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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이일걸의 지식창고 2020.12.21. 22:14 (2020.12.21. 22:14)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이태준 기념공원을 방문하다

 
[스카이데일리 연재] 몽골 의학계에 새 지평을 열었던 이태준, 몽골 국왕 훈장 수여
오늘은 몽골알타이 답사를 떠난 지 열흘째다. 카라코룸의 오레혼 강변의 아나르(Anar) 캠프장을 떠난 답사단 차량은 다시 비포장의 몽골사막과 초원을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열흘 전 지나친 곳도 있었지만 다른 적석총의 사슴돌 비석을 답사할 시간도 없이 서둘렀다. 울란바토르시까지 411km의 거리이다. 389m의 서울~부산 간의 거리보다 더 멀다.
 
한 시간 달린 후 고개를 넘어서니 오보가 보였다. 이곳 몽골지역은 평지에서 산등성이 고개를 넘으면 여러 색의 천으로 맨단 오보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런 곳에 기념비도 세워 놓았다. 몽골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구를락차’의 기념탑이었다. 소박한 형태로 ‘몽골인 우주비행 33주년 기념비’라 적었다. ‘구를락차’는 1947년 생으로 소련 공군 시주코프스키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그는 우주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몽골과 소련은 그에게 ‘영웅’ 칭호를 수여했다. 몽골에서도 국회의원, 국방부장관을 역임하였다.
 
세 시간이나 달린 후 겨우 사막 가운데 나무들이 몇 그루 자라는 곳의 그늘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대낮의 사막 기온은 30도에 가까웠다. 이번 답사기간에 여러 개의 오보를 보았다. 오보는 돌을 원추형으로 쌓아 원추 끝에 천 조각을 매단 나뭇가지를 꽂아 두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서낭당처럼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바라는 수호신으로 보였다.
 
이 오보에는 동전이나 천조각 이외에도 유리병, 유리조각, 철근, 말의 두개골 등이 보였다. 유리나 쇳조각은 몽골인들이 바치는 정성스런 선물이기도 하다. 북방 유목민족들은 황금에 대한 신앙이 있는데, 쇳소리가 나쁜 귀신을 쫓아준다는 믿음이 있다고 하였다. 철은 몽골인들에게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에 쇠를 오보에 바치는 이들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드디어 울란바토르 외곽 지역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넘었다. 부근 도로는 차량으로 가득 찼다. 울란바토르시도 출퇴근 시간은 교통지옥을 연상할 만큼 교통이 마비된다고 했다. 지하철도 없는 상황이고 다른 도로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겨우 답사단은 한 시간 후에야 한식당에 도착하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 후 답사단은 보야지(Voyage) 호텔에 도착하였다. 11일간 정들었던 ‘후률레’ 운전기사와 기념사진도 찍고 헤어지는 이별을 아쉬워하였다.
 
호텔에 도착하여 간단히 씻은 후 동행했던 친구 4명은 수흐바타르 광장의 남쪽의 새롭게 지은 고층 건물에 앉아 울란바토르 시내를 조망하였다. 광장 이름을 ‘수흐바타르’라고 한 것은 일본군과 전투에서 승리한 ‘수흐바타르’ 장군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 고층 건물도 한국인이 설계하고 한국기업이 건축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보니 울란바토르 시내의 아파트 건축 현장에 걸린 한국의 기업체명이 보였다. 그리고 맥주 한잔으로 그 간의 피로를 풀고, 호텔로 돌아와서 숙박하였다.
 
이튿날 답사단 일행은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향했다. 넓은 수흐바타르 광장의 북쪽 중앙에는 몽골정부 청사가 위치하고 있었으며, 동쪽에는 몽골국립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었다. 정부청사 중앙 정면에는 칭기즈칸 좌상이 위치하여 몽골제국을 건설한 그의 위업을 기리고 있었다. 그의 공적은 흩어졌던 몽골의 유목민 부족을 통합하여 대제국을 건설한 것이었다.
 
그 뒤를 이은 오고타이 2대 대칸은 통치체제를 확립하고, 수도 카라코룸을 건설하였다. 또한 남송, 중앙아시아 지역 등에 대한 정복사업으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그 후 5대 대칸인 쿠빌라이가 34년을 통치하면서 몽골제국은 안정적인 통치체제 시기에 접어들었다. 쿠빌라이 대칸은 수도를 카라코룸에서 대도(북경)로 옮기고 국호를 원(元)으로 바꾸고 남송을 정복하여 중원을 통일하였다.
 
우리 답사단 일행은 수흐바타르 광장 방문 기념사진을 찍었다. 많은 몽골인들도 수흐바타르 광장을 메웠다. 마침 그들의 일부 몽골인들은 결혼식 후 신랑·신부와 축하객들도 함께 수흐바타르 광장에 와서 결혼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들 몽골인 남녀 복장은 화려한 전통적인 몽골 의복을 입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신기하여 이들의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까지 사진을 찍었다.
 
이윽고 답사단은 동쪽의 박물관에 입장하였다. 박물관 입구 뜰에는 여러 마리의 사슴을 그려 놓은 사슴돌 비석을 볼 수 있었다. 박물관은 몽골 역사의 시대별로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토기, 도자기, 청동기 유물, 바위그림, 적석총, 지도, 근현대의 사진, 도서 등을 비치하였다. 박물관을 나와서 버스를 타고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열려진 몽골의 양털로 짠 캐시미르 상점에서 선물용 목도리를 몇 개 구입하였다.
 
복드칸 궁전박물관은 1911년 청으로부터 독립한 후 왕위에 오른 ‘복드 칸 지브준담바’(1869~1924)가 거처한 왕궁을 박물관으로 만든 곳이다. 그가 왕후인 ‘돈도그두람’과 같이 거처한 흔적들과 의복 및 왕 부부의 좌상의 모습을 탱화처럼 그린 초상화가 돋보였다. 또한 궁전의 건축물인 정문, 내문, 본전의 건축이 매우 아름다웠다. 그리고 자연사 박물관에서 공룡 전시실을 본 후 라마교의 사찰인 ‘간등사’를 관람하였다.
 
특히 몽골에서 잘 알려진 이태준(李泰俊) 기념공원을 방문하였다. 이태준은 1883년 11월 21일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여, 1911년 세브란스의대를 졸업하였으며, 1914년 울란바토르에 와서 동의의국(同義醫局)을 개설하여 당시 의료시설이 빈약한 몽골인들에게 의술을 베풀고 질병퇴치에 앞장섰다. 그 후 이태준은 그의 공적이 인정되어 1919년 5월 21일 몽골 국왕으로부터 ‘에르덴오치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더구나 이태준은 상해임정의 항일투쟁과 의열단 활동에도 참여한 애국지사였다. 그러나 1921년 몽골에 침입한 러시아 백위파 대장인 운게른 스테른베르크(Ungern-Sternberg, 1985~1921) 부대에게 피살당하니 그의 나이 38세였다. 우리 답사단은 그의 묘 앞에서 묵념을 올리고, 기념비 등 오천평 정도 크기의 기념공원을 둘러보았다. 다만 이곳도 도시의 발전이 확대되어 기념공원 앞뒤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었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이 정도의 이태준 애국지사의 기념공원이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웠다. 이태준이라는 인물은 우리나라와 몽골 간의 우의(友誼)를 맺는 가교 역할을 훌륭히 할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답사단은 10박 11일간의 몽골알타이 답사를 무사히 마치고 이 날 오후 9시 15분 대한항공기에 탑승하여 귀국했다.
【작성】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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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