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7 ~ 178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이며, 목사 상기(尙紀)의 아들이다.
1763년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이 되었다. 증광 문과는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때 과거 시험을 보이는 증광시의 문과이다. 그 뒤 부제학 · 대사성을 지냈으며, 1777년에는 공조 참판이 되었다. 이어 실록청 당상관과 대사헌을 거쳐 함경도 관찰사가 되었다. 함경도 관찰사로서 그는 민폐를 없애고 군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 백성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그 이름을 널리 떨쳤다. 그 뒤 돈령부지사를 거쳐 형조 판서에 올랐으며, 경연지사· 홍문관 제학· 도총관 등을 겸하였다.
1786년에는 우의정 이 되었으며, 동지경연사를 겸임하였다. 당시 그는 역모 사건에 관련되어 강화부에 귀양가 있던 은언군 인의 처벌을 주장하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렸다. 그러나 그의 상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이 일로 한때 파직되었다. 그 뒤 그는 다시 중추부판사로 임명되었으며, 《
문헌비고》를 펴내는 데 관계하여 《학교고》 8편을 저술하였다.
그는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여 고향에 정문이 세워졌으며, 그의 문집으로는 《하서집》이 전하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