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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제주군(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이 마을은 조선 세종 5년(1423)부터 군현제가 폐지되는 1914년까지 약 500년 동안 정의현의 현청 소재지1)였으며, 해발 100m에서 300m 사이에 분포된 구릉 평야 지역에 자리한 중산간마을의 전형적인 특색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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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아직까지도 제주의 독특한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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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비교적 원형대로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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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옛민가, 향교, 옛관공서, 돌하루방, 연자방아, 성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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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 등의 유형 문화유산과 중산간 지대 특유의 민요, 민속놀이, 향토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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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공예, 제주방언 등의 무형 문화유산이 아직까지 전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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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제161호인 느티나무, 팽나무 등은 오백년 도읍지로서의 긍지를 엿볼 수 있다. 제주 초가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성읍민속마을은 실제로 제주 초가에 살고 있는 성읍리 주민들과 제주의 전통 [아래사진 / 화장실인 '통시'를] 만나볼 수도 있다. 특히 마을내 고목과 돌담 그리고 옛 성벽 등이 어우러진 고풍스런 모습은 오백년 도읍지의 역사를 그대로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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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리는 원래 제주도가 방위상 3현으로 나뉘어 통치되었을 때(1410-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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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현의 도읍지였던 마을로서 제주도 옛 민가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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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무형의 많은 문화 유산이 집단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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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마을 형태의 민속경관이 잘 유지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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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 모습을 계속 유지하고자 민속 마을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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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마을이 500년 가까이 정의현의 현청 소재지로 행정,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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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마을 곳곳에서 쉽게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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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읍성과 돌하르방, 일관헌, 정의향교 등이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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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마을을 둘러싼 정의읍성은 세종 5년(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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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부터 1월 13일에 축조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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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재는 성벽 일부와 남·서문만이 복원되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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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읍성을 쌓을 당시 성읍리는 진사리라고도 불렸으며, 정의읍성도 ’진사성’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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