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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야숭배(黑夜崇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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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8.4
김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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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야숭배(黑夜崇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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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밤이 와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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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밤을 기다린다. 서울의 밤, 나는 이것을 기다려마지 않는다. 폭양(暴陽)에 시달린 몸이 저녁이라고 먹고 나면 밤은 어데서인지 차차로 가까워온다. 붉은 꽃 푸른 잎이 통틀어 검어지고 친한 사람 미운사람 할 것 없이 분별하기 어렵게 되고 그리고 서울의 가지가지의 흑백이 보이지 않게 하는 황혼의 장막. 이 밤이야말로 내가 기다리는 것이다. ‘헤겔’ 과 같이 짙어가는 암야에 우모(牛毛)의 차별을 알아질 수 없을 것이다. 시비를 알면서도 정사(正邪)를 알면서도 조리(條理)를 밝혀보지 못하는 백주보다는 그렇다. 차라리 나는 밤을 좋아한다. 밤이 오면 종로 네거리로부터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전등 와사등 ‘네온사인’ 찬란한 불이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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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로부터 시를 읽고 시를 생각하던 수많은 인물이 머리 위에는 반짝이는 별이 있고 가슴 속에는 숭고한 도덕이 있다는 등 또는 별을 보고 연모하는 인간을 그리었으나 나는 생각한다. 잘하였든 못하였든 간에 어두운 밤 밝은 전등을 대할 적마다 인류의 문명 조상이 다시금 가슴의 공○(功○)을 친다. 하늘에 있는 별이 인류의 땀 조상의 피로서 생산된 이토록 밝고 이다지 고운 전등 ‘네온사인’ 와사등에 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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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등을 사랑한다. ‘네온사인’ 의 요염을 좋아하고, 더구나 비오는 밤 비와 등불 빛이 얼싸안고 ‘아스팔트’ 큰길 위로 흐르는 것을 볼 때에 나는 그저 가슴이 가득차질 뿐이다. 인간으로서의 희열과 조상이 위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행복과 그리고 신명을 극한(極限)한 우월감에 호흡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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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인류의 성장을 가장 잘 알려준다. 그래서 때로는 적막을 느끼고 때로는 회의를 갖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주고 긍지를 주고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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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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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은 모든 것을 회보라빛으로 칠하여 버리고 밤은 모든 것을 다시 더 깊고 윤(潤)나는 검은 장막으로 싸버리고 만다. 부정을 보여주고 배리(背理)를 알리어지는 낮보담 밤이 오면 흐리멍텅하고 아득하게 생각되고 기억 날 뿐이니 차라리 밤이 조금 괴로운 바 적다고 하는 것이다. 괴로워서 시달리거든 꿈으로 가고 꿈이 깨거든 머릿속에서 책 속으로 왕복이나 하여 보고 이 외에 아무 도리도 내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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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산으로 바다로 더위를 피하여 달아들 난다. 땀 한 방울 흘리기가 그토록 싫어서 피서를 간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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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꽃이 피고 겨울에는 눈이 오는 것은 인류가 자연을 이해하기 비롯할 때 수확한 첫 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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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는 것과 추호도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여름은 도처에 있고 여름이 있는 곳은 다같이 더울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여름을 피하러 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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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없는 곳이 과연 어디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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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가 더위에 휘말리어 있는데 대체 어디로 도망을 갈려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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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답답하기만 하구나. 어서 밤이나 왔으면-. 밤이 오면 꼭 막히었던 가슴이 겨우 열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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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불빛과 기리묵은 회포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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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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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불빛은 반짝거린다. 불의 발견은 인류문명의 위대한 바이니 이불이 천만년을 두고 비에 젖고 바람에 날리면서 그 씨를 전하고 모양을 바꾸고 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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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을 대하면 천년 전, 만년 전의 거룩한 조상을 대하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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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조상이 만들어 놓은 등불은 가슴을 헤치고 샅샅이 밝히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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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이 어서 와서 등불을 대하여 무한한 정을 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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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여, 어서 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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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35.8.4
【원문】흑야숭배(黑夜崇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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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복진(金復鎭)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35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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