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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초 귀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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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8월
방정환
《어린이》 1925년 8월; ≪별건곤≫ 1927년 2월호에 발표. 고지마 마사지로의 ‘らふそく魚’을 번안한 것임이 근래 밝혀졌다.
1
양초 귀신
 
 
2
대단히 더운 날이니 슬픈 이야기보다도 무서운 이야기보다도 우습고 우습고 허리가 아프게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 하지요.
 
3
옛적 아주 어수룩한 옛적에, 시골 양반 한 분이 서울 구경을 왔다가, 불만 켜대면 온 방안이 환하게 밝아지는 초(蠟燭)를 처음 보고 어찌 신기한지 많이 사 가지고 내려가서, 자기 동네의 집집마다 찾아가서 서울 구경 이야기를 자랑삼아 하고, 서울 갔던 표적으로 그 신기한 양초를 세 개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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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은 그 처음 보는 물건을 받기는 받았어도 무엇 하는 것이며 어떻게 쓰는 것인지 알지 못하여 퍽 갑갑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다 준 사람에게 새삼스럽게 물어 보기는 부끄러우니까, 물어 보지도 못하고 저희들끼리만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면서 서로 물어보았으나, 한 사람도 그 하얗고 가늘고 깰쭘한 것이 무엇 하는 것인지를 도무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5
그래, 하다하다 못하여 젊은 상투쟁이 다섯 사람이 그것을 손에 들고 동네에서 아는 것 많기로 유명한 글방(서당) 선생님께로 물으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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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번에 뒷마을 사는 송 서방이 서울서 이런 것을 사 가지고 와서 서울 갔던 표적이라고 집집에 세 개씩 주었는데, 선생님 댁에도 이런 것을 가져왔습더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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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가져오구 말구. 우리 집에는 아홉 개나 가져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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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선생님께는 특별히 많이 가져왔습니다그려....... 그런데 저희는 이것이 무엇인지, 무엇에 쓰는 것인지 알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무엇에 쓰는 것인지 여쭈어 보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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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짓 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죽게, 죽어 버리게. 죽는 게 옳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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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죽더라도 시원히 알기나 하고 죽겠으니, 제발 좀 가르쳐 줍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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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무식한 사람이기로 그것도 모른단 말인가. 그것이 국 끓여 먹는 것이라네. 서울 사람들은 그걸루 국을 끓여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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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이걸루 국을 끓여요? 맛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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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있구 말구....... 맛이 없으면 서울 사람들이 먹을 리가 있겠나....... 맛좋고 살찌고 아주 훌륭한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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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것이 무엇인데 그렇게 맛이 좋고 몸에 이롭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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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어(白魚)라고, 물속에 있는 생선을 잡아 말린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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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생선도 많습니다. 눈깔도 없고, 이 앞에 요 뾰족한 것(심지)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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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깔이 원래 없는 생선이야....... 그래서 더욱 귀하다는 것이라네. 그 뾰족한 것은 주둥이가 아니고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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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밑에 있는 이 구멍은 무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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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똥구멍이지 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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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예, 알겠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참말 생선 말린 것입니다그려....... 대체 서울 사람들은 별 생선을 다 잡아먹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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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서울이 좋다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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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것으로 국을 어떻게 끓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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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무식한 사람이라 갑갑도 하군....... 물을 끓이고 이것을 칼로 커다랗게 썰어 넣고 간을 쳐 먹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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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그렇게 맛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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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있고 말구....... 자아, 이왕이면 오늘 우리 집에서 끓여 먹어보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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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생 영감이 애초에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였으면 좋을 것을, 가장 아는 체 하고, 집안사람들을 불러서 물을 끓이게 하고 간장을 치고 파를 썰어 넣고, 그리고 초를 크게 썰어 넣어 펄펄 끓여서 대접에 여섯 그릇을 내어 왔습니다.
 
