 소지주의 아들들이다. 그들이 지어먹든 전지는 외인에게 약탈 당하고 살어 갈 길이 없어서 동경으로 온 것이다. 다시 동경서 실업하면 방낭하는 노예가 되는 수밖에 없다. 어데고 일터를 찾어서 사방의 시골로 이동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지방만 해도 확대된 동경과는 불과 내 하나를 격하였을 뿐, 현(縣)이 다른 시골이지만 실상은 이미 동경의 교외가 된 것이다. 대동경 꼬랭이라도 되어 보겠다고 근처의 소도시는 무수한 주택을 새로 지어 나가고 있다. 이리하야 적지않은 조선인이 여기까지 밀려온 것이다.
 
67
조선인이 하는 노동은 죄다 땅 파는 막일이며, 부근의 흙산을 파다가 장터 부근의 전지와 소(沼)를 메우는 것인데 이것은 일거양득의 공사다. 얕은 데는 메우고 흙산은 깎아내어 두 군데나 다 집 짓는 기지가 되는 것이다. 흙을 운반할 때는 네 박쿠 구루마를 쓰는데 이것은 차대(車台)를 네 박쿠 우에 놓고 차대 우에다가 네모진 나무통을 올려 놓았다. 나무통을 차대 우에 올려놓면 곧 흙을 담게 되나 한 번 차대를 옆으로 떼밀면 담았든 흙이 일제히 쏟아지는 것이다. 구루마가 단기는 데는 경편한 철로가 깔리어 있고, 대개 한 구루마에 노동자 둘이 부터 뒤에서 밀고 간다. 우리 집 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흙을 파가는 데 공사가 있을 때는 날 좋은 날 새벽 일즉이 우리가 아즉 이러나기도 전에, 벌서 흙 파 날르는 구루마를 궤도 우로 더르를 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더르를 소리는 날이 아주 깜깜해저야 끝인다. 나는 각금 어린아이들을 다리고 공사장에 가서 그들의 노동하는 것을 보았다. 흙산을 우에서 열자 이상이나 판 뒤 그 깍까질린 단면(斷面) 밑에 두어 사람이 서서 속으로 파 들어가면 그 우에 열자 이상이나 되는 흙이 제 힘이 몯 이기어 헐어지는 것이다. 십여 대의 빈 구루마를 더르를 하고 밀고 올러와서 이삼십 명의 구루마ㅅ군이 일제히 삽으로 흙을 파 실는다. 구루마로 하나 잔득 되면 다시 구루마 뒤에서 두 팔과, 다리에 힘을 주어 일제히 밀고 나간다. 이것이 왼종일 게속된다. 구식 문ㅅ자를 써서 형용한다면 소나 말같이 일한다 하겠는데 기실은 소나 말도 그들만은 몯할 것이다.
 
68
그들에게는 십장이 있는데 대개 밥장사를 겸하고 있는 조선인으로, 노동자들은 거기 기식하고 있다. 그들이 동경서 노동할 때는 하루 칠십전의 임금을 받으나 십장한테 이십전 떼고, 또 매일 식비로 이십전을 떼여 남는 것은 불과 삼십전이다. 그러나 이것을 일거리가 있을 때 이야기지 일거리가 없슬 때는 식비는 무러야 하고 할 수 없이 십장한테 돈을 꾸든가 외상밥을 먹든가 해서, 결과는 대다수의 노동자가 모다 몸을 판 노예로 떠러지는 것이다. 시골로 밀리어오면 임금은 더 싸고 노동할 기회는 더 적어서 노예가 될 기회는 더욱 많아진다.
 
69
그들이 주인 집에서 먹는 것이란 참으로 가련하다. 매일 세 끼 죽뿐인데 속에는 욱어지민 든 것을 그들은 상식(常食)으로 한다. 그들은 결코 식욕이 부족한 병자가 아니다. 아니 도리혀 아즉 젊고 힘이 풀풀 나는 극열한 노동을 하는 장정이다. 그러나 그들은 매일 죽을 먹고 때로는 그 죽이나마도 몯 먹는다. 그리고서도 만족할 수가 있을 것인가?
 
70
─ (그렇다 조선인이다!)
 
