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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년 고구려(高句麗) 랴오닝성([遼寧省]) 안시성(安市城) 양만춘(楊萬春) # 백암성 # 태자하
최근 3개월 조회수 : 0 (0 등급)
【역사】
(게재일: 2020.01.30. (최종: 2020.01.31. 10:03)) 
◈ 태자하(太子河)에 접한 난공불락의 백암성(白巖城)을 답사하다
[스카이데일리 연재] 천년에 가까운 역사 지닌 고구려의 멸망 이유…연개소문파서 시작
태자하(太子河)에 접한 난공불락의 백암성(白巖城)을 답사하다
천년에 가까운 역사 지닌 고구려의 멸망 이유…연개소문파서 시작
 
심양에서 아침 식사 후 백암성을 향해 출발한 버스는 비포장도로의 먼지를 날리면서 5시간이나 지난 후 백암성 아래 마을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것 외에는 줄곧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렸으니 지루한 여행이 됐다. 8월의 무더위로 인해 불쾌지수가 높아지기도 했다. 왼편으로 굴곡진 작은 하천을 따라 달리는 버스의 창에는 석성산을 둥글게 에워쌓은 성곽들과 정상의 망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백암성 아래 서편 시골 마을은 백암성을 뒤로 했고, 태자하가 동남향으로 흘러내리는 형국이었다. 백암성은 요령성 등탑현(燈塔縣) 서대요향(西大窯鄕) 관둔촌(官屯村)에서 2천년에 가까운 세월을 잃어버린 망국의 영토를 외롭게 지키고 있었다.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백암성의 무너진 성벽의 바위돌을 사용해 담을 둘렀다. 마을 동남쪽은 태자하의 절벽인 셈인데 시늘대가 자라고 있었다. 지금은 태자하에 보(洑)를 쌓아 관광지로 변해 유람선이 다니는 곳으로 변했다. 성 아래에는 식당과 보트장이 보였다
 
백암성은 김부식의 삼국사에는 양원왕 3년인 547년 가을 7월에 개축(改築)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자세한 축성기록은 없다. 실제 그 보다 훨씬 이전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백암성 북쪽에 개모성이, 20km 남쪽에 요양의 요동성이 위치한다. 요양은 장수왕이 천도한 고구려의 수도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남쪽에 세칭 안시성이라는 성곽이 위치하나 이 형국이 좁은 안시성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들이 많다. 안시성은 다른 지역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안시성 3개월 혈전의 주인공 성주 양만춘(楊萬春)의 화살에 맞은 당태종은 귀국 후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당시 당(唐)군은 장손무기, 이세적, 이도종, 부복애 등이 이끌었으며, 50만명을 동원해 안시성보다 높은 토성을 쌓기도 했다. 이 토성마저 고구려군에 빼앗기고 말았다. 당시 연개소문이 보낸 15만의 고구려군의 고연수ㆍ고헤진은 당태종의 유인작전에 참패한 후 살아남은 3만 여 고구려군을 이끌고 투항했으며, 안시성의 함락이 지연되자 남쪽의 오골성(봉황성)을 먼저 공략하자는 안을 당 태종에게 제의하기도 했다.
 
고연수·고혜진의 배신으로 위기도 맞았지만 안시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당시 고연수는 당의 사농경(司農卿), 고혜진은 홍려경(鴻臚卿)의 벼슬을 받았으며, 당군의 철수와 함께 장안으로 들어갔지만, 고연수는 화병으로 죽었다. 결국 당은 고구려군에 철저하게 패전하고 말았다. 패전의 장소인 안시성의 위치를 숨기는 이유는 고구려·당 혈전에서 그들의 패전이라는 부끄러운 역사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 안시성에 대해 몇 해 후 답사를 시도했지만 주민들의 거부로 볼 수가 없었다. 안시성의 위치에 대한 더 깊은 연구와 답사가 필요하다. 백암성은 고구려가 서편 중국(隋·唐) 세력에 대한 방어용으로 축성한 북의 부여성, 신성, 현토성, 개모성, 안시성, 건안성으로 이어지는 천리장성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천리장성은 7세기 경 당(唐)의 침입을 막기 위해 영류왕 14년인 631년 2월에 쌓았는데 16년 만에 완성했다는 삼국사의 기록과 신·구당서의 기록으로 볼 때 이 축성의 주역은 연개소문이라는 추론이다.
 
