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4 ~ 1599] 조선 중기의 학자. 호는 귀봉(龜峰)·현승(玄繩)이고,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고양의 귀봉산 기슭에서 후진 양성에 힘써 문하에서
김장생·
김집·
정엽 등 많은 학자가 나왔는데, 그 중
김장생은
예학의 대가가 되었다.
저서로는 《귀봉집》이 있다.
• 1586년(선조 19)에는 동인들의 충동으로 안씨 집안에서 송사를 일으켜
안처겸의 역모가 조작임이 밝혀지면서 송익필의 형제들을 포함한 감정(甘丁 : 안돈후의 서출)의 후손들이 안씨 집의 노비로 환속되자 성명을 갈고 도피생활에 들어갔다. 그러나 1589년 기축옥사로 정여립(鄭汝立)·이발(李潑) 등 동인들이 제거되자 신분이 회복되었다. 뒤에 또 조헌(趙憲)의 과격한 상소에 관련된 혐의로 이산해(李山海)의 미움을 받아 동생과 함께 희천으로 유배되었다. 1593년에 사면을 받아 풀려났으나, 일정한 거처 없이 친구·문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불우하게 살다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