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8 ~ 1534] 조선 초기의 문신, 서예가. 호는 자암(自庵)·삼일재이고
김굉필에게서 배웠다.
1507년(중종 2) 생원·진사에 모두 장원하여 시관을 놀라게 했다.
기묘사화로 조광조 · 김정 등과 함께 투옥되었다. 개령에 유배되었다. 수개월 뒤 죄목이 추가되어 13년 간 남해 절도에 안치되었다. 이후 임피로 옮겨 1533년에 풀려났다.
안평대군·
양사언·
한호와 더불어 조선 전기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이다. 서체가 매우 독특하고 그가 살았던 서울의 인수방(仁壽坊)의 이름을 따 ‘
인수체’라고 했다.
저서에 《자암집》이 있고, 작품으로 《자암필첩》 등이 전한다.
예산의
덕잠서원, 군산의
봉암서원 등에 배향되었으며, 유품으로 「이겸묘지」,「자암필첩」,「우주영허첩」 등이 있다.
• 15년간의 긴 유배생활을 마치고 고향 예산으로 돌아와 보니 부모는 이미 세상에 없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해 아침저녁으로 산소에 가 통곡하다, 그 해 병을 얻어 젊은 나이로 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