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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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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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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釣味)의 경(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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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古來)로 낚시질을 가리켜 고상한 취미라고 일컬어 오지만 따집어 말하면 낚시질이란 잔인하기 짝이 없는 취미다. 미물이라고는 하나 살겠다고 구풀거리는 지렁이를 사정없이 동강을 쳐서 낚싯바늘로 훌뚜기를 꿴다든가 팔딱거리는 새우를 거두 절미하여 미끼로 삼는다든가하는 그 살생부터가 잔인한 행동이거니와, 이러한 살생으로서 또 다른 하나의 좀더 대규모인 살생을 도모하므로 만족을 얻자는 것이 결국은 낚시질의 본의(本意)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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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있는 동물이 생을 영위한다는 그 자체가 살생에 있다는 원칙을 생각한다면 그까짓 미미한 생명쯤 죽인다는 게 그게 무어 잔인한 행동까지 될 것이랴만, 새우의 목을 자르려고 한 손으로 대가리를 붙잡고 다른 한 손에 힘을 줄 때 아픔을 참지 못하여 전신을 파드르르 떠는 그 몸부림이 손끝에 감각될 때, 그리고 대가리도 꼬리도 다 잘린 몸둥이가 그래도 신경은 살아서 바늘 끝에 꿰어서도 파들파들 떠는 근육을 눈으로 똑바로 내려다볼 때, 거의 반생 동안이나 낚시질에 바쳐 온 무자비한 신경이건만 그래도 그 순간마다 머리끝이 산듯거림을 아니 느끼게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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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멱 따는 것은 차치하고 남이 주사침 맞는 것도 정면으로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얼굴을 찡그려야 되는 내가 이 낚시질에서만은 이렇게도 잔인한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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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같은 커다란 붕어가 낚어지리란 것을 생각할 때, 그리하여 그놈이 물 밖을 나오지 않으려고 이리 달렸다 저리 달렸다 물살을 찢으며 요동치는 것을 바늘에 걸린 주둥이가 찢기지 않게 줄을 놓았다 주었다 하며 기진맥진하게 힘을 뽑아 끌어낼 그 묘미에 내 마음은 완전히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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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란 원래 무슨 맛에 있어서든지 상대방의 희생의 전제에서 생기는 것이지만, 알뜰히 살겠다고 죽을 힘을 다하여 요동을 치는 것을 굳이 물 밖으로 끌어내 놓는 맛이 그렇게도 신묘롭게 느껴짐은 이건 확실히 잔인한 재미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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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질은 무슨 위치가 좋아야 한다고 한 그루의 실버들이 수면 위에 실실이 가지를 늘이어 출렁거리는 물결에 굽실굽실 잠겼다 솟았다 하는 위치여야 하고 가까운 주위에서 맑은 물이 돌 사이를 찢으며 흘러 내리는 소리가 청아히 들려오는 시내를 끼고 앉아야 하고, 그리하여 이 자연의 경치 속에 청간 일지(淸竿一枝)를 더하여 몸도 자연이 되고자 그러므로 낚시 깃에 속세를 잊고 마음까지 자연이고자 하는 그 정취만의 욕심으로선 낚시질의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하기야 이런 아취의 주인공이 되면서도 제대로 고기를 낚을 수 있다면 그야 마달 사람이 뉘 있으랴만 낚시질이란 결국 고기를 낚는 재미에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낚시질의 취미는 경치가 승한 봄철보다는 낙엽이지는 가을철이 오히려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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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고기를 낚는 맛과 가을에 고기를 낚는 맛은 현저히 다르다. 고기는 같은 고기가 낚기되, 봄은 고기의 난산기(卵産期)이기 때문에 건강이 빠져서 요동을 치지 못하는 것이다. 여름을 지나고 가을철이 접어들어 벼 이삭에 황누름이 들고 수변에 창포가 여물어야 수족의 건강도 여물 대로 여물어 술쪽같이 적은 놈이 물린다 하더라도 물살을 막 찢으며 요동을 쳐서 낚싯대를 휘근거리게 만든다. 실로 낚싯대가 휘지 않는 낚시질처럼 무미한 낚시질이 없거니와 가을철은 또한 이 수족들이 건강을 자랑하는 여행기이어서 수중 주유가 빈번하기 때문에 고기의 물림도 여느 때의 곱절은 더하다. 참으로 이 가을철의 낚시질 맛이란 그 어느 다른 맛에 비할 그러한 맛이 아니다. 그 어느 해엔 얼음이 풀리자부터 시작한 낚시질을 갓얼음이 잡힐 때까지 봄내, 여름내, 가으내 어두워 나갔다가 어두워 돌아오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이 계속해 내고는 피로에 몸이 지쳐서 한 달 동안을 죽을 뻔하고 앓은 일도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낚시질의 유혹에만은 벗어나지 못하고 해빙만 되면 이 잔인한 취미의 충동에 늘 마음이 들먹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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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지〕《신경향(新京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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