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5 ~ 1554]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 호는 신재(愼齋), 남고(南皐), 무릉도인(武陵道人)이며, 시호는 문민(文敏)이다.
1522년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부수찬 등을 지냈다.
1541년 풍기군수(豊基郡守)로 나가 이듬해 백운동(白雲洞:順興)에 안향(安珦)의 사당 회헌사(晦軒祠)를 세우고, 1543년 주자(朱子)의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를 본받아 사림자제들의 교육기관으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紹修書院)을 세워 서원의 시초를 이루었다.
그리고 서원을 통하여 사림을 교육하고 또한 사림의 중심기구로 삼아 향촌의 풍속을 교화하려는 목적으로, 재정을 확보하고 서원에서 유생들과 강론(講論)하는 등 열성을 보였다. 처음에는 사림의 호응을 받지 못하다가
이황의 건의로 소수서원의 사액을 받고 공인된 교육기관이 된 뒤 풍기사림의 중심기구로 자리잡았다. 그 후 이를 모방한 서원들이 각지에 건립되었다.
그 뒤 도승지, 대사성 등의 벼슬을 지냈고, 황해도 관찰사가 되어 해주에
수양 서원을 세우고
최충의 제사를 모셨다.
<도동곡(道東曲)> <육현가(六賢歌)> <엄연곡(儼然曲)> <태평곡(太平曲)> 등 장가(長歌)와 <군자가(君子歌)> 등 단가 8수가 전한다. 청백리에 녹선되고,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칠원의 덕연서원(德淵書院)에 배향되고, 백운동 서원에도 배향되었다.
저서에 《무릉잡고(武陵雜稿)》, 편서로는 《죽계지(竹溪誌)》 《동국명신언행록(東國名臣言行錄)》 《심도이훈(心圖彛訓)》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