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 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에 있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돌로 만들어진 산성. 현재 사적 제146호로 지정되어 있다. 북문지·서문지 및 사고지가 남아 있을 뿐이고, 성벽은 무너져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불과 9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사각 등의 수리를 위하여 고종이 수리비를 지급하였다는 기록 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은 이것들 외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성의 둘레 길이 는 5,584m이고, 면적은 70만 2,867㎡이다.
적상산은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신라와 백제가 전쟁을 벌여 서로 이기기 위한 요지로서, 고려 시대 거란족이 침입했을 때 인근 수십 군현의 백성들 무참히 죽었는데도, 이 곳 사람들은 안전하였으므로 고려 말기에 최영이 산성 쌓기를 건의한 일이 있었다.
조선 시대의 《동국여지승람》 《고적조》에는 고성의 "석축 둘레는 1만 6,920자, 높이가 7자였는데,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내에는 토양이 비옥한 넓은 분지가 있었고 연못이 4개 소, 우물이 23개 소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세종 때는 체찰사였던 최윤덕이 이 곳을 답사하고, 반드시 산성을 쌓고 보존해야 할 곳이라고 건의한 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성터는 세종 때나 그 후에 축조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광해군 4년인 1612년 이 곳에 실록전이 세워졌고, 1614년에는 사각이 세워짐으로써 5대 사고의 하나가 되었다. 또 인조 19년인 1641년에는 선원각·군기고·대장관이 건립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