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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지금으로부터 팔 년 전인 1928년 8월 26일의 일기의 한 구절이다. 그때만 해도 문학청년으로의 시적(詩的) 정서가 다소 남아 있었던 듯하여 이러한 구절이 남아 있다. 물론 지금은 이러한 정서는 그만두고 일기까지도 적지 않는 속한(俗漢)이 되어 버렸다. 일기라 하여도 그때는 문예적인 일기였다. 그러므로 날마다 한 것이 아니요, 흥이 나면 멋대로 적는 일기였다. 예컨대, 동년(同年) 8월 30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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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가을의 바다. 버러지 소리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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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이 건듯 불기로 교외로 산책을 하였다. 능허대(凌虛臺) 가는 길에 도공(陶工)의 제작을 구경하고 다시 모래밭 위에 추광을 마시니, 해향(海香)이 그윽히 가슴에 스며든다. 벙어리에게 길을 물어 가며 문학산(文鶴山) 고개를 넘으니, 원근이 눈앞에 전개되고, 추기(秋氣)가 만야에 넘쳤다. 산악의 초토에도 추광이 명랑하다. 미추홀(彌鄒忽)의 고도(古都)를 찾아 영천(靈泉)에 물마시고 대야(大野)를 거닐다가 선도(仙桃)로 여름을 작별하고 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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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이곳에 ‘능허대(凌虛臺)’라는 것은 인천서 해안선을 끼고 남편(南便)으로 한 십 리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모래섬이나, 배를 타지 않고 해안선으로만 걸어가게 된 풍치있는 곳이다. 이 조그마한 반도(半島) 같은 섬에는 풀도 나무도 바위도 멋있게 어우러져 있고, 허리춤에는 흰 모래가 규모는 작으나 깨끗하게 깔려 있다. 이곳에서 내다보이는 바다는 항구에서 보이는 바다와 달라서 막힘이 없다. 발밑에서 출렁대이는 물결은 신비와 숭엄과 침울을 가졌다. 편편이 쪼개지는 가을 햇볕은 나에게 항상 정신의 쇄락을 도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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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능허대로 이르기 전에 산기슭 바닷가에서 독 굽는 가마가 있었다. 물레〔녹로(轆櫨)〕를 발로 차고 진흙을 손으로 빚어 키만한 독을 만들어낸다. 엉성드뭇하게 얽어 맞춘 움 속에서 만들어지는 질그릇에도 가을의 비애가 성겨 있었다. 이곳에서 문학산(文鶴山)이란 고개를 넘기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으나, 가을 풀이 길어 길이 매우 소삽(蕭颯)하였던 모양이다. 이러한 곳에서 한참 헤매이다가 촌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기쁜 일이 또 어디 있으랴마는, 희망을 품고 물어본 그가 벙어리일 줄이야 누가 염두에나 기대하였으랴? 우연치 않은 곳에서 인생의 적막과 신비를 느꼈던 모양이다. 가을의 비극, 인생의 애곡(哀曲)은 도처에 기대치 않은 곳에 흩어져 있다. 인천을 옛적엔 ‘미추홀’이라 하였고 비류(沸流)가 도읍하였던 곳이라 하므로, 이곳에 ‘미추홀’의 고도(古都)를 찾는다 하였고, 영천(靈泉)에 물 마셨다는 것은 해안에 있는 약물터의 약물을 두고 이름이요, 선도(仙桃)로 여름을 작별하였다는 것은 그해 마지막의 수밀도(水蜜桃)나 사서 요기를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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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내가 지금 같은 속한(俗漢)이 되기 전에는 밤잠이 늦었다. 대개 오전 한 시 두 시까지는 쓰거나 읽거나 자지를 않고 있었다. 이러한 때 멀리서 들려오는 개구리, 맹꽁이, 두꺼비 소리가 항상 신량(新凉)의 맛을 먼저 가져오는 것 같다. 그 울음소리는 고요한 늦밤의 새파람을 곁 속에 슴게 한다. 이 바람이 스밀 때 정신은 점점 쇠락하여지나 가슴에는 비애의 싹이 돋기 시작하였다. 그때는 비애를 느끼고 적막을 느끼고 번민을 스스로 사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즐거움은 번민하는 곳에 있다.― 낙재고중(樂在苦中)이라는 철리(哲理)를 스스로 터득하고 기꺼워 하던 때도 이러한 밤중의 사막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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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논 속에서 개구리 소리를 타고, 밤이면 일어 든다. 검은 하늘의 맑은 별눈에서 반짝이는 대로 새어 나와 자리 밑으로 스며든다. 이러한 때 고요한 마음으로써 불 밑에 앉아 글을 읽어라. 쓰기는 여름에 하고, 읽기는 가을의 신량 때라. 비가 오는 밤이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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