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지방에 있던 옛 지명. 최초의 대방은 대방현이다. 기원전 108~기원전 107년에 중국 한나라가 옛 고조선 땅에 세운
한사군의 하나인
진번군(眞番郡)의 한 군현이다. 그 위치는 황해도 사리원 및 봉산군 문정면 지방이었다.
낙랑군이 이 지역을 관할하면서 대방현은 기원전 82년 진번군의 7현과 함께 낙랑군의 속현이 되었다. 곧이어 기원전 75년경 7현이 모두 낙랑의 남부도위의 관할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뒤 이 지방은 요동 태수
공손 탁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204년 공손 탁을 이은
공손 경은 세력이 커진 한나라와 예나라를 견제하고저 대방현을 중심으로 낙랑 남부도위 관할의 7현을 대방군으로 개편하였다. 그 영역은 대체로 지금의 경기도 북부에서 황해도 황주 자비령 이남 지역 이다. 그 당시의 군은 지금의 도와 같은 규모이다.
대방군을 이루었던 7현은 대방·소명·열구·장잠·함자·해명·제혜이다.
대방군은 238년
위나라의 지배를 받았고, 그 뒤 위나라가
진나라에게 멸망한 뒤 대방군은 진나라에 인계되었다. 진나라 초기에는 적극적인 동방 정책이 이루어진 결과 대방군의 세력도 한때 강화된 듯했으나, 290년대에 들어와 국내의 혼란과
선비족 등 유목 민족의 압박을 받아 점차 세력이 약해졌다.
그러던 중
미천왕 때에
서안평을
고구려에게 빼앗기면서 중국 본국과 연결하는 육상 교통이 끊기자 자립 능력을 잃고 점차 세력이 약해졌다. 곧이어 고구려의 군사적 압력을 받게 되었다. 마침내 대방과 낙랑 양군 지역에서 버티고 있던 장통이 고구려의 압력에 견디지 못하여 한나라 사람들과 랴오둥으로 달아났다. 대방군은 마침내 낙랑군과 함께 고구려에 멸망하여 고구려의 영토가 되고 4세기여 만에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진서》에는 290년경의 대방군을 통현 7, 호 4,900으로 기록하고 있다.
유적으로는 황해도 사리원에 있는 속칭 '당토성'이 있다. 대방군 치소의 빈터로 추정한다. 이 토성을 중심으로 주변의 문정면 등에는 크고 작은 고분군이 있는데, 여기에는 작은 덧널무덤이 있는가 하면 크고 작은 돌방무덤 및 벽돌무덤이 있다.
1911년과 12년 두 차례의 조사로 문정면 구룡리의 한 전실분에서 '사군대방태수 장무이전'이라는 글이 있는 묘를 발견하여 당토성이 대방군 치소였음을 뒷받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