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4월 13일에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된 조국 광복을 위한 우리 나라의 임시 정부. 1919년에 설치되어 1945년까지 존속하였다.
조직
국내에서 1919년 3월 1일에
3·1 운동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민주 공화 정부를 세워야 세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리하여 민족의 지도자 수십 명이 국제 도시인 중국 상하이로 모여들어 임시 정부를 세우기로 약속하였다.
이에 지사들 중
이동녕,
이시영,
조소앙 등의 제의에 따라 프랑스 사람이 살고 있는 상하이 보창로에 임시 독립 사무소를 설치하고, 정부를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임시 의정원(臨時議政院)을 세우는 것이 순서였기 때문에 그대로 진행하였다.
각 도의 대의원 29명이 의정원에 모여 헌법격인
임시헌장 10개조를 초안한 뒤 심의하여 민주 공화 정부임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 이에 따라 헌장(헌법)과 나라의 국호, 연호가 선포되어 정식으로 임시 정부가 세워졌다.
처음에는 정부 체제를 내각 책임제로 하여
이승만이 국무 총리가 되었으며,
안창호가 내무 총장이 되는 등 오늘날의 장관과 같은 총장 제도가 시행되었다. 초대 임시 의정원 의장에는
이동녕이 뽑혀 임시 정부를 이끌어갔다.
원칙적으로 임시 정부는 행정, 입법, 사법의 3권 분립 형태의 민주 공화 정부임을 분명히 밝히고, 1945년까지 27년 동안 유지되었다.
정치 체제
상하이에 임시 정부가 세워지고 있을 즈음 나라 안팎에는 모두 6개의 임시 정부가 세워졌거나 세워질 참이었다. 그러나 한 나라에 여러 개의 임시 정부가 있을 수 없다 하여 하나로 통합하였다. 그 때가 곧 6개월 뒤인 1919년 9월 초로 러시아 와 국내에 있던 두 곳의 임시 정부가 상하이에 있는 임시 정부로 통합되면서 첫번째로 헌법을 고쳐 대통령 중심제를 선포하였다. 이후 네 번에 걸쳐 헌법을 고치면서 임시 정부를 이끌어갔는데, 두 번째는 국무령(총리), 세 번째는 국무 위원(장관), 네 번째는 주석, 다섯 번째는 주석과 부주석 지도제였다.
업적
임시 정부는 27년 동안 내정, 교통, 외교, 군사, 교육, 문화, 재정, 사법 등 10여 개 부문에 걸친 조국 광복 운동을 펴 나갔다.
① 안창호 등에 의하여 임시 정부와 국내 각지를 비밀히 연결하는 교통국(交通局)과 연통제(聯通制)라는 제도가 실시되었다. 이것은 1919년부터 1922년까지 3년 정도 시행되었다. 이 연락망을 통하여 독립 운동에 필요한 자금과 독립 지사들의 비밀 업무 및 그 밖의 여러 가지 소식 등이 빠르고 정확하게 임시 정부와 왕래되어 활기를 띠었다.
② 독립 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모아 오기 위하여 국내와 해외 여러 곳에 사람을 보내어 자금을 마련하거나 독립 공채(獨立公債)라는 채권을 정부가 개인에게 팔기도 하였다. 미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이 보내는 돈이 독립 운동에 요긴하게 쓰였다.
③ 역사 편찬부를 두었다. 일본 의 한국 침략 사실을 낱낱이 기록하여 세계 자유 국민 앞에 보여줌으로써 일본이 우리 나라를 불법으로 지배하고 있음을 호소하였다. 외국에 보내는 임시 정부의 청년에게도 우리 나라가 완전히 독립해야 되는 이유를 명확하게 쓴 책이나 문서를 들려 보내어 자유를 사랑하는 나라의 힘있는 정치가, 지식인들에게 전달하였다.
④ 독립 신문이나 잡지를 펴내면서 국내외에 있는 우리 동포에게 독립 운동 상황을 알려주고 용기를 불어넣었다.
군사와 외교 활동
임시 정부는 1940년 9월에 광복군을 만들어 젊은이들에게 빼앗긴 우리 나라를 우리 손으로 되찾자고 외쳤다. 그리고 눈부신 외교 활동으로 파리 강화 회의에 임시 정부 대표 를 보낸 것을 비롯하여, 스위스에서 열린 만국 사회당 대회에도 조소앙을 보내어 임시 정부를 승인해 줄 것을 호소했다. 미국에서 열린 태평양 회의에도 이승만 등을 보내어 정부 의 승인과 독립 보장을 주장하였다.
의의
임시 정부는 이봉창· 윤봉길 의사가 일제 침략자를 쓰러뜨린 의거를 계기로 중국으로부터 지원과 승인을 받게 되었고, 1945년까지 독립 운동을 계속하였다.
임시 정부는 충칭[重慶]까지 여덟 번이나 옮겨다니면서도 나라의 정통성을 이어 1948년의 대한 민국으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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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上海) 시기 (1919 ~ 1932)
• 이동 시기 (1932 ~ 1940)
- 항저우(杭州) (1932 ~ )
- 난징(南京) (전장鎮江)) (1935 ~ )
- 창사(長沙) (1937 ~ )
- 광저우(廣州) (1938 ~ )
- 류저우(柳州) (1938 ~ )
- 치장(綦江) (193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