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 ~ 1189] 고려 시대의 문신.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덕병(德炳),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병부 상서
공유(公裕)의 아들이다.
큰아버지
공인(公仁)의 주선으로 산정도감판관(刪定都監判官)이 된 뒤 의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좌정언(左正言)이 되었다. 이때 위복(威福)을 자행하던 환자(宦者) 백선연(白善淵)과 탐욕을 일삼던 술인(術人) 영의(榮儀) 등을 탄핵하다가 황주 판관으로 좌천되었으나 다시 전중 내급사(殿中內給事)로 승진하였다.
1170년(의종 24)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살해를 당할 뻔하였으나 좌정언 때 직언한 일로 화를 면하였고, 의종 또한 거제도로 추방될 때 그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1171년(명종 1)
이의방(李義方)의 추천으로 우승선(右承宣) 어사 중승(御使中丞)이 되어 많은 문신들의 화를 면하게 하였다. 무신들에 대해 고사(故事)의 자문에 응하였으며, 뒤이어 용호군 대장군(龍虎軍大將軍)을 겸하였고, 재상이 된 뒤에도 상장군을 겸하여 무신 정권기에 문신으로 문무를 겸하는 겸직의 시초가 되었다.
1180년 태자 소사(太子少師), 1185년 예부 판사가 되어 아상(亞相)이 되었으며, 이어 병부 판사 등을 거쳐, 1187년 권판상서이부사(權判尙書吏部事)가 되었다.
묘정(妙庭)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