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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다방(茶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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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 (茶房)
실내에 앉을 자리를 갖추어 놓고 여러 가지 차· 음료수· 케이크· 과일·아이스크림, 아침 식사 또는 샌드위치 같은 가벼운 음식을 파는 곳. 커피숍· 커피 하우스· 커피 살롱·티살롱·티룸·다실이라고도 한다.
▣ 지식지도
◈ 지식지도
다방 (茶房) 1551년 학림사건 독수리다방 학림다방
▣ 원문/전문 (인기순, 1~10 위)
◈ 참조 원문/전문
다방찬 茶房讚 근/현대 수필 채만식 (41) 낙랑다방기 樂浪茶房記 근/현대 수필 이효석 (11) 차와 나 근/현대 수필 이병각 (7) 차방 茶房 근/현대 시 고석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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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3) 백과
▣ 백과사전
실내에 앉을 자리를 갖추어 놓고 여러 가지 차· 음료수· 케이크· 과일·아이스크림, 아침 식사 또는 샌드위치 같은 가벼운 음식을 파는 곳. 커피숍· 커피 하우스· 커피 살롱·티살롱·티룸·다실이라고도 한다.
 
1551년 오스만 제국의 이스탄불에서 카페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연 것이 그 시초이다. 1652년 영국 런던, 1654년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도 문을 열었고, 미국에서는 1668년 유럽에서 커피를 수입하면서 그 다음 해 뉴욕에서 런던 커피 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영국의 커피 하우스는 정보 문화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으며, 정치·사회· 문화와 깊은 관련을 맺었다. 그 후 유럽에서는 점차 카바레 성격을 띠면서 주로 예술가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미국에서는 드러그스토어에 딸려 주로 케이크류를 취급하는 가게가 많았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담배 가게를 겸하여 사탕 과자나 그림 엽서를 팔기도 하고 아침 일찍 일하는 사람이나 노동자 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가게도 있다. 일조 시간이 짧은 북유럽에서는 길가에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하여 일광욕 을 겸한 가게도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영업 행위를 위한 본격적인 다방이 처음 등장한 것은 일제 강점기 때였으나, 8·15 광복 이후 6·25 전쟁 등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다방 의 기능과 양상도 변화되어 왔다. 다방을 등장시킨 근본 요소는 8, 9세기에 본격적으로 성립된 동양 3국의 다도 문화인데, 우리 나라는 원래 중국·일본 등 다른 동양 문화권에 비하여 다도 문화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아 서민 차원에서의 다방은 없었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다도에 대한 제도적 배려가 있었다.
 
8세기경 통일 신라 선덕왕 때 처음으로 중국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나무 씨앗을 심게 하였는데, 차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제사에 올리는 제물의 하나로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문헌에 의하면 이미 통일 신라 시대에 다연원(茶淵院)이라 하여 전문적으로 차를 마시는 장소가 있었다.
 
고려 시대에는 차가 불교 의식에 필수적인 것이어서 다방이라는 관청을 두어 차·술· 과일 등에 대한 일을 맡아 보게 하였다. 사원에서는 다촌(茶忖)을 두고 차나무 를 재배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차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이조(吏曹)에 속하는 관사에서 다례라는 명목으로 외국 사신들의 접대를 맡았으나, 손님 접대용으로 차보다 술을 많이 이용하였기 때문에 다방 대신 술집이 발달하였다. 결국 이 때까지 다방이나 다도 문화는 일부 계층이 누리거나 지방적·종교적 특성에 관련된 것으로, 일반 민중의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든 것은 아니었다. 조선 시대 말기에 개화의 물결을 타고 커피· 홍차 등이 보급되면서 우리의 다도 문화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서양 외교 사절의 손을 통해 유행된 커피 마시는 풍속은 고종을 비롯하여 상류층 개화파 인사들에게 널리 퍼져 나갔다.
 
근대적인 기능과 형태를 갖춘 다방이 등장한 것은 3·1 운동 직후부터지만, 개항된 후 바로 외국인에 의하여 인천에 세워진 대불 호텔과 슈트워드 호텔의 부속 다방이 우리 나라 다방의 선구가 되었다. 1902년 독일계 러시아인 손탁이 정동에 지은 손탁 호텔에는 서울에서 최초로 호텔식 다방을 두었다. 그 뒤 일본인이 경영하던 청목당이라는 2층의 살롱이 서울에 생겼고, 1914년에는 조선 호텔이 생겼다. 1923년을 전후하여 근대적 의미의 다방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는데, 명동의 후다미와 충무로의 금강산이라는 일본인 소유의 다방이 그 최초라 하겠다. 1927년 이경손이 관훈동 입구에 카카듀라는 다방을 열었고, 1929년 종로 2가에 멕시코 다방이 생겼는데, 이 곳은 문화인들의 모임 장소 같은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이후 차츰 영업적인 면에도 신경을 쓰는 본격적인 다방의 모습을 갖춘 상업 다방들이 등장하였는데, 6·25 전쟁 직후에는 다방이 차를 마시고 쉬는 장소에서 더 나아가 종합 예술의 장소 구실을 하였다.
 
1950년대의 다방은 당시의 사회 문제였던 고등 실업자(룸펜)의 온상 구실을 하여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1960년대 이후 다방은 장삿속이 밝은 여주인이 경영하는 체제로 바뀌고 대형화되었다. 1970년대 이후에는 화려한 실내 장식을 갖추었으며, 손님도 분위기나 차맛보다는 상거래를 비롯하여 교제의 편리함 때문에 자주 다방을 찾게 되었다. 1980년대에 차값의 자율화와 함께 다양한 차종에 비싼 차값을 받으며, 분위기 있는 실내 장식 을 갖춘 다방이 많이 등장하였다. 1990년대 들어 다방의 수는 서울시만도 8,000여 업소가 있고 전국적으로는 2만 여 업소가 있다.
 
최근에는 다방의 수가 줄어들고 레스토랑 · 카페 등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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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에서 필요한 차·술·소채· 과일·약등에 대한 일을 주관하던 고려 및 조선 시대의 관사(官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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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