27
“자아, 먹어 보게. 맛만 보면 반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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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올시다. 이렇게 좋은 음식을 먹으면 속이 장하게 놀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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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말 말고 어서 먹어 보게. 나는 작년에 서울 갔을 때 먹어 보고 오늘 처음 먹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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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섯 상투쟁이가 그것을 먹으려고 보니까, 초를 끓인 까닭에 하얗고 번쩍번쩍하는 기름이 둥둥 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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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이것 이상스런 기름이 떠 있습니다그려.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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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그놈들, 시골 놈들이라 무식한 소리만 하는구나. 좋은 국일수록 기름이 많은 법이라네. 쇠고깃국도 잘 끓이면 기름이 많지 않은가....... 백어국도 기름이 많아서 먹으면 살찌는 것이라네. 내가 아까부터 살찌는 것이라고 안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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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무어라고 하면 시골 놈이라고 흉잡힐까 봐, 냄새가 나는 것도 억지로 참으면서 꿀꺽꿀꺽 먹었습니다. 먹고 보니 목구멍이 매캐하고 쓰라린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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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참다못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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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서울 음식은 모두 이렇게 목구멍이 아픕니까? 아파 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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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상놈의 목에 양반의 음식이 들어가니까 그렇지. 잠자코 먹게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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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은 그만 말도 못 하고 목이 아파서 입을 딱딱 벌리고 ‘씩씩’하고 앉았는데, 선생 영감은 남보다도 더 목구멍이 아파 죽을 지경이지만, 남이 부끄러워 입도 못 벌리고 쩔쩔매고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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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그때에 정말 서울 가서 양초를 사 온 송 서방이 이 집에 왔습니다. 여러 사람이 하도 반가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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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마침 잘 오십니다. 당신이 그 때 갖다 준 백어로 오늘 국을 끓여 먹었더니, 목이 이렇게 아파서 죽겠소이다. 그게 원래 아픈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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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서방이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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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먹닷께? 먹는 것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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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은 먹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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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그머니 큰일 났네. 못 먹는 것을 서울 음식이라는 바람에 먹었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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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야단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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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먹는 것이라고, 누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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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누구야. 저 선생님이 죽어라 살아라 하면서 그걸 국을 끓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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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만 선생의 얼굴이 홍당무같이 빨개져서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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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백어가 아니라 불을 켜는 것이라오. 자, 보시오. 불을 켤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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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성냥불을 그어 생선 주둥이라던 심지에 불을 켜니, 온 방 안이 환해지는지라, 그것을 보고 여러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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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머니 우리가 불을 먹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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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미친 사람같이 날뛰면서 우리 뱃속에도 저렇게 불이 켜질 터이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당장에 뱃속에 불이 일어나는 것처럼 펄펄 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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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그머니, 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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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그머니, 배가 타면 어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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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우는 듯싶은 소리로 야단야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새빨간 얼굴을 푹 수그리고 앉았는 선생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겁이 났습니다. 그래 생각하면 할수록 자기 뱃속에 불씨가 들어가 있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서 별안간 소리를 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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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에 불이 일어나기 전에 물속으로 뛰어 들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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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제일 앞장을 서서 뛰어나가 마을 뒤 냇가에 가서 모두들 옷을 훌떡훌떡 벗어 버리고 물속으로 풍덩풍덩 들어가서 모가지만 물 위에 내어놓고 불이 안 나도록 몸을 물속에 잠그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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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환하게 밝은 밤이었으나, 늦게 지나가는 나그네(旅客) 한 사람이 그러지 않아도 냇가를 혼자 지나가기가 겁이 나는데, 냇물 위에서 지껄지껄하는 소리가 나므로 깜짝 놀라 달빛에 자세히 보니까, 냇물에 사람의 대가리만 수박같이 둥둥 떠 있습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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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지, 저놈들이 도깨비로구나....... 도깨비는 담뱃불을 무서워한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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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부리나케 담배를 담아 물고 담뱃불을 붙이느라고 성냥을 드윽 그었습니다. 물속에 있던 선생과 상투쟁이들은 뱃속에 있는 양초에 불이 안 일어나도록 물속에 있는데, 나그네가 성냥불을 켜니까 겁이 나서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소리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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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저 놈이 성냥불을 그어 우리 뱃속에 있는 초에 불을 켜려고 하니, 모두 머리까지 물속에 담그게, 큰일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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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모두 머리와 얼굴까지 물속으로 잠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62
나그네는 그런 줄은 모르고 냇물 위에 수박 같은 도깨비 대가리만 없어진 것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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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도깨비란 놈들이 담뱃불을 제일 무서워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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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지나가 버리더랍니다.
【원문】양초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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