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뭉친 애국 계몽 운동 단체.
1906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는데, 발기인으로는 평안도· 황해도 출신의 지식인인
박은식 ·
김병도 ·
신석하 ·
장응량 ·
김윤오 ·
김병일 ·
김달하 ·
김석환 ·
김명준 ·
곽윤기 ·
김기주 ·
김유탁 등 12명이 참가했으며, 이후
정운복 ·
유동작 ·
이유정 ·
최재학 ·
노백린 등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1,000명에 달하는 회원들은 대개 대한 자강회 회원, 국민 교육회 회원, 기독교 청년회 회원, 현직에 있거나 이미 제대한 무관, 언론인 출신들이었다.
서우 학회는 실질적으로는 교육과 계몽을 통해 국민들의 수준을 높임으로써 일제로부터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개개인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기 위한 단체였으나, 겉으로는 '학회'라는 이름을 내걸어 단지 학문 연구에만 치중하는 단체인 것처럼 행동했다. 이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실력을 키우고 서로 굳게 뭉쳐야 한다는 데 기초 를 두고 계몽 활동을 완벽하게 꾸려나가기 위해 조직을 정비해 서울에 중앙회를 두고 각 지역에는 지방 사무소와 지회를 두었다.
이들이 벌인 주요 사업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 국민 교육 활동으로서 지역 운동회를 개최해 계몽 운동으로 발전시켰으며, 한광호·한경렬을 중심으로 한 서북 학생 친목회를 통해 청년 학생들에게 민족 교육을 실시해 애국심을 키웠고, 서우 학교를 설립해 신학문을 가르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했다.
또한 기관지 《서우》를 매월 1호씩, 14호까지 펴냈다. 이러한 애국 계몽 운동은 큰 성과를 거두어 국민들로부터 대단한 호응을 받았으며, 특히 평안도 지역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다.
1908년 1월
한북흥학회와 합쳐
서북 학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