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 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서원. 경상 남도 유형 문화재 제91호이다.
1552년(명종 7)에 조선 시대의 학자
정여창(1450~1504)의 학문 과 덕행을 추모하여 그를 모시기 위하여 세운 서원이다.
소수 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서원으로, 1566년에 임금에게 '남계'라는 이름을 지어 받아 사액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불탔으나, 1603년에 나촌으로 옮겨 복원하였다가 1612년에 현재의 자리에 다시 고쳐 지었다.
남계 서원에 모셔진 정여창은 조선 전기 사림파의 대표적인 학자로서, 성리학의 대가였으며 경사(經史)에 통달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1498년(연산군 4)에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함경 북도 종성으로 귀양 가서 죽었다.
그가 죽은 뒤 1504년(연산군 10)에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부관 참시가 되었으나, 제11대 왕인 중종(재위 1506~1544) 때 면죄되고 우의정 의 품계를 받았다.
1610년에는 조광조· 이언적· 이황 등과 함께 5현의 한 사람으로 문묘에 배향되었다. 정여창을 배향하고 있던 남계 서원은 숙종(재위 1674~1720) 때 강익과 정온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별사(別祠)에는 유호인과 정홍서를 배향하였다.
그러나 1868년(고종 5)에 흥선 대원군 이 서원 철폐령을 내렸을 때 별사를 헐어 내어 걷어 버렸다. 남계 서원은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도 헐어 내지 않은 47개의 서원 가운데 하나로, 지방 교육 기관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내에는 사우·전사청·양정재·명성당·애련헌·보인재·풍영루·영매헌·묘정 비각·고직사 등의 건물이 있다. 그 가운데 사우에는 정여창을 중심으로 하여 왼쪽과 오른쪽에 정온과 강익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명성당은 강당으로, 중앙에 마루가 있고 양쪽에 곁방이 있는데, 왼쪽의 곁방은 거경재라 하고, 오른쪽에 있는 곁방은 집의재라고 하며, 유림의 모임 및 학문을 토론하는 장소 등으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