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 ~ 1994] 정치가· 군인. 함경 북도 경원에서 태어났다. 1940년 일본에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8·15 광복 후 국군이 창설될 때 참여하였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30대 초반의 나이로 3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1954년 참모 총장이 되었다. 그 뒤 연합 참모 총장 등 군의 중요한 직책을 두루 거쳐 1957년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예편과 동시에 터키 대사로 임명되어 이 때부터 외교관 생활을 시작하였다. 1959년에 프랑스 대사가 되었고, 1960년에는 미국 대사, 1961~1962년에는 유엔 총회의 한국 대표가 되었다.
박정희 정권 아래서 1963년 외무부 장관, 1964~1970년 국무 총리를 지냈으며, 이 때부터 정치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0년 민주 공화당의 상임 고문을 맡았고, 1971년 제8대 민주 공화당 전국구 의원이 되었고, 1972년 민주 공화당 의장 서리를 지냈다. 같은 해 유신 헌법이 반포되었고, 이에 따라 제9대 국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는데, 이 선거에서 민주 공화당의 공천을 받아 속초·인제·고성·양양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제9대 국회 의원으로 있으면서 1973~1978년 국회 의장을 지냈다. 1973년에 국제 의원 연맹, 아시아 의원 연맹 한국 지부 회장에 임명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다시 선출되었으며, 1980년 5·17 비상 계엄 조치 이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국정 자문 위원 등을 지냈다.
1989~1991년 한국 자유 총연맹 총재로 활동하였다. 금성 및 은성 태극 무공 훈장, 일등 수교 훈장 등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러시아 제국 육군에서 중위로 전역한 정기영 선생이고, 이처럼 그는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니콜리스크로 이주한 대한제국 함경북도 경원군 출신의 이주민의 자녀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함경북도 경원을 거쳐 함북 청진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6세 때 함북 경원으로 다시 되돌아와 1924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소학교를 다녔으나 불우한 유년기라는 소학교 시절을 보냈고, 1930년 만주 영신중학교에 입학했다가 통합되어 광명중학교로써 졸업하였다. 광명중학교 재학 당시 성적이 우수, 학교 선배이자 영어 교사인 장내원의 권유와 교련 교관의 추천을 받아
봉천군관학교로 진학한다. 결국 그는 1937년 9월에 봉천군관학교 제5기로 졸업하고, 성적우수자라는 명목으로써,
일본육군사관학교 유학생으로 편입학했으며, 1940년 일본육군사관학교 55기를 졸업하고 만주군 장교로 임관하였다.
태평양 전쟁 후반 일본군에 복무했다. 사학자 류연산에 의하면 '그는 간도헌병대 대대장으로 일본군 중령이었고, 해방 전 만주국 군대에서 계급이 제일 높은 조선인이었다. 그는 일제로부터 훈장을 여러번 수여받는 '영광'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