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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2
이병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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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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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붕어의 日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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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는 물만 마시고 사는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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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먹는 친구들은 나를 맛날 때마다 금붕어 종족이라고 빈정대인다. 나 자신도 거기 대하여 아무런 이의가 없이 그냥 받어치운다. 그러나 술 먹는 친구들의 빈정댐이 이 이상 나아가서 차 마시는 근본을 부정하고 멸시하려고 할 때는 용서하지 않고 이유를 캐기로 되여 있다. 술 먹는 사람으로 볼 때는 술만이 먹을 만한 근거도 있고 멋도 있는 것 같지만 차 먹는 금붕어의 종족으로 볼 때는 이 또한 차만이 고상한 취미있는 듯싶다. 어떻게 하다가 차 중독이 되였나 하는 것은 금붕어 자신도 모른다. 대개는 차를 멸시하던 부류의 사람에게 금붕어의 종족이 많이 생겨난다는 것도 한 개의 이상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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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현상이라 하여 아무런 역사적 근거가 없나 하면 그렇지도 않다. 한 시절 구름 저편에 망원경의 핀트를 맞추우고 지구로 쿠취뽈을 받어보겠다고 날뛰던 사람들이 세월이 바뀌고 망원경은 부서져 버리고 행동의 자유가 최소한도로 축소되어 버리면 거기에 일정한 생활의 표식을 세워 가지고 굳세히 자기를 주장시킬 힘을 잃어 버리게 된다. 이리하야 생활과 신념과 실천이 모다 어그러진 삼가려처럼 갈라져서 통일된 길이 없을 때 소위 말하는 고민이 있고 여기에서 어쩔 수 없는 자기염오(自己厭惡)와 고독이 찾어 들어 되는 대로 되여라! 하고 성격을 파산시켜버리는 것이다. 내일 일을 오늘 모르는 생활! 여기에서 시진해지고 피곤을 느끼면 어디서라도 이것을 조용히 쉬여보겠다는 욕망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머리를 쉬이자! 고독에서 해방되자! 그러타하여 번화로운 거리에서 고독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요 머리가 쉬여지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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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으로서 바람을 물리치고 더운 것으로서 더운 것을 낫게 하듯이 고독은 고독으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십오전만 던져 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조용히 혼자 앉어서 생각에 잠길 수도 있는 것이 차방이다. 차방은 현대인의 생활에서 떠날 수 없다. 이리하야 금붕어는 차방으로 찾어간다. 차방에는 여러 종류의 차방이 있다. 차맛은 좋으나 분주하고 따분한 곳, 차맛은 좋지 못하나 조용한 곳 - 나는 하루에 한 잔씩이라도 꼭 마시여야 하는 차를 차맛 좋고 조용한 한 방에를 찾어가려고 한다. 예를 들면 「헐리우드」같은 차방은 마로가 너무 높아서 머리가 까라안지 않고 네온이 너무 짙어서 짜증이 나며 「백룡(白龍)」은 마로는 낮어서 좋으나 천정이 너무 높아서 목아지가 공연스리 아퍼진다. 그리고 차맛도 너무 헐해서 재미가 없다. 「에리사」같은 데는 너무 산난하고 「푸린스」는 장치는 좋은데 차맛이 시원치 않을 뿐더러 게다소리에 그만 짜증이 나서 못 간다. 이러고 나니 자연 「금붕어」는 차맛에 끌려서 「명치제과」나 「혼조야」로 향하게 되고 요사이 새로 난 「화신신관」지하실 식당 오전자리 차를 마신다. 그러나 차가 먹고 싶어서 입에 가풀이 끼일 때 외에는 대게 「푸라타누 -」에를 간다. 차맛도 좋거니와 장치도 좋다. 여기 있는 늙은 여주인이 어떻게 차에 대한 연구가 깊은지 일종의 동호자적 인상을 가지고 간다. 차를 너무 먹으면 잠이 안와서 걱정이란 말을 듣는데 대개 이렇게 알고 있는 차당은 일년생이다. 금붕어도 늙어지면 차를 먹지 않고는 잠을 자지 못한다. 차를 먹어야만 잠이 잘 오게 되니 이 차이가 얼마나 먼지 모른다. 차가 위생에 어떠한 해를 끼치는지 이로운지는 모르나 차를 끊어보려고 애써보기도 여러 번 하였건만 실패에 돌아가고 말었다. 경제적으로는 술먹기보담 십분의 일밖에 경비가 안든다. 하루에 두 잔 - 삼십 전어치만 먹으면 잠안올 지경은 면하며 그러타하야 한 닙도 없는데 무리를 해가면서까지는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야 일요일 같은 때는 종일 마음 놓고 금붕어끼리 모여서 먹으면 아침 열한 시부터 밤 열두 시까지에 열일곱 잔 열여덟 잔까지 갈 때도 있으나 아즉 기록으로는 열여덟 잔이 최고다. 차맛은 차종지가 입술에서 처음 대일 때 혀끝으로 날름날름 빨면 제일 좋고 설탕과 우유를 넣어서는 못쓴다. 설탕쯤은 여러 잔 먹을 때 혹 몇잔 넣어먹어도 좋으나 우유를 타서 먹는다는 것은 늙은 금붕어에게는 죽어도 싫은 노릇이다. 차는 제혼자 마시며 담배를 태워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제일 마음에 맞는 친구와 마주 앉어서 마시는 것이 조타. 찻집 급사가 게집아이일 때면 그만 차맛이 나지 않는다. 더욱 숙성한 아이가 입술에 새빨갛게 루주를 칠하고 아양을 떨 때는 돈 십오전이 아까워 못배기는 것이다. 찻집여자는 석고상처럼 창백하고 표정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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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책상 위 같은 곳에 금붕어 항아리를 놓은 집에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 금붕어가 「푸라타누 -」에 처음 갔을 때는 그곳에 금붕어 항아리가 있었는데 그냥 인연을 끊으려다가 차맛이 좋기에 「메누」에다 붉은 연필로 금붕어 항아리를 철회하라고 써두고 전화질을 해서 기여히 없애버리였다. 단골이 되면 특제차를 주는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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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찻집에 애인인양 싶은 여자를 데리고 오는 키 크고 멋부리는 얼치기를 제일 싫어한다. 그러한 부류의 속된 인간을 보면 성지를 더럽히는 원수와 같이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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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性[여성]》(1937. 2)
【원문】차(茶)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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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와 나 [제목]
 
  이병각(李秉珏) [저자]
 
  여성(女性) [출처]
 
  1937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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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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