그러나 천리장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는 있다. 북의 부여성에서 영구 일대의 건안성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대련의 비사성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고구려 후기의 천리장성 축성 기록은 누대에 걸쳐 축성된 주요성을 개축·보완해 일련의 방어선으로 연결한 것으로 보인다. 백암성은 북의 사하(沙河)와 태자하 사이에 위치하지만 성의 동쪽은 태자하와 접하고 있다.
 
백암성의 5~6m의 북쪽 성벽과 남아 있는 5개의 치(雉)는 웅장했던 고구려성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남북·동서의 치(雉)의 길이가 6m이며 치(雉) 사이는 56m이다. 마을이 있는 서쪽 성과 남쪽은 허물어진 상태이다. 산성 정상에는 내성이 있고 그 안에 점장대가 있으며, 후대에는 봉화대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장대 지휘소 아래인 남쪽 성벽은 태자하가 흐르는 수십 미터의 가파른 절벽이다. 천혜의 자연 지형을 이용했던 고구려 산성인 오녀산성, 성자산성, 동모산성, 용담산성 등의 특징을 보여준다.
 
백암성은 석성산 정상에 쌓은 성으로 둘레가 2000m이고 문은 하나인 요동지역의 최대 산성이다. 산을 의지하고 태자하의 절벽에 쌓은 산성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산성이다. 10m가 넘는 치(雉)를 박치기 위해 2~3m의 9~10층으로 쌓은 타원형의 굽도리기단(퇴물림) 형식은 백암성의 특징이다. 산 정상에 쌓은 망대는 네모로 쌓았으며, 주위에 내성을 쌓았다. 점장대인 망대에선 보면, 동편의 태자하의 물줄기와 주변의 평야 및 마을 전경이 한 눈에 보이는 요충지인 곳이다.
 
645년 요동성을 함락시킨 당 태종은 이적을 앞세워 백암성을 공격하니 성주 손대음(孫代音)의 모반으로 함락됐다. 당시 이적은 성의 서문으로 공격했으며, 당 태종은 마을 북쪽 끝부분으로 침입했다. 당시 당(唐)군은 당거(撞車)를 가지고 공격했으며, 성주인 손대음은 요동성이 함락됐다는 소식에 겁을 집어먹고, 당 태종과 내통해 스스로 당나라의 깃발을 성루에 내걸고 항복했던 것이다. 당시 난공불락의 백암성 안에는 1만명의 백성과 2400여명의 군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성주의 배신으로 인해 성을 내어 주고 말았다.
 
백암성의 점장대에서 수천 년 동안 유유히 흐르고 있는 푸른 태자하를 바라보면서 새삼 치열했던 고(高)·당(唐) 전쟁을 회고해봤다. 거의 천년에 가까운 역사와 동북아의 패자였던 고구려가 건국한지 50년 밖에 안 된 당(唐)에 패망했다는 점이다.
 
또한 고(高)·당(唐) 전쟁에서 승리했던 고구려가 13년 만에 패망한 이유는 고구려 지도부의 분열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 원인의 뿌리는 대당정책의 온건파였던 영류왕파와 강경파인 동부대인 연개소문파의 알력에서 시작됐음이 분명하다. 국가 흥망의 원인은 내부에서 잉태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다시 되새겨본다.
 
당시의 조국을 배신했던 백암성 성주인 손대음(孫代音)과 북부욕살 고연수(高延壽), 남부욕살 고혜진(高惠眞)의 더러운 이름은 역사에 기록돼 태자하의 푸른 물처럼 도도하게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작성】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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