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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일본에 파견하던 사신을 일컫는 말. 왜란 후 조선은 일본과 관계를 끊었는데, 쓰시마 도주를 앞세운 막부의 요청으로 1607년(선조 40년)부터 순조 때까지 모두 12회에 걸쳐 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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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 역사 > 한국사 > 관직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일본에 파견하던 사신을 일컫는 말. 왜란 후 조선은 일본과 관계를 끊었는데, 쓰시마 도주를 앞세운 막부의 요청으로 1607년(선조 40년)부터 순조 때까지 모두 12회에 걸쳐 파견하였다.
당시 통신사는 외교 사절로서뿐만이 아니라 우리 문화를 일본에 전하는 데 큰 구실을 하였으므로, 막부의 장군은 일본 국내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이들을 맞이함으로써 권위를 세우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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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년(태종 4) 조선과 일본 사이에 교린관계가 성립되자, 조선국왕과 막부장군은 각기 양국의 최고 통치권자로서 외교적인 현안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절을 각각 파견하였다. 이때 조선국왕이 막부장군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통신사, 막부장군이 조선국왕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고 하였다.
통신은 두 나라가 서로 신의(信義)를 통하여 교류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조선에서 일본에 파견한 사절의 명칭은 보빙사(報聘使) ․회례사(回禮使) ․회례관(回禮官) ․통신관(通信官) ․경차관(敬差官) 등 다양하였다. 일본에 파견된 사절단에 통신사의 명칭이 처음 쓰인 것은 1413년(태종 13) 박분(朴賁)을 정사로 한 사절단이었지만, 중도에 정사가 병이 나서 중지되었다. 그뒤 통신사의 파견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1429년(세종 11) 교토[京都]에 파견된 정사 박서생(朴瑞生)의 사절단으로 최초의 통신사라고 할 수 있다. 파견목적은 임진왜란 전에는 주로 왜구 금지요청이 주가 되었으나, 그 후에는 강화와 포로들의 쇄환(刷還), 일본국정의 탐색이었고, 1636년(인조 14) 이후는 막부장군의 습직(襲職) 축하가 주임무였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의의는 조 ․일 양국간만이 아니라, 중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삼국의 평화공존을 위한 국제관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데 있다.
파견절차는 일본에서 새로운 막부장군의 승습이 결정되면, 대마도주는 막부의 명령을 받아 통신사청래차왜(通信使請來差倭)를 조선에 파견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 조정에서는 중앙관리 3인 이하로 정사 ․부사 ․서장관을 임명하고 300~500명으로 구성되는 사절단을 편성하였다. 여정은 한양을 출발하여 부산까지는 육로로 간 뒤, 부산에서부터는 대마도주의 안내를 받아 해로를 이용하여 대마도를 거쳐 시모노세키[下關]를 통과하여 일본 각번의 향응을 받으며 오사카[大阪]의 요도우라[淀浦]에 상륙하였다. 그뒤 육로로 교토로 갔다. 조선 전기에는 이곳에 장군이 있었기 때문에 교토가 종점이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장군이 도쿄[東京]에 있었기 때문에 목적지가 도쿄가 되었다. 일행이 통과하는 객사에서는 한시문과 학술의 필담창화라고 하는 문화상의 교류가 성대하였다. 특히 통신사에 대한 화려한 접대는 일본의 재정을 압박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으며, 그 때문에 1711년 아라리 하구세키는 통신사 접대에 관한 규정을 바꾸기도 하였으나 1719년에는 다시 환원되었다.
막부장군에게 조선국왕의 국서를 전달한 통신사는 대개 6개월~1년이 소요되었다. 그들은 방문하는 곳마다 서화 ․시문 등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것이 화려한 행렬도를 그린 병풍 ․회권 ․판화 등의 형태로 전해진다. 또 그들은 귀국 후 일본에서 겪은 일들을 여러 형태로 남겼는데, 이것이 《해행총재(海行總載)》라는 견문록으로 엮어져서 당시 두 나라 간의 외교적인 역할 및 문화교류의 실상을 보여준다
(자료 출처 : 동아대백과)
통신사 구성
통신사 일행은 우선 문관 당상관(堂上官) 가운데에서 선발하는 정사(正使)를 비롯하여 부사(副使), 종사관(從事官)으로 구성되는 삼사(三使)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으로 역관, 군관(軍官), 제술관(製述官), 양의(良醫), 사자관(寫字官), 의원(醫員), 화원(畵員), 서기(書記), 자제군관(子弟軍官), 별파진(別破陣), 마상재(馬上才), 전악(典樂), 이마(理馬), 소동(小童), 취수(吹手)와 각종 기수(旗手)를 비롯한 악대 및 의장대 등의 인원이 200명이고, 여기에 사공(沙工)과 격군(格軍)을 합하여 평균 470명에 달하는 대규모 사절단이 편성되었다
후기통신시 내역
1. 정미통신사 1607년(선조 40년) 정사 여우길, 부사 경섬, 종사관 정호관 외 467 명
- 국교 회복
2. 정사통신사 1617년(광해군 9년) 정사 오윤겸, 부사 박재, 종사관 이경직 외 428 명
- 오사카 전투 직후에 파견
3. 갑자통신사 1624년(인조 2년) 정사 정립, 부사 강홍중, 종사관 이계영 외 300 명
-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취임 축하
4. 병자통신사 1636년(인조 14년) 정사 임광, 부사 김세렴, 종사관 황호, 제술관 권칙 외 475 명
- 병자호란 중에 파견
5. 계미통신사 1643년(인조 21년) 정사 윤순지, 부사 조경, 종사관 신유, 제술관 박안기외 462 명
- 도쿠가와 이에쓰나의 탄생 축하
6. 을미통신사 1655년(효종 6년) 4월 20일 ~ 1656년 2월 20일 정사 조형, 부사 유창, 종사관 남용익, 제술관 이명빈 외 488명
- 도쿠가와 이에쓰나의 취임 축하
7. 임술통신사 1682년(숙종 8년) 5월 8일 ~ 11월 16일 정사 윤지완, 부사 이언강, 종사관 박경후, 제술관 성완 외 475명
-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취임 축하
8. 신묘통신사 1711년(숙종 37년) 5월 15일 ~ 1712년 3월 9일 정사 조태억, 부사 임수간, 종사관 이방언, 제술관 이현 외 500명
- 도쿠가와 이에노부의 취임 축하
9. 기해통신사 1719년(숙종 45년) 4월 11일 ~ 1720년 1월 24일 정사 홍치중, 부사 황선, 종사관 이명언, 제술관 신유한 외 479명
-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취임 축하
10. 무진통신사 (1748년(영조 24년) 2월 12일 ~ 7월 13일) 정사 홍계희, 부사 남태기, 종사관 조명채, 제술관 박경행 외 475명
- 도쿠가와 이에시게의 취임 축하
11. 계미통신사 (1763년(영조 39년) 8월 3일-1764년 7월 8일) 정사 조엄 부사 이인배, 종사관 김상익, 제술관 남옥 외 472명
- 도쿠가와 이에하루의 취임 축하
12. 신미통신사 1811년(순조 11년) 정사 김이교 부사 이면구, 제술관 이현상 외 336명
- 도쿠가와 이에나리의 취임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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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전문
