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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작(廣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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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패낙송(東稗洛誦)》권 상(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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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작(廣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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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驪州)에 허(許) 성의 양반이 있었다. 그는 어질고 착하나 몹시 가난했다. 집에 세 아들을 두고 글 공부를 시키면서 사방 친지에게 두루 구걸하여 독서하는 아들이 입에 풀칠을 하는데, 그가 어질고 착한 덕분으로 모두 동정하여 구걸에 응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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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씨 양반 내외가 구몰하자 삼년상까지는 고을 사람들의 부조가 컸다. 십년상을 마친 다음 둘째아들ㄹ 공(珙)이 형과 아우에게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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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늘까지 굶어 죽지 않은 것은 오로지 부모가 인심을 얻으신 덕분 아니오? 이제 삼년상이 끝나 부모님의 여덕에 더 의지할 수도 없는 일이니, 이런 곤궁한 형세로서 다같이 몰사지경에 갈밖에 도리 없오. 우선 각기 살아갈 방도를 차리는 것이 옳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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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아우는 다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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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배운 글공부 내놓고는 다시 도리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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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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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자기 뜻을 따를지라. 굳이 다른 길을 권하지는 않겠으나, 삼형제가 모두 글공부만 일삼다가는 기한에 굶어죽기 알맞소. 내 아무렇거나 10년 기한하고 목숨을 걸고 치산을 하여 은집을 구하겠오. 결단코 오늘로 파산을 하여 형님과 아우는 절로 올라가서 중들에게 얻어먹으며 공부를 계속하고, 두 아주머니는 친정에 돌아가시지 않을 수 없어요. 부모의 세업(世業)이라고는 단지 저 보리밭 세 두락과 가대(家垈), 아이 계집종 하나뿐인데, 이는 의당 종물(宗物)이 되겠으나, 형님이 이제 파산하시니 우선 제가 빌림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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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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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형제 내외들이 서로 눈물을 뿌리며 분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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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즉시 아내의 몸에 딸린 물건을 팔아서 육칠 꿰미의 돈을 마련했다. 때마침 면화가 풍년이어서 미역을 사서 등에 지고 부모가 일찍이 내왕하던 집을 두루 찾아다니며 집집마다 미역을 내놓고 안면을 가리고 면화를 구걸하니, 모두 옛 정의를 생각하고 가난을 동정하여 넉넉히들 바꾸어주어서 걷어들인 면화가 호부를 물론하고 수백 근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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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江原道)의 귀리 100여 석을 사서 10년간 죽만 먹기로 굳게 약속을 정했다. 계집종은 한 사발을 주고 그들 부처는 반 사발을 들면서 계집종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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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림을 정 견디기 어려우면 네 마음대로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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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종은 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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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께서 죽음으로 맹세하고 치산을 하시는데, 쇤네가 어찌 주림을 두려워하여 버리고 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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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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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의관을 벗어던지고 적삼에 잠방이를 걸치고 주야로 길쌈을 조역하며, 혹 자리도 치고, 혹 도롱이도 엮으며 부지런히 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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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 찾아오는 친구가 있으면 울 밖에 앉혀두고 자기는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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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나를 사람의 예절로 꾸짖지 마오. 그냥 밖에서 돌아가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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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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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안에 길쌈으로 마련한 것이 수백 냥에 이르렀다. 문전에 마침 서울 사람의 논 10두락과 밭 하루갈이가 나서 공이 이것을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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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남의 손을 빌려 땅을 갈면 비용이 들 뿐 아니라 자기가 힘써 하느니만 같지 못하리라 싶어, 소에 쟁기를 붙여 논에 들어가서 노농(老農)을 낮아 잘 대접하여 두둑에 앉히고 쟁기질을 배운 것이다. 논이고 밭이고 갈기를 열 번이나 하여 깊숙이 흙을 일으키니 다른 농부에 비할 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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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는 담배모를 옮겨심기 위해서 거름을 두껍게 깔고서 이랑 위에 무수히 구멍을 뚫고 비오기를 기다렸다. 한편 가뭄이 들어 담배 모종이 시들까 염려하여 이른봄에 길게 가자를 매고 그 아래 담배씨를 파종하여 자주 물을 주었다. 그해 마침 크게 가물어 도처에 담배모종이 전부 말라죽었으나, 공의 담배 모판은 유독 무성했던 것이다. 비가 오자 즉시 옮겨심었더니, 오래지 않아 담배 잎사귀는 파초처럼 너푼너푼 땅을 덮었다. 담배가 약이 차기도 전에 강상(江上)의 연초 상인이 찾아와서 담배밭이 통째로 200꿰미에 흥정이 되었다. 담배장수는 잎사귀를 따서 모래사장에 말려가지고 가더니 후에 다시 100냥을 가지고 와서 그 순도 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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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두락 소출의 곡식도 역시 100석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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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재산이 매달 불어나고 매해 늘어가서 그 성장을 이루 척도할 수 없었다. 5,6년 미만에 노적이 충만하고 논밭이 연달아서 10리 안통의 농민들이 공의 집에 의지하지 않는 자 없이 된 것이다. 사방의 소작인들이 주찬과 어육으로 인정을 쓰니 밥상에 고기 반찬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여전히 귀리죽 반 사발은 더하고 덜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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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만에 그 형과 아우가 절에서 자기 집이 도주공(陶朱公)이 되었다는 소문을 날마다 듣고 궁금하여 내려왔다. 공의 내외는 흔연히 반기었다. 공의 아내가 이웃에서 가져온 주육으로 대접을 하고 저녁밥 때 세 그릇의 밥을 지어 내왔는데 그것은 8년만에 돌아온 두 시숙에게 차마 귀리죽을 드리기 어려웠던 때문이다. 공은 밥을 보더니 불끈 눈을 치며 꾸중하며 한 그릇 밥으로 두 그릇 죽을 만들어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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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형이 성내어 꾸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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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부가 몇 천 석인지 모르는 터에 8년 만에 재회한 동기지간(同氣之間)에 이미 해온 밥을 물리고 죽을 끓여오라 하니, 이게 사람의 도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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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정한 기한이 아직 덜 되었오. 