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원에서 이민족의 왕조인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한(漢) 민족 왕조인
명나라를 세우는 계기를 만든 종교적 농민 반란. 그 중심 세력은 백련 및 미륵 교도로서 붉은 천을 머리에 둘러 동지의 표지로 삼았기 때문에 홍건적이라 하였다.
허베이성에서 미륵불을 자처하며 포교 활동을 하여 널리 신도를 가지고 있던 한산동은,
1351년에 황허강이 범람하자 그 수리를 위해 수많은 농민과 노동자를 징발되고 이로 말미암아 민심이 동요되는 틈을 타 반란을 일으켰다. 그가 죽자 그 아들 한임아는 스스로 황제가 되어 나라 이름을 송이라 하고, 중국 동북 지방으로 들어가 랴오양을 점령했다.
이들 중 일부가 원나라 군사에게 쫓기자 고려에 들어와
1359년(공민왕 8년)에는 서경까지 점령하였다가
이방실 등의 추격으로 물러가고, 다시
1361년에는 10만 여의 무리로 개경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공민왕은 남부 지방으로 피신하고,
정세운 등이 이들을 물리쳐 개경을 되찾았으나, 그 피해가 너무나 커서 고려 멸망의 한 원인이 되었다.
홍건적 가운데
주원장(명나라 태조)만이 착실하게 기반을 닦아서 천하를 평정하는데 성공하여
명나라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