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옛 말에 한 개의 작품(書畵)을 미루어서 그 사람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즉 그 사람의 성격이 곧 그 작품에 나타난다는 말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삽화자 청전(靑田)씨는 그 성격으로 보아 열악한 사람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왜 그러냐하면 씨의 수법이 삽화상으로 보아서는 너무나 졸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건대 필자는 씨를 그다지 졸렬한 성격자로 보고 싶지 않다. 어쨌든 전일 단곡(丹谷) 당시보다는 동아지 자체를 위하여 청전 씨를 위하여 예술해부학상 연구를 더하십사고……
5
별로 이에 대하여서는 말할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간단히 말하자면 이승만(李承萬)씨가 집필한 후 면목일신(面目一新)의 감이 없지 않다. 이씨의 역량을 믿는 만큼 그만한 양호한 성적을 얻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허나 씨의 수법에 있어서는 사계(斯界)에 경험이 적으니 만큼 설익은 듯한 일면이 안 보이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앞날에 대한 많은 기대를 가지고 싶다.
7
석영 씨는 삽화와 함께 만화계의 선구자이니만치 숙달한 점이 아니 보이는 것이 아니다. 혹 독단 일런지 모르나 4신문 중에 제1위를 점하리라고 나는 믿고 싶다. 그러나 씨는 때때로 자기의 수완을 과시하여 실수가 없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 보다도 더 말썽 되는 것은 조선과 조선인을 배경 내지 대상하면서도 양풍을 가미하는 상습인 것이다. 물론 소설 삽화라는 것은 소개(小個)의 독립한 미술품으로 간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함부로 「고마까시」적 수단을 써도 못쓴다. 될 수 있는 대로 그 소설의 내용과 함께 독자에게 실감을 주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9
노심산(盧心汕) 씨는 촬자 『연애경쟁』(만화)의 집필로 그의 독특한 호기를 발휘하여서 독자의 흥미를 끈 일이 있었다. 그러나 삽화에 들어서는 역시 동아지의 경역(境域)을 별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으니 첫째로 예술해부학상 관견(觀見)이 부족한 것, 둘째로 배열상 의도가 졸렬한 것, 셋째로 시대지의 고전미를 벗어나지 못한 것 등이다. 좀 더 시대의 요구에 적응할 만한 수법을 취하였으면 어떠할는지? 그리고 좀 더 대담하고도 솔직하게 선과 점을 인용조를 취하지 않고 현수법 그대로 나아간다 하면 미구(未久)에 몰락의 비애를 씨 자신은 안 느끼지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