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2~1538 조선 초기의 문신. 호는 수천(守天)이고,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1492년(성종 23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에 등용되고, 부제학·이조 참의를 지냈다. 1504년(연산군 10년) 갑자사화가 일어났을 때 왕에게 극간하다가 아산에 유배되었다. 1506년 중종 반정으로 다시 부제학 에 복직하여 예조판서· 대사헌을 거쳐 1510년(중종 5년)에 우참찬으로 삼포왜란을 수습한 뒤 1519년 영의정에 올랐다. 이 해 기묘사화 때 조광조를 구하려다가 관직에서 쫓겨나고, 1527년에 다시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으나 세자를 저주한 사건이 일어나자 면직되었다. 저서에 《정문익공 유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