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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한국사 I 173 베델의 죽음과 대한매일신보의 종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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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Mar 27
베델은 6월 20일 인천항에서 출발, 상해에 있는 영국인 감옥에 투옥됐다. 재판 결과가 알려지자 재판정 밖의 많은 한국인들은 실망하고 격분했다. 주일 영국대사 맥도날드는 습격당할지 모르니 영사관 주위에 예방조치를 취해달라고 일본대사관에 요청했을 정도였다. 베델의 투옥 중에도 대한매일신보는 항일 논조를 유지했다. 그러자 일본은 치안 방해라는 이유로 발매 금지처분을 내렸다. 양기탁에게는 국채보상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씌워 구속했다. 두 달 후 무죄로 석방됐지만 이 사건은 국채보상운동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상해에서 돌아온 베델은 서른일곱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전국각지에서 만사가 들어왔다. 당시 베델이 한국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도산 안창호가 추도사를 한 추모 모임에는 국적, 직업,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일제와 싸운 한국의 벗, 베델을 추모하는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대한매일신보는 베델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만인 1910년 8월 28일 종간호를 냈다. 장지연은 그를 위해 비문을 썼지만, 일제는 베델 묘의 비문마저 지워버렸다. #베델 #상해 #감옥 #투옥과 #석방후사망#도산 #안창호 #추도사#대한매일신보 #종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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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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