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2 ∼1554]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풍후(風后), 호는 이소재(履素齋). 효령대군(孝寧大君)이보(李補)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정의대부
이정(李精)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유우(柳藕)의 문인이다.
천거로 여러 차례 교직(敎職)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으며, 만년에는 6품직에 제수되었다. 그는 평소에 과거공부를 폐하고 도학에 전력하여 구용(九容)·구사(九思) 및 경(敬)·의(義)로써 몸과 마음가짐의 규칙을 삼았다.
제자들에게 『소학』·『근사록』 등을 우선적으로 가르쳤고,
서경덕(徐敬德)과 예설을 강론하여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문장에도 뛰어나,
김안국(金安國)으로부터 귀신이 아니면 이러한 문장을 지을 수 없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심성도설(心性圖說)」·『심성정도(心性情圖)』·『성리명감(性理明鑑)』·『자경시문(自警詩文)』 20여권과 『이소재집』 등을 남겼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