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 ~ 1983] 해방 이후 판소리 「
춘향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본명은 분칠(粉七), 호는 향곡(香谷). 충청북도 옥천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성내(城內)에서 살다가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으로 이사했으며, 그뒤 다시 서울 인의동과 봉천동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양금과 가야금 등의 악기와 판소리 및 시조를 배웠는데,
김봉이(金鳳伊)에게서 「심청가」를 배웠고,
정정렬(丁貞烈)에게서 오랫동안 「심청가」 · 「적벽가」 · 「춘향가」를 배웠다.
민족항일기에 레코드판에 판소리를 취입한 적이 있고,
조선성악연구회와 창극단에서 활동하였다. 민족항일기 말기에는 향곡(鄕谷)에 은거해 있다가 광복 뒤 다시 창극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60년대초 판소리계에 나와 본격적인 활동을 하였다.
1964년 12월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춘향가」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정정렬의 「춘향가」를 가장 순수하고 완벽하게 전창(全唱)하는 명창으로 평가받았으며,
박초선(朴初宣) ·
최승희(崔承希) ·
최영기(崔英基) ·
정금내(鄭今乃)를 후계자로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