형님이 비로 대노하시나 저는 추호도 동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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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형과 아우는 불평한 기색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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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형제가 나란히 소과(小科)에 급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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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창방(唱榜)의 비용을 준비해가지고 몸소 상경하여 함께 돌아와 집에 이르러 기념 잔치를 배설했다. 이튿날 광대들을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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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님과 동생이 집도 없이 절에서 걸식하고 있는 것을 너희도 혹시 들었는지 모르겠구나. 오늘 당장 다시 산에 올라가 공부를 하셔야 한다. 너희들이 머물러 있음이 무익하니라. 그만 파하고 돌아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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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각기 100냥을 주어 보내고, 형과 아우에게도 다시 절로 들어가 대과(大科) 준비를 하도록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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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0년이 되니 엄연히 만석군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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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에 친히 장터로 나가 쌀로 명주, 비단, 모시베, 삼베 등 좋은 옷감을 끊어다 동네의 가난한 부녀자에게 삯바느질을 주어서 남녀 의복을 부지기수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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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스무하룻날 절에 편지를 써서 형과 아우에게 기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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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10년 치산하기로 정한 기한이 이제 다 되었습니다. 일찍이 경영해온 것이 우리 삼형제가 일생 먹고 입고도 다 함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로 고생 그만하시고 일실에 단란히 모여 행복을 같이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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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준마에 화려한 안장을 갖춰 맞아왔다. 형수와 계수에게도 역시 편지를 내어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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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아우 및 형수 계수가 일시에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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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장막 둘을 치고 쇠를 채운 가족ㄱ 종 여성을 옮겨다 내외의 장막에 각각 세 농씩 놓았다. 형제 내외는 각기 새 화사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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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마부에게 명하여 안장한 말 세 필을 대령시키고 형과 아우에게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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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살만한 곳이 못됩니다. 달리 잡아둔 곳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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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말고삐를 나란히 하여 고개 하나를 넘었더니, 산중에 세 채의 굉장한 기와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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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긴 사랑이 가로 지르고, 사랑 앞으로 긴 행낭이 있어 마구에는 말이 가득했으며, 일촌 사람이 모두 길에 나와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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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형과 아우가 놀라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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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딘데 이렇게 굉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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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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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제가 살 곳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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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과 노비를 배치한 품이 이같이 굉장하고 구옥(舊屋)으로부터 오리 남짓의 거리임에도 그 형제도 이것을 몰랐으니, 대개 그가 일을 경영함에 면밀 주도하기 이와 같았음을 알겠다. 그날로 그들 형제의 부인들은 각각 한 채씩 나누어 들고 삼형제는 한 사랑에서 거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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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농 10개를 운반해오는데 이는 전답 문서다. 공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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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제는 분재를 더도 덜도 없이 의당 고르게 해야 할 일이나, 다만 제 처가 거의 죽을 고생을 하여 이 살림을 이루었으니, 그 고생에 대한 보상이 없을 수 없습니다. 따로 구분해 줌이 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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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열다섯 섬지기의 논을 떼어 아내 몫으로 정한 뒤, 나머지 일체는 균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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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형제가 같이 자는데, 공이 문득 밤중에 일어나서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그 형이 위로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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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누리는 바가 공후(公侯)와 다름이 없거늘, 무슨 부족이 있어 이렇게 슬퍼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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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당초 우리 형제의 과업(科業)에 기대를 두셨는데, 형님과 아우는 비록 소성(小成)이나마 족히 어버이의 끼치신 뜻을 이루었습니다만, 저는 상없이 오로지 생계에 골몰하여 글공부를 놓은지 이미 10여년이라 한 자도 기억에 없오. 어버이의 뜻을 저바렸으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다시 시작해보았자 전혀 가망이 없은니, 차라리 활을 잡아 성공하면 그 역 한 도리가 아니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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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공은 사장(射場)에 나아가 풍우를 가리지 않고 독실히 활쏘기를 연습하여 3년을 지나 무과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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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자신의 수단과 국량으로서 세상에 명무(名武)로 일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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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외임이 안악(安岳) 군수이었다. 곧 부임할 즈음에 아내가 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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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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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미 영감하(永感下)라 벼슬로 봉양함이 미치지 못하고, 다만 아내를 영광스럽게 할까 했더니, 아내도 이제 죽었거늘 내 어찌 쌀과 돈에 뜻을 두어 관의 급료를 좋아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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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부임하지 않고, 향리에서 여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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