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2 ~ 1519] 조선
중종 때의 문신, 학자. 호는 정암(靜庵)이고,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김굉필에게서 글을 배운 뒤 성리학 연구에 힘써
사림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1515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전적과 감찰 등에 올랐으며, 왕의 신임을 받았다. 그 뒤 예조 정랑과 부제학 등을 지냈으며, ‘여씨향약’을 실시하게 하고, 미신 타파에 힘썼다.
1519년에 대사헌이 되어 현량과라는 과거를 실시하여 30대의 젊은 학자들을 중요한 자리에 앉히는 한편, 훈구파를 정계에서 몰아 냈다.
그러자
훈구파에서는 그가 왕이 되려고 한다는 모함을 하여, 마침내 왕의 노여움을 사서 귀양가 사약을 받고 일생을 마쳤다.
죽은 뒤 선조 때 죄가 풀려 영의정 벼슬을 내렸다.
저서에 《
정암집》이 있다. 시조 2수가 전한다.
시조
저 건너 일편석(一片石)이 엄자릉(嚴子陵)의 조대(釣臺)로다
창태(蒼苔) 비낀 가에 흰 두 점이 무슨 것고
지금에 선생유적(先生遺跡)이 백구(白鷗) 한 쌍 떴더라
꿈에 증자(曾子)께 뵈와 사친도(事親道)를 묻자온데
증자왈(曾子曰) 오호(嗚呼)라 소자(小子)야 드러스라
사친(事親)이 기유타재(豈有他哉)리오 경지이이(敬之而已)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