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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정보
◈ 종로구의 역사문화자원
종로구는 조선왕조의 도읍지로 궁궐과 국가적 시설물이 건립된 이래 현재까지 600여 년간에 걸친 한 나라의 수도로서 기능을 하는 특수성을 띤 곳이다. 삼국시대 이래로 백제의 주거지, 신라 진흥왕의 북한산순수비, 장의사지 당간지주와 고려시대 왕들이 행차하였던 승가사와 문수사 등 많은 역사 유적이 분포되어 있다.
목   차
[숨기기]
 

1. 역사문화자원

 

1.1. 역사적 사건과 현장

◈ 600년 수도의 중심지
종로구는 조선왕조의 도읍지로 궁궐과 국가적 시설물이 건립된 이래 현재까지 600여 년간에 걸친 한 나라의 수도로서 기능을 하는 특수성을 띤 곳이다. 삼국시대 이래로 백제의 주거지, 신라 진흥왕의 북한산순수비, 장의사지 당간지주와 고려시대 왕들이 행차하였던 승가사와 문수사 등 많은 역사 유적이 분포되어 있다. 특히 종로구는 조선시대와 일제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로서 기능하고 있다.
 
◈조선왕조의 영욕
1394년 한양천도로부터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의 궁궐과 각종 이궁이 건립되었고, 종묘와 사직 및 도성 문묘와 성균관 등이 축조되었다. 지금의 세종로, 종로, 남대문로에 해당하는 육조거리와 운종가에 국가 상징도로가 개설되었으며, 생활하수의 통로격인 개천이 청계천이라는 이름으로 경영되어 준천공사가 이루어졌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궁궐 등 도시시설이 불에 타고, 인명이 살상되며 초근목피로 생명을 연장하면서 겨우 수천 명이 머무는 폐허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1860년대에는 경복궁의 복원을 보게 되었다.
 
조선 후기 장동(안동) 김씨의 외척정치 60년의 본거지도 오늘날 종로구 청운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대원군의 정치권력도 운니동 운현궁을 중심으로 행해졌다. 그리고 고종 연간의 민씨 척족정치의 중심 무대도 경운동 일대를 비롯한 종로구 지역이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의 현장이 종로구이며, 갑오개혁으로 홍범14조가 발표되고,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경복궁 건청궁에서 시해되었으며,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가 운종가에서 개최되는 등 조선왕조 500년 역사의 흔적이 모두 종로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은 경복궁, 창덕궁, 경희궁, 종묘, 문묘 등에서 이루어졌으며, 오늘날 광화문거리, 세종로, 종로 그리고 북촌과 동촌 등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 일제와 총독부
순종이 황제에 올라 창덕궁에 유폐되어 동물원, 식물원, 박물관 등이 꾸며지고, 일제의 강점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이 경복궁의 외조공간에 위협적으로 건립되었으며, 시정 5주년 기념 공진회라는 이름으로 경복궁의 주요 건물이 철거되고, 경희궁과 사직단 등 많은 국가 상징의 건축물들이 훼손되었다. 이에 우리 민족은 3·1운동과 6·10만세운동 등으로 민족의 자존을 꾀하였으니, 그 운동의 중심이 탑골공원을 비롯한 종로 지역이었다. 동아일보 등 민족지가 발간된 곳도 종로구이다. 뿐만 아니라 일제의 식민통치행위에 의한 가혹한 민족시련의 현장이 되기도 하였다.
 
 

1.2.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김홍집 1842(헌종8)∼1896(건양1)
노사신 1427(세종9)∼1498(연산군4)
맹사성 1360(공민왕9)∼1438(세종20)
민영익 1860(철종11)∼1914
민영환 1861(철종12)∼1905(광무9)
박규수 1807(순조7)∼1876(고종13)
박제가 1750(영조26)∼1815(순조15)
강세황 1713(숙종39)∼1791(정조15)
권근 1352(공민왕1)∼1409(태종9)
변계량 1369(공민왕18)∼1430(세종12)
권율 1537(중종32)∼1599(선조32)
권중화 1322(충숙왕9)∼1408(태종8)
김 류 1571(선조4)∼1648(인조26)
성석린 1338(충숙왕 복위7)∼1423(세종5)
유득공 1749(영조25)∼?
유홍기 1831(순조31)∼?
김조순 1765(영조41)∼1832(순조32)
윤치호 1865(고종2)∼1945
이광수 1892∼?
정선 1676(숙종2)∼1759(영조35)
이덕형 1561(명종16)∼1613(광해군5)
정인지 1396(태조5)∼1478(성종9)
이수광 1563(명종18)∼1628(인조6)
이시영 1869(고종6)∼1953
지석영 1855(철종6)∼1935
채제공 1720(숙종46)∼1799(정조23)
최명길 1586(선조19)∼1647(인조25)
한규설 1848(헌종14)∼1930
이항복 1556(명종11)∼1618(광해군10)
황희 1363(공민왕12)∼1452(문종2)
 
