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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장영실(蔣英實)
장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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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蔣英實)
[? ~ ?] 조선 시대 세종 때의 과학자.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타고난 재능과 기술로 조선 전기 과학 기술의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 올린 인물이다.
▣ 지식지도
◈ 지식지도
장영실 (蔣英實) 갑인자 앙부일귀 혼천의 간의 경자자 국보 물시계 아악 측우기 해시계 조선의 활자 1688년 1443년 1446년 1432년 1434년 1437년 1420년 조선 세종 이천 남구만 조선 문종 박연 성삼문 조선 세조 소헌 왕후 신숙주 조선 태종 황보인 정초 관습 도감 보루각 서운관 정음청 집현전 세종실록 훈민정음 간의대 자격루 경복궁 덕수궁 영녕릉 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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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8) 백과 혼천의 (8) 백과 자격루 (7) 백과 1432년 (4) 백과 1437년 (4) 백과 15세기 (4) 백과 갑인자 (4) 백과 1430년 (3) 백과 1430년대 (3) 백과 1431년 (3) 백과 1434년 (3) 백과 1435년 (3) 백과 1436년 (3) 백과 1439년 (3) 백과 간의 (3) 백과 물시계 (3) 백과 박연 (3) 백과 앙부일구 (3) 앙부일귀 (3) 백과 조선 세종 (3) 백과 해시계 (3) 백과 1433년 (2) 백과 1438년 (2) 백과 1443년 (2) 백과 1446년 (2) 백과 경자자 (2) 백과 관습 도감 (2) 백과 덕수궁 (2) 백과 서운관 (2) 백과 성삼문 (2) 백과 신숙주 (2) 백과 영녕릉 (2) 백과 옥루 (2) 정초 (2) 백과 조선 문종 (2) 백과 집현전 (2) 백과 측우기 (2) 백과 함길도 (2) 백과 훈민정음 (2) 백과 흠경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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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선 시대 세종 때의 과학자.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타고난 재능과 기술로 조선 전기 과학 기술의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 올린 인물이다. 어머니는 동래현(東萊縣)에 소속된 관기였으며, 장영실도 당시의 관습에 따라 10살 때부터 동래현의 관노로 있었다. 그는 손재주가 뛰어났으므로 관청에서 여러 가지 물건을 수리하는 일을 맡았다.
 
15살 때 경상도 땅에 심한 가뭄이 들어 논과 밭이 모두 말라 버렸다. 이 때 장영실은 통나무로 홈통을 파서 이것을 길게 이어 10리 밖에 있는 시내의 물을 말라 붙은 논밭에 끌어 들여 가뭄을 넘겼다. 이 일로 장영실의 이름은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당시의 공조 참판 이천의 추천으로, 과학 기술의 발전을 위해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구하던 세종 대왕의 부름을 받아, 노비의 신분을 벗고 상의원 별좌로 임명되었다. 상의원 별좌란 임금의 옷과 대궐에서 사용하는 일용품을 만드는 자리였다. 장영실은 궁중에 머물면서 남모르는 노력으로, 맡은 일을 해내는 데 필요한 글과 법칙을 배워 나갔다.
 
1424년에는 이천과 함께 중국의 체제를 참고하여 물시계를 만들어, 그 공으로 정5품 행사직이 되었다. 1432년에는 천문과 기상 관측을 위한 천문 관측대인 간의대를 만들었다. 이듬해에는 혼천의를 만들었는데, 이 혼천의는 하늘에 있는 달과 해, 별들의 위치와 움직임을 연구하는 기계이다.
 
오늘날의 시계 태엽에 해당하는 물레바퀴가 돌면서 혼천의와 시계 장치로 된 혼상, 이 두 기구를 움직이면 12개의 해·별·달 등의 모양에 의하여 시간을 알아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 공으로 장영실은 정4품 호군으로 승진하였다. 1434년 장영실은 다시 자격루라는 물시계를 만들었다. 자격루란 '스스로 종을 쳐서 시간을 알린다'는 뜻으로,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 주는 기계였다.
 
자격루는 12개의 막대가 돌아가면서 시간을 나타내는데, 낮에는 그 때마다 종이 저절로 울리고 밤에는 북이 울려 시간을 알리는 것이었다. 1434년 7월 1일부터 사용된 표준 시간은 이 자격루에 맞추어 운용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종래의 금속 활자의 결함을 보완한 갑인자(甲寅字)의 제작을 감독기도 하였다.
 
1437년에는 자격루의 일종인 옥루를 제작하였고, 경상도 채방 별감이 되어 구리와 철의 채광과 제련을 지휘 감독하였다.
 
그 후 다시 서울로 돌아와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를 발명하는 데 몰두하였다. 그가 발명한 측우기는 높이 41.2㎝, 지름 16.5㎝의 둥근 통으로 되어 있었다. 이 둥근 통에 빗물을 받아, 길이 20.6㎝의 자로 재어서 내린 비의 양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때가 1441년 세종 23년이다.
 
세종 대왕은 똑같은 측우기를 여러 개 만들어 전국 각지에 나누어 주었으며,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이 측우기에 고인 물을 날짜별로 적어 두었다가 그 이듬해 농사를 지을 때 참고하도록 하였다. 빗물의 양을 재는 데 사용한 자는 수표라고 하였는데, 이를 좀더 길고 튼튼하게 만들어 서울의 청계천과 한강에 세워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알 수있게 하였다.
 
이 때 발명한 측우기는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우량계와 비교하여 보아도 거의 오차가 없다고 하니 얼마나 과학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공로로 장영실은 정3품 벼슬인 상호군으로 임명되었다.
 
그가 만들어 낸 발명품은 지금까지 살펴본 것 이외에도 그림자를 이용한 해시계인 앙부일귀, 봄·여름·가을·겨울의 4 계절에 따라 시각에 차이가 나는 것을 재는 기구인 규표, 사람들이 품 속에 넣고 다니면서 시간을 잴 수 있게 만든 작은 해시계인 정남일구,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해와 달, 별의 움직임과 자리를 관측하는 기구인 일성정시의 등 20가지가 넘는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전해 내려오지 못하고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장영실은 1442년 그가 설계하고 감독하여 제작한 왕의 가마가 부서지는 바람에 투옥, 파면당하였다. 그 후 장영실이 어디서 어떻게 지내다가 언제 세상를 떠났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그가 이루어 놓은 수많은 발명은 이 땅에 영원히 남아 과학 역사를 빛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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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