(인기순, 1~10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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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원문/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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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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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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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조선통신사는 조선시대 일본의 실권자인 막부장군에게 파견한 양국 간 정상외교사절단으로, 무로마치시대 초기부터 에도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파견되었다. 사절단의 명칭은 ‘통신사’뿐 아니라 회례사, 회례관, 보빙사, 경차관, 통신관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즉 ‘통신사’ 란 명칭은 현재의 시점에서 역사적 용어를 사용한다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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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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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조선 영조 때의 문인 김인겸의 작품으로, 영조 39년 조엄이 통신사로 일본으로 갈 때, 수행원으로 따라갔던 작가가, 출발해서 돌아올 때까지의 여정과 일본의 문물 제도, 인물, 풍속 등의견문을 기록한 기행 가사이다. 영조 39년 8월 3일 한양을 출발하여 이듬해 7월 8일 경희궁에 들어가 복명(復命)할 때까지의 약 11개월에 걸친 긴여정을 빠짐없이 기록한 것으로, 총 4책 8,000여 구나 되는 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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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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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가유산청 국립해양유산연구소(소장 김성배)는 2018년 전통선박 재현연구 사업의 하나로 제작한 ‘조선통신사선’으로 260년 만에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 간의 약 1,000㎞에 이르는 뱃길을 재현하고자, 7월 30일 오후 7시 30분 부산 영가대에서 개최되는 해신제를 시작으로, 7월 31일 부산항에서 출항해 일본 쓰시마와 이키를 거쳐 시모노세키까지 30일간(7.31.~8.29./왕복)의 운항에 돌입한다.【국립해양유산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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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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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김성배)는 오는 5월 3일에서 5월 5일까지 부산에서 진행되는 한·일 시민문화교류 축제인 ‘2024 조선통신사축제’와 ‘발달장애인 조선통신사 특별체험행사’(5.6.)에서 조선통신사선 재현선을 활용한 승선체험과 선상박물관 관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뱃길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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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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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조선통신사는 조선시대 일본의 실권자인 막부장군에게 파견한 양국 간 정상외교사절단으로, 무로마치시대 초기부터 에도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파견되었다. 사절단의 명칭은 ‘통신사’뿐 아니라 회례사, 회례관, 보빙사, 경차관, 통신관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즉 ‘통신사’ 란 명칭은 현재의 시점에서 역사적 용어를 사용한다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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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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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가유산청 국립해양유산연구소(소장 김성배)는 2018년 전통선박 재현연구 사업의 하나로 제작한 ‘조선통신사선’으로 260년 만에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 간의 약 1,000㎞에 이르는 뱃길을 재현하고자, 7월 30일 오후 7시 30분 부산 영가대에서 개최되는 해신제를 시작으로, 7월 31일 부산항에서 출항해 일본 쓰시마와 이키를 거쳐 시모노세키까지 30일간(7.31.~8.29./왕복)의 운항에 돌입한다.【국립해양유산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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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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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김성배)는 오는 5월 3일에서 5월 5일까지 부산에서 진행되는 한·일 시민문화교류 축제인 ‘2024 조선통신사축제’와 ‘발달장애인 조선통신사 특별체험행사’(5.6.)에서 조선통신사선 재현선을 활용한 승선체험과 선상박물관 관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뱃길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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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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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조선 영조 때의 문인 김인겸의 작품으로, 영조 39년 조엄이 통신사로 일본으로 갈 때, 수행원으로 따라갔던 작가가, 출발해서 돌아올 때까지의 여정과 일본의 문물 제도, 인물, 풍속 등의견문을 기록한 기행 가사이다. 영조 39년 8월 3일 한양을 출발하여 이듬해 7월 8일 경희궁에 들어가 복명(復命)할 때까지의 약 11개월에 걸친 긴여정을 빠짐없이 기록한 것으로, 총 4책 8,000여 구나 되는 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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