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2 ~ 1528] 중국 명나라 때의 유학자. 이름은 수인(守仁)이고, 양명은 호이다.
저장성에서 태어나 28세 때에는 진사에 급제하였다. 병부 주사의 벼슬에 있을 때 환관(내시)의 잘못을 지적하다가 미움을 사 귀주 산골로 쫓겨 갔다.
그 때부터 그는 학문을 연구하여 1511년에 ‘지행 합일론(知行合一論)’을 주장하였고, 1519년에는 ‘치량지설(致良知說)’을 주장하였다.
뒤에 그는 학교를 세워 교육에 힘썼으며, 각지의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오는 도중에 죽었다.
저서에 《
왕문성공전서(王文成公全書)》 《
전습록(傳習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