71
내가 S부인의 조선인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내 심중에는 이러한 광경이 떠올랏다. 근자에 이 시골로 밀려온 조선인이 주인집에서 동무들이 충동거리는 바람에 또 제 자신의 식욕에 껄리어 십일 날 밤에 닭을 훔치러 나왔다가 마침 우리 집 뜰에 들어와서 꼼작달삭 몯하는 닭ㅅ장에서 그 암ㅅ닭을 흠처간 것이다. 주인집에 도라가서 동무들한테 흠처온 곳을 말하다가 동무 중에 이 곳에서 좀 오래된 사람이 그것이 우리 집 뜰인 줄 알고, 흠처온 동무한테 타일렀을 것이다. “여기 자네가 들어갔든 데는 중국인이 사는 집일세. 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 경찰한테 욕을 당하고 있는 사람일세.” 이러한 이야기로 말미아마 그 닭은 바로 잡어먹지 않고 흠처갔든 사람이 나흘재 되든 날 밤에 도로 갖다가 놓은 것이다. 어찌하야 또 이처럼 도로 갖다가 놓은 데 몇 일식이나 걸리었는가는 아주 쉽게 설명할 수가 있다. 아마 요 몇 일동안 너무나 피곤해서 잠을 안 자고 나올 여력이 없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식욕과 의리가 서로 다투어 몇 일을 두고 다투다가 그여히 의리가 승리를 얻은 것이다.
 
72
그 닭이 도라왔음에는 이 이외의 가능한 다른 해석은 없다.
 
 
 

사(四).

 
74
두 연인네들과 한 반시간이나 쑥떡어린 후에 안나는 어린아이를 안고 나 있는 데로 왔다. 공론이 어떻드냐고 물으니까 나의 추측에 억으러지지 않게 그는 대답하였다. “S부인은 ‘조선 노가다’가 흠처갔든 것 같답니다. 여기 조선 노가다들은 닭이나 개 흠처다 잡아먹는 것은 아주 상습이 되어 있다고 합듸다.”
 
75
동시에 그는 또 조선인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풍설을 알려 주었다. 이것도 S부인이 금방 안나한테 전하고 간 것이다.
 
76
이것은 동경시 한 귀퉁이 M라는 곳에서 이러났다 한다. 시골서 나물을 뜯어서 시내로 팔러온 행상하는 여자 하나가 조선인의 합숙소에 팔러 갔었다. 그랫드니 ‘조선 노가다’들이 그 여자를 꾀여가서 강제로 윤간을 하고 그리고 죽여가지고 아주 버젓하게 가진 양념을 다하야 국을 끌이었다. 마침 이 합숙소 주인이 그들의 십장인데 여기 왔다가 그들이 권하는 대로 같치 앉어 먹었다. 먹다가 그 십장은 변소에 가서 돌연 똥통 속에 여자의 머리와 손발을 발견하고 그제서 지가 먹은 것이 사람고기인 줄을 알었다. 그는 곧 경찰에 밀고하야 사건이 탈로난 것이다.
 
77
이러한 풍설은 물론 동경 대지진 때 조선인이 살인 방화를 한다는 풍설과 마찬가지로 전혀 터무니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풍설이 되고 또 사람들이 서로 믿게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조선인은 전지도 가옥도 외인에게 빼았기고 고향에서 떠나와서 약탈자들 밑에 노예가 되어, 하루 이삼십전 될가말가 한 피땀어린 돈으로 집안 식구를 멕여 살리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교육 받을 기회를 자연 빼았기어 그들에는 소위 고등 정도의 교양은 없다. 그러나 그들이나, 무슨 대학 교수니 덕행이 높은 교육가니 종교가니 하는 약탈자들이나, 다 같이 사람이고, 다 같이 동물이고, 다 같은 식욕과 성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식욕과 성욕의 요구는 압박자와 피압자 사이에 보편적이어서 이것이 곧 그러한 풍설을 돌게 하는 주요한 이유다.
 
78
석가무니도 음식을 먹어야 하고 공자님도 아들을 나어야 한다. 일본서 방낭하는 여러 만명의 조선인 노예가 닭을 흠칠 뿐만 아니라 풍설의 종자를 뿔이게 하는 것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원문】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번역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11
- 전체 순위 : 4189 위 (3 등급)
- 분류 순위 : 574 위 / 881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1) 나들이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제목]
 
  이명선(李明善) [저자]
 
  # 곽말약(郭沫若) [저자]
 
  소설(小說) [분류]
 
  # 번역소설 [분류]
 
◈ 참조
  닭(-)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본문   한글 
◈ 닭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5월 0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