 

1.3. 내 고장의 문화유산

종로구의 문화유산은 백제의 위례성, 삼국시대의 쟁패지, 고려의 남경과 한양부, 조선왕조의 도읍지와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로의 기능을 엿볼 수 있는 많은 문화유산이 남아있어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실정이다. 여기서는 조선왕조의 도읍지로서의 기능을 담당했던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조선조의 궁궐과 관아
종로구에는 조선왕조의 도읍으로서 갖추어야 할 도시시설이 집중되어 있다. 조선왕조 전기·중기·후기를 걸쳐 이룩된 5대 궁궐 가운데 경복궁을 비롯하여, 창덕궁·창경궁·경희궁 등 북궐·동궐·서궐이 위치하고 있으며, 봉건국가의 상징물인 종묘와 사직단이 정궁의 동·서에 자리잡고 있다. 그 외에 궁궐의 궁성과 도성의 동·북·서쪽이 관방 기능을 하고 있으며, 궁궐 좌우와 전면에 의정부와 육조를 비롯한 각종 관아들이 위치하였다. 이들 관아건물은 식민통치와 근대도시로 탈바꿈하면서 철거되고 전쟁으로 파괴되었지만 종친부와 삼군부, 총무당, 청헌당 등은 다른 지역으로 이전되어 있으며, 관아유지에는 표석을 설치하여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 조선조의 교육기관
성균관·문묘·숭문원·중학·동학이 위치하고, 관상감, 전의감, 도화서 등 각종 기술교육기관이 위치하였다. 이로써 조선왕조를 유지하는 관료의 인적 자원을 배출하고 인, 의, 예, 지의 통치이념을 연구 실천케 하여 국가유지의 윤리사상을 창출하고 문한지임을 담당케 하였다.
 
◈ 조선조의 시장
육의전으로 대표되는 시전이 위치함으로써 조선왕조의 경제생활의 중심지를 형성하였다. 종로 네거리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연화방(종로4가 일대), 서쪽으로 혜정교(종로1가 교보빌딩 뒤), 남쪽으로는 훈도방(을지로2가), 북쪽으로는 안국방(견지동 일대)에 이르기까지 긴 행랑이 설치되었다. 여기에서 비단, 면포, 모시, 종이, 청포, 어물 등 육의전을 중심으로 각종 물화가 매매되고 궁중과 관아에 물품을 납품하는 어용상인 조직으로서 시전이 자리잡았고, 이를 관리하는 평시서(경시서)가 위치하였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도고사상(都賈私商)이 상세를 확장하며 이현시장을 형성하면서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운종가를 이루었다. 따라서 인원 동원이 필요한 국가적 행사나 집회 및 국가의 조칙을 공고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고, 척화비와 인정과 파루를 알리는 종루가 설치되기도 하였으며,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으로 좌·우포도청과 의금부가 위치하였다.
 
◈ 우리나라 도로의 중심
궁궐을 중심으로 도성 내 수계에 따라 형성된 도로망으로 폭 56척의 대로가 오늘날 세종로, 종로, 남대문로, 신문로로 정착되어 있는 것과 같이 도성의 4대문과 4소문으로 이어지는 전국 도로망이 하나로 모이고 있어 인구와 문화의 중심 집산지로서 기능하였다. 지금도 한성부 중심표석이 인사동 하나로 빌딩 옆에 있으며, 조선시대 도로의 중심은 창덕궁 돈화문이었고, 일제시기 이래 현재는 광화문 네거리가 되고 있다.
 
