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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女子)의 이인(異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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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최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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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子[여자]의 異人[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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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뿐 아니라 一[일]여자로 남 모르는 중에 신기한 일을 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있읍니다. 세상에 드러난 사람보다 숨었던 사람이 큰 일을 했다 함이 설화적으로 흥미 있다 한 것과 똑같은 이유로서, 남자보다도 여자로 그러한 인물이 있더니라 함이 더 효과적임을 이야기 만든 이가 생각한 결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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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亂[임진란]의 민간 활동자 중에서도 유명한 倡義使[창의사] 金千鎰(김천일)이란 어른의 부인은 본래 뉘 댁 따님인지 모르는데, 시집 오던 날로부터 아무것도 일하는 것이 없고, 날마다 낮잠으로 세월을 보내거늘, 그 시아버지가 하루는 경계하기를, 「네가 과연 얌전한 사람이로되, 다만 婦道[부도]를 모름이 欠節[흠절] 아니랄 수 없다. 대범 부인에게는 부인의 직책이 있어서 남의 집 며느리로 오면 살림살이를 잘 해야 하는 것이거늘, 여기는 마음을 두지 않고 날마다 낮잠만 일삼으니 웬 일이니?」 며느리의 대답이 「예, 治産[치산]을 하려한들 빈손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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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가 그도 그러하리라 하고 곧 粗穀[조곡] 三○包[삼○포]와 노비 四[사], 五口[오구]와 牛[우], 數隻[수척]을 내어주어 가로되 「이것만 가지면 治産[치산]할 거리가 되겠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그만하면 좋습니다」 하고, 이내 노비들을 불러 세우고 일러 가로되 「이제부터는 너희들이 내게 매인 사람이니, 무슨 일이든지 죄다 나의 하라는 대로 하렸다. 너희가 이 곡식을 이 소에 실려 가지고 茂朱[무주]의 아무데 河峽中[하협중]으로 들어가서,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이 벼로써 農糧[농량]을 삼아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서, 매년 추수의 所出[소출]을 實數[실수]대로 와서 고하고, 곡식은 作米[작미]를 하여 꼭꼭 쌓여 두되, 매년 이렇게 하렸다」 하여, 노예들이 명령을 받고 茂朱[무주]로 가서 居生[거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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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한 뒤 수일에 남편에게 향하여 가로되 「사나이가 수중에 돈이 없으면 백사가 불성인데, 어째서 이 생각을 아니하시오?」 金公[김공]이 가로되 「내가 侍下[시하] 人事[인사]로 의식을 죄다 부모께 의뢰하고 지내니 錢穀[전곡]을 어디 가서 辦出[판출]한단 말이오?」 부인이 가로되 「소문을 듣자하니, 洞中[동중]의 李某[이모]라는 사람이 집에 누만금을 쌓아 두고 천성이 노름을 즐긴다 하니 서방님이 그 집에 가서 천석 노적가리 하나를 태고 내기를 한 번 하면 어떠시오?」 공이 가로되 「이 사람이 노름꾼으로 自來[자래] 유명하고, 나는 솜씨가 보잘것 없으니, 어쩌자고 그런 마음을 먹는단 말이오?」 부인이 가로되 「예, 어렵지 않습니다. 장기판을 가지고 오기만 하시오」 하여 마주앉아서 온갖 묘수를 낱낱이 일러 주니, 金公[김공]이 원채 잘난 사람이라, 반일 동안 對局[대국]하여 陳法[진법]을 환하게 다 깨친대, 부인이 가로되 「그만하면 넉넉히 이길 것이니 서방님이 三局兩勝[삼국양승]으로 약조를 하시고 첫판은 짐짓 지고 둘째 판, 세째 판은 간신히 이겨서 그 노적가리를 얻은 뒤에, 그 사람이 또 두자고 하거든 그 땔랑은 신묘한 모든 수를 내어서 다시는 더 두자고 할 생의를 못 내게 만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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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公[김공]이 그 말을 그렇게 알아서, 이튿날 곧 그 사람의 집으로 가서 내기 장기를 두자고 한즉, 그 사람이 웃어 가로되 「자네하고 나하고 한 동리에 살되 노름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거늘, 별안간 와서 내기를 두자 하니 모를 일일세, 그러나 저러나 자네가 내 적수가 되지 못하니 對局[대국]할 것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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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公[김공]이 가로되 「두어 보아야 수를 알지, 미리 내댈 것이 무엇인가?」 