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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가인 전목단(佳人剪牧丹)
가인 전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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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 전목단 (佳人剪牧丹)
조선 시대 말기에 향악으로 만들어져대궐 안의 잔치 때 하던 춤으로, 우리 나라 궁중 무용.
▣ 지식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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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 전목단 (佳人剪牧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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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춤 (5) 백과 대풍류 (4) 백과 천년만세 (4) 푸른잉어 (4) 시조 (3) 무고 (2) 봉산 탈춤 (2) 백과 살풀이춤 (2) 백과 아쟁 산조 (2) 백과 헌선도 (2)
▣ 백과사전
조선 시대 말기에 향악으로 만들어져 대궐 안의 잔치 때 하던 춤으로, 우리 나라 궁중 무용. 이 궁중 무용은 중국 송나라 때 한림 학사 도곡이라는 사람이 황제의 명을 받들어 만든 중국의 춤을 조선 순조 때 효명 세자가 본떠 우리의 춤으로 만든 것이다. 1829년 효명 세자는 아버지 순조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이 춤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뒤 이 춤은 각종 궁중 연회 때 흥을 돋우기 위해 추어졌으며, 궁중 무용으로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춤의 이름인 ' 가인 전목단'이란 아름다운 여인이 모란꽃을 꺾는다는 뜻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무대 한가운데에 활짝 핀 모란꽃을 꽂은 꽃병을 여덟 모가 난 소반 위에 받쳐 놓고 그 둘레에서 8명의 무원(舞員)이 한편을 이루어 춤을 춘다. 궁중에서 춤을 추던 사람들인 이들 무원 가운데 4명은 춤을 추면서 꽃병에 꽂혀 있는 모란꽃을 꺾어 들고, 나머지 4명은 이들과 어울려 그냥 춤만 춘다. 마치 모란꽃의 아름다움을 희롱하듯 꾸며지는 화려한 춤이다. 지금은 이렇게 8명의 무용수들이 이 춤을 추고 있는데, 《진작의궤》 《진찬의궤》 등을 살펴보면, 순조 당시에는 4명이 추거나 18명이 추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보면, 그 때에는 궁중의 예식을 위해 몇 명이 추도록 엄격하게 정해지지는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출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춤은 시작되기 전에 《풍경지곡》이라는 부드럽고 조용한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한다. 그러면 춤을 출 사람들 모두가 앞으로 나와 발로는 연주되는 음악에 맞추어서 가볍게 춤을 추면서 마치 인사라도 하듯 두 손을 마주 잡고 공손한 태도로 나란히 선다. 이어 반주 음악은 잦아드는 듯이 그치고 이와 때를 맞추어 무대 뒤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악사들이 한시 (漢詩)로 이루어진 창사(唱詞)를 부른다. 대궐 안의 잔치 때 부르는 노래인 창사에 맞추어 그 때까지 모란꽃보다 더 고운 자태로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던 무원들의 아름답고 화사한 춤 동작은 시작된다. 이렇게 시작되는 이 춤은 교선무·원화무·향화무·배화무·상대무·상배무·농화무·집화무·회선무 등을 차례로 추어 나가며 그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음악도 처음의 《풍경지곡》으로 시작하여 《함녕지곡》 《타령》 등으로 바뀌어 가며 연주되면서 춤의 재미를 한껏 돋우었다. 이 춤을 추는 무원들의 옷차림은 마치 모란꽃과 그 아름다움을 다투기라도 하듯 화사하고도 조화로웠다. 왕의 즐거움을 위한 이 춤을 출 때 무원들 모두는 머리 에 금봉관이라는 고운 화관을 썼다. 그리고 속에는 남색, 겉에는 붉은색 치마를 입고, 초록색과 노란색 웃옷에는 붉은색 비단에 금빛 실로 수를 놓아 눈부신 허리띠를 맸으며, 초록빛의 날아오를 것 같은 고운 신을 신었다. 이 춤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는 책으로는 《진작의궤》 《진찬의궤》 《궁중정재무도홀기》 등이 있어 이 춤이 만들어진 내력과 상연되던 모습, 그리고 그 구성을 자세하게 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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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