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5 ~ 1418] 고려 시대 말기와 조선 시대 초기의 문신이자, 세종의 국구이다. 자는 중옥(仲玉), 시호는 안효(安孝)이고, 봉군호(封君號)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양녕대군을 대신해 충녕대군이 세자로 책봉되고, 이어 세종으로 즉위하자 국구(國舅)로서 영의정이 되어 정치의 실권을 가까이하기에 이르렀다. 1418년에는 사은사(謝恩使)로서 명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이 때에 동생
심정(沈泟)이 병조판서
박습(朴習)과 함께 상왕인 태종의 병권 장악을 비난한 것이 화근이 되어, 이듬해 귀국 도중에 의주에서 체포되어 수원으로 압송, 사사되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강상인의 옥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박은(朴訔)은 대질심문 없이 심온을 모반죄로 처벌하자고 주장했다. 박은의 발언과 결부되어, 『기재잡기(寄齋雜記)』 등 야사(野史)에는 심온이 세상을 떠나기 전 후손에게 박씨와 혼인하지 말도록[吾子孫 世世 勿與朴氏相婚也] 유언했다고 전하고 있다. 9세손 심단(沈檀, 1645∼1730)이 쓴 「안효공온신도비명(安孝公溫神道碑銘)」에 이러한 유언을 한 연유가 기록되어 있다. 후에 문종은 관직을 복위시키고, 안효(安孝)라는 시호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