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 고유의 의복.
그 기본형은 상체의 옷으로 저고리, 하체의 옷으로 바지 또는 치마가 있고, 여기에다 머리에는 관모(冠帽)를 쓰며, 허리에는 띠를 매고, 발에는 버선에 신목이 있는 화(靴) 또는 이(履)를 신으며, 그 위에 두루마기를 더함으로써 북방 한대성(寒帶性) 의복 을 나타내고 있다.
변천
이러한 우리 한복은 이웃한 중국의 의복 제도의 영향을 받아 다음과 같이 변천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① 옛날 저고리는 소매통이 좁고, 깃을 왼쪽으로 여미고 띠를 매었으며, 깃, 도련, 소매 끝에는 장식연, 곧 선을 둘렀다. 그것이 차차 소매가 넓어지고 깃을 오른쪽으로 여미게 되었으며, 고려 때 몽고풍(蒙古風)이 들어오면서부터는 다시 소매통이 좁아지고, 길이도 아주 짧아져 띠 대신 옷고름으로 여미게 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여자의 경우 젖가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까지 저고리 길이가 짧아졌다. 그리고 선은 회장(回裝)으로 남게 되었다.
② 옛날 바지에는 가랑이가 좁은 것과 넓은 것의 2가지가 있었고, 대님으로 아랫도리를 매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남녀가 다같이 입었다. 그러다가 여자는 치마를 겉옷으로, 바지는 속옷으로만 입게 되고, 남자는 내내 겉옷으로 입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밖에 가랑이가 짧은 잠방이도 오래 전부터 있었다.
③ 치마는 원래 더운 지방의 것으로 어느 때부터인가 여자들이 입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다분히 의례적(儀禮的)인 것이어서 보통 때는 바지만 입고, 예의를 갖추어야 할 때 바지 위에 입었던 것 같다. 그 모습은 허리에서부터 치마 끝단에 이르기까지 잔주름이 있고, 밑단에는 선이 둘려져 있었다.
④ 옛날 두루마기는 저고리에서와 같이 소매통이 좁고, 깃을 왼쪽으로 여며 띠를 매고, 깃, 도련, 소매 끝에는 선이 있었는데, 이것도 소매통이 넓어지고 깃을 오른쪽으로 여미게 되었다. 그리고 고려의 백저포 (白紵袍)에 이르러서는 선이 없어지고, 조선 시대에 와서는 소매가 넓은 직령(直領), 도포(道袍), 창의 등이 새로 생겨나고, 말엽에는 주의(周衣), 곧 오늘날의 두루마기가 등장하여 모두가 입게 되었다.
발달
한복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발달하게 된 것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는 동안 민족 의식이 드높아지면서부터였다.
남자의
도포,
창의,
주의 등은 우리의 것이며, 여자의 예복(禮服) 중에
원삼,
활옷,
당의가 중국에서 온 것이라지만 우리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겉옷이 단조로운 데서 생겨난 여러 가지 속옷류는 한복만이 가지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