하여 여러 번 강청을 한즉, 그 사람이 가로되 「정 그러하면 나는 평생에 내기가 아니면 장기를 두지 않으니 무엇을 태고 두려 하나?」 공이 가로되 「자네의 집에 천 석짜리 노적가리가 三[삼], 四[사]덩어리 되니 그것을 태고 두세」 그 사람이 가로되 「나는 그리 하려니와 자네는 무엇을 태고?」 공이 가로되 「나도 천석을 태지」 그 사람이 가로되 「자네가 시하 사람으로서 불소한 곡식을 어디서 판출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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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 가로되 「그야 승부를 판결한 연후에 할 말이지, 지기만 하면 어련히 내기 시행을 하겠나」 그 사람이 억지로 판을 벌이고 兩勝[양승]으로 작정을 하고서 첫 판에 金公[김공]이 거짓 지매, 그 사람이 웃어 가로되「그저 그렇지, 자네가 나에게 적수는 아니라 하지 않았나」김공이 가로되 「아직 두 판이 남았네. 또 두어 보세그려」 李[이]씨가 마음에 이상히 생각하면서 다시 對局[대국]하여 내리 두 판을 지니, 李[이]씨가 놀래 가로되 「어, 야릇하고 야릇하고, 이럴 이치가 있나. 내기에 탠 곡식 천 석은 곧 내어 주려니와, 어디 한 판 더 두어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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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公[김공]이 허락하고 다시 내기를 붙이고 對局[대국]을 할새, 별별 기묘한 수를 다 내놓으매 李[이]씨가 勢窮力盡[세궁역진]하여 그만 꼼짝을 못하는지라, 김공이 웃고 일어서서 돌아와 부인에게 이런 말을 한대, 가로되 「예, 그럴 줄 알았지요.」 공이 가로되 「그래 이만한 천량을 장만하였으니 무엇에다가 쓴다는 말이오?」 부인이 가로되 「서방님의 친구 중에 빈궁해서 婚喪[혼상]을 치르지 못하고, 또 생활을 위해서 애쓰는 이들에게 적당히 나누어 주기도 하며, 원근과 귀천을 물론하고 奇傑[기걸]하게 생긴 양반이 있거든 깊이 친교를 맺어 날마다 모시고 오면, 잡숫고 대접할 거리는 내가 다 마련해 놓으리다」 하므로, 金公[김공]이 그 말대로 실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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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그 부인이 다시 시아버니께 청하여 가로되, 「제가 농사를 지어볼까 하오니, 울 밖의 五日耕[오일경] 밭을 저를 주시겠읍니까?」 시아버지가 허락하니, 이에 밭을 갈고 온통 박(뒤웅박)을 심어서, 익은 뒤에는 쪼개서 바가지를 만들어 검게 옻칠을 하여, 해마다 이렇게 하여 五間庫[오간고]를 꽉 채우고, 또 대장장이를 시켜서 무쇠로 바가지를 만들어 庫中[고중]에 한데 두거늘, 사람들이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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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年[임진년] 난리가 나매, 부인이 金公[김공]에게 일러 가로되 「제가 평일에 당신을 권하여 窮友貧族[궁우빈족]을 널리 구조하고, 천하의 영웅 豪傑之士[호걸지사]를 사귀어 두라 하기는 이러한 때에 힘을 얻으려 하던 것이니, 당신은 그네들로 더불어 세상 일을 하시오. 부모님의 피난하실 곳은 내가 이미 유념하여 茂朱地[무주지]에 집도 장만했고 곡식도 넉넉하니 서방님의 後顧之憂[후고지우]는 없을 만하오리다. 나는 여기 있어서 군량을 辦備(판비)해 내서 이쪽 걱정은 없으시게 하겠읍니다」 金公[김공]이 欣然[흔연]히 그 말을 좇아서 드디어 일꾼을 뽑으니, 원근에 있는 평일 신세진 이들이 모여들어서, 旬日[순일] 동안에 정병 四[사], 五[오]천을 얻고, 제각기 옻칠한 바가지를 차고 싸우다가, 回陣[회진]할 때에는 무쇠 뒤웅박을 中路[중로]에 다가 내어버리고 가니, 적군이 크게 놀라 가로되, 「이 군중의 사람 사람이 다 이런 바가지를 차고 나는 듯하게 뛰어 다니니, 그 용기와 膂力(여력)을 알 것이로다.」 하고, 서로서로 경계 신칙하여 구태여 그 앞에 나서려 하지 아니하고, 이 때문에 金公[김공]의 군사가 향하는 곳에 거치는 것이 없었다. 金公[김공]이 기이한 공을 많이 세우기는 대개 그 부인의 찬조한 힘에 말미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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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이야기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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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로보트처럼 그 부인에게 눌려 지낸 것 같아서, 金千鎰[김천일]을 위해서는 좀 안된 이야기입니다마는, 대개 閨中[규중]에서 바사기 대접받던 아내도 시세를 미리 알고 公私[공사] 양방으로 周密[주밀]한 준비를 하였었는데, 조정에서와 수염 있는 남자들은 어떠했느냐고 함을 풍자한 이야기로 보면 辛辣[신랄]하기가 뼈를 찌르는 느낌이 있읍니다.
【원문】여자(女子)의 이인(異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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