◈ 양반관료의 집중주거지
전조후시와 좌묘우사의 전통적인 도시설계가 이루어짐으로써 청계천 수계와 북악의 산줄기에 따라 5부 52방의 행정구역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구획은 신분제 사회에 있어서 직주근접(職住近接)의 원칙에 따른 지역에 따라 주민 배치가 이루어지게 하였다. 따라서 종로지역은 궁궐과 중앙관아의 집중으로 양반관료의 주거 집중지로서 권세가들이 모여 사는 북촌 즉 ‘윗대’를 형성하였다. 따라서 어의궁, 순화궁, 창의궁, 운현궁, 안동별궁, 무계정사, 석파정 등 왕실관련 주거·휴식공간과 육상궁으로 대표되는 칠궁과 경모궁, 누동궁 등 사묘(祠廟) 공간이 위치해 있다. 또한 백세청풍(百世淸風)과 증주벽립(曾朱壁立), 청송당유지(聽松堂遺址), 운강대(雲江臺)의 암각글씨가 전하는 김상용, 김상헌 후손의 장동 김씨 외척세력이나 송시열 성수침 조원의 주거지, 기타 정도전, 이이, 이완, 이항복, 권율, 성삼문, 성석린, 맹사성, 박지원, 김옥균, 신광한, 박규수, 서광범, 지석영 등 수많은 인물들의 주거공간이 위치하고 있어 그 일부 유적이 확인되며, 유적이 없는 곳은 표석 설치로 홍보하고 있다.
 
◈ 뒷골목 문화의 형성
관아와 시전이 배치된 시가지에는 양반관료, 하급관인, 시전상인, 공장(工匠), 노복 등이 혼재하면서, 서로 다른 신분을 의식한 생활양태가 연출되었다. 그 예가 뒷골목 문화이다. 즉 왕을 비롯한 삼정승, 육판서 등의 고위 관인들이 대로로 통행하는데 비해, 낮은 신분의 사람들은 이를 의도적으로 피하여 뒷골목에 피마(避馬)골이 형성되었고, 여기에 목로주점과 장국밥집 나아가 각종 유흥 음식점이 상호 필요에 의해 자리하게 되어 마치 자연 생태계의 먹이사슬처럼 얽혀져 독특한 생활문화를 형성하였다.
 
◈ 종교의 중심지
오늘날 탑골공원 터에는 고려시대 흥복사가 있었고, 세조 때는 원각사를 건립하는 등, 국가차원에서 숭유억불정책을 추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성부 중심지에서 불교 중심지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왕조에 의한 불교정책 또한 종로지역에서 추진되었음을 알 수 있고, 그 전통이 계승되어 조계사 등 현대 한국 불교의 중심이 종로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말기를 전후하여 천도교회당, 개신교의 새문안교회와 승동교회 등이 자리하여 종교 중심지로도 기능하였다.
 
 

1.4. 종로구의 문화재

■ 국보
 
■ 보물
흥인지문 제1호
원각사비 제3호
문묘 제141호
서울동묘 제142호
사직단 정문 제177호
 
■ 사적
서울성곽 제10호
서울사직단 제121호
서울문묘일원 제143호
칭경기념비 제171호
우정총국 제213호
함춘원지 제237호
경희궁지 제271호
서울대 본관 제278호
구 공업전습소 제279호
중앙고교본관 제281호
중앙고교서관 제282호
중앙고교동관 제283호
관상감관천대 제296호
탑골공원 제354호
 
■ 천연기념물
◈재동 백송 제8호
◈수송동 백송 제9호
◈문묘 은행나무 제59호
◈삼청동 등나무 제254호
◈삼청동 측백나무 제255호
 
■ 중요민속자료
◈국사당 제28호
 
■ 유형문화재(시 시정)
◈정업원구기 제5호
◈종친부 제9호
◈동십자각 제13호
◈홍화문 제19호
◈무계정사 제22호
◈대원군별장 제23호
◈석조여래좌상 제24호
◈황학정 제25호
◈석파정 제26호
◈선희궁지 제32호
◈홍지문 및 탕춘대성 제33호
◈천도교중앙대교당 제36호
◈삼청동병기고 제51호
◈탑골공원팔각정 제73호
◈동산 김양보호성공신록 제87호
◈상설고문진보대전 제88호
◈오운정 제102호
◈침류각 제103호
◈태종왕지윤림분2장 제107호
◈안양암석감마애불관음보살상 제122호
◈아미타삼존괘불탱화 제123호
 
■ 문화재자료(시 지정)
◈박노수가옥 제1호
◈이준구가옥 제2호
 
■ 기념물(시 지정)
◈세검정 제4호
◈이화장 제6호
◈보신각지 제10호
 
■ 민속자료(시 지정)
◈보현산신각 제3호
◈선바위 제4호
◈윤응렬가 제12호
◈백홍범가 제13호
◈가회동 산업은행관리가 제14호
◈민익두가 제15호
◈김승현가 제19호
◈김종국가 제21호
◈백인제가 제22호
◈윤보선가 제27호
◈김상협가 제28호
◈홍종문가 제29호
◈김형태가 제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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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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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