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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안중근(安重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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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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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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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 0
안중근(安重根)
최근 3개월 조회수 : 1 (5 등급)
(게재일: 2016.03.22. (최종: 2019.11.21. 19:07)) 
◈ 안중근 의사 2편 (하얼빈 의거~ 순국)
오는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106주기의 날을 맞이하여 안의사에 대하여 알아본다. 안중근 의사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신천군 청계동에서 성장하고 진남포에서 삼흥학교와 돈의 학교를 운영했으며 연해주에 망명 후 의병으로 국내 진입 작전 및 12인 단지 동맹 등의 내용을 1편에서 소개하였다. 오늘은 하얼빈 의거 계획에서 이토 히로부미 사살, 재판 과정, 옥중에서 저술한 자서전, 뤼순감옥의 순국까지 포스팅한다.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영웅이여 영원하소서!
오는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106주기의 날을 맞이하여 안의사에 대하여 알아본다. 안중근 의사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신천군 청계동에서 성장하고 진남포에서 삼흥학교와 돈의 학교를 운영했으며 연해주에 망명 후 의병으로 국내 진입 작전 및 12인 단지 동맹 등의 내용을 1편에서 소개하였다. 오늘은 하얼빈 의거 계획에서 이토 히로부미 사살, 재판 과정, 옥중에서 저술한 자서전, 뤼순감옥의 순국까지 포스팅한다.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영웅이여 영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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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왼 손가락을 잘라 맹세한 후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의 재무장관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오게 되었다는 소식을 대동공보사에서 전해 들은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려고 700km가 넘는 하얼빈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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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 9시 30분 중국 하얼빈 역의 이토 히로부미와 러시아 재무대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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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유동하, 우덕순, 조도선 4분이 재판에 당당하게 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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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사형, 우덕순 3년형, 유동하와 조도선은 각각 1년 6개월의 형이 확정되었다.
 
 
아 충격이다!
안의사의 동지였던 우덕순이 3년형을 마친후 만주에서 일제 밀정을 했다는 자료가 확인,공개되었다. 어찌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해 민족과 동지를 배반하여 수많은 애국지사를 죽음으로 만들었는지 지하에서 동지들은 통곡한다. -2019.8.13 K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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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응칠(安應七)은 안중근의 어릴 때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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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옮은 일로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은 불효가 아니며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효도다. -모친 조마리아(1862~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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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르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 최후의 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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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슬비가 내리는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안중근의 사형은 뤼순 감옥에서 행해졌다. 안의사는 전날 밤 고향에서 보내온 옷을 입고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간수 4명의 경호를 받으며 형장으로 불려 나와 교수대 옆에 있는 대기실로 갔다. 당일 입은 옷은 상하의 모두 한국에서 만든 명주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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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자신이 사형 당하면 하얼빈에 뼈를 묻었다가 조국에 운구하여 매장해줄 것을 최후로 당부했다. 그러나 사형당한 그의 시신은
뤼순 감옥의 죄수 묘역에 묻혔다. 그 뒤 일제는 안중근의 정확한 매장지를 알려 주지 않아 그의 매장지를 찾을 수 없었다. 이는 안중근 묘소가 성지가 될 것을 우려해서 일제가 감춘 것이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유해가 묻힌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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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일제의 교활함이 보이는 사진. 당당한 안의사를 초췌한 표정의 범죄자(단지 한 야쿠자)처럼 찍은 사진을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옮은 일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안의사를 욕보이고 2번 죽이는 일이므로 앞으로 이런 안의사 사진은 사용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na-;출처: 안중근의사 기념관, 네이버지식백과, 위키백과, 구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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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의거 (1909년 10월 26일)
• 안중근의사 순국 (1910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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