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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 (목치)
부산광역시 중구 정보
◈ 중구의 역사문화자원
◈ 역사적 사건과 현장 - 초량왜관 / 한국동란의 애환이 깃든 곳 / 지도를 바꾼 부산항 매축 / 부마민주항쟁의 진원지 / 6월 민주항쟁과 개헌선언
◈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최초의 부산 상공인 박기종(1839∼1907) / 백산상회와 안희제(1885∼1943) / 한국 최초의 영화 주연배우 이주경(1900∼1938) / 부산경찰서장에게 폭탄을 던진 의열단 박재혁(1895∼1921)
◈ 내 고장의 문화유산 - 용두산공원 / 구 아메리칸 센터 / 백산기념관 / 약조 제찰비(지방기념물 제17호) / 척화비 (지방기념물 제18호)
목   차
[숨기기]
 

1. 역사문화자원

 

1.1. 역사적 사건과 현장

◈ 초량왜관
중구는 초량왜관(1678∼1876)이 설치되면서 왜인들의 거주지가 되어 용두산을 중심으로 하여 행정관서인 동관(동광동 쪽)과 동대청, 중대청 등이 있는 서관(신창동 쪽)이 있었으며 일본사신을 맞이하여 동래부사나 부산첨사가 연회를 베풀던 연향대청이 있었는데(지금의 동남초등학교 자리) 동래 사람들의 세금으로 이를 짓고 보수하였다.
 
◈ 일제 강점 이후 항거 왜인들은 그들의 근거지를 영주동과 보수동 부민동으로 넓혀 나갔고 조선인들의 거주지는 이들 조차지 밖으로 제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용두산 정상으로 그들 일본인의 조상 아마데라스 오호가미(天照大神)를 모시는 용두산신사를 두기도 하였다.
 
해방후 신사는 철거되고 전관 일본인 거류지는 조선인의 손으로 넘어와 현재의 중구 중심을 이루는 광복동, 남포동, 대교동, 중앙동 등으로 탈바꿈했다.
 
◈ 한국동란의 애환이 깃든 곳
한국동란이 일어나면서 용두산을 중심으로 한 대청동, 보수동, 영수동 일대는 피난민들의 판자촌으로 발 디딜 틈이 없게 된다. 그리고 이들 이산가족의 막연한 기다림은 유명한 영도다리에서의 기약 없는 만남을 낳게 되고 영도다리 근처는 이들을 노리고 운집한 점쟁이 골목으로 변하기도 하였다. 물밀듯이 모여든 피난민들이 생계를 위해 더러는 암거래 군수물자들을 내다 파는 ‘얌생이꾼’으로 둔갑하고 이들 잡상인들로 인해 자갈치시장이 형성되고 국제시장이 들끓게 된다. 1954년 말에 피난민 판자촌에 일어났던 큰불로 판자촌은 거의 불타고 엄청난 화재민을 내기도 했으나 이로 인해 용두산은 지금의 공원 모습을 되찾게 된다.
 
◈ 지도를 바꾼 부산항 매축
부산항은 초량왜관 시절부터 선창으로 쓰이던 곳을 중심으로 한 산기슭 언저리로 평지가 너무나 비좁아 현대적으로 발전된 항만으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개항 후 일본은 우리 정부의 허가를 얻어 남항과 북항에 대대적인 항만매축계획을 수립하고 1902년 북항 매축을 시작으로 1938년에는 충무초등학교와 완월동 일대에 이르는 남항매축공사를 준공하여 명실공히 국제무역항구로서 개방되기에 이르렀고 항만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부산항의 기능을 제대로 만들어 놓은 매축공사는 어디까지나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경제수탈과 나아가서는 한반도 침략과 대륙침략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에 그 숨은 뜻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매축과 함께 경부선이 개통되고 전찻길이 놓이게 되나 일본 통신사가 오고 갔던 영가대(永嘉臺)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 부마민주항쟁의 진원지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생이 중심이 되어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민주항쟁은 18년 동안 군사정권에 짓눌려 있던 시민들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으로 진압 경찰차와 경찰버스(일명 닭장차)를 뒤집고 불태우며 23곳의 파출소를 습격하는 사태로 치달았다. 그리고 18일에는 부산지역에 내린 비상계엄령이 무색하게 마산에서도 이에 힘입어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으니 이를 부마항쟁이라 부른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독재를 반대하던 민주화운동의 최고정점인 이 부마항쟁은 언론통제로 보도조차 되지 않았으며, 뒤이어 일어난 광주항쟁에 맞물려 그 실상과 결과가 희석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박대통령의 시해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된다.
 
◈ 6월 민주항쟁과 개헌선언
부산혜광고등학교 출신인 서울대생 박종철군의 고문치사 이후 1987년 2월부터 6개월간 부산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민주항쟁이다. 이 항쟁은 민정당 대표 노태우의 개혁선언으로 이어진다.
 
 

1.2.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최초의 부산 상공인 박기종(1839∼1907)
부산항 개항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기업인 「기선회사」를 설립하여 해운업 개척자가 되었으며 영주동에 「개성학교」를 설립하여 신교육의 개척자이면서 부산과 하단과의 철도회사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그는 좌천동에서 태어났으나 그의 활약상은 중구지역인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전국 규모의 웅대한 사회개혁 사업이었다. 어려서 받은 서당교육이 전부인 박기종은 영주동 쌍악 언저리의 논치어시장을 경영하면서 30대 후반에는 이미 부산에서도 크게 이름난 갑부로 성장해 있었다.
 
그의 유창한 일본어는 통사 역할을 하면서 서구문물을 배우고 부(富)를 키우며 선각자의 길을 걷게 한다. 비록 일본인의 농간에 밀려 제 손으로 철로를 한치도 깔아보지 못했으나 한국철도사업 개척자로 우리나라 철도사에 길이 남게 된다.
 
◈ 백산상회와 안희제(1885∼1943)
개항 후 부산상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일본사람들과 그들의 경제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의령사람 백산 안희제는 동광동에 백산상회를 연다. 그리고 이곳을 독립운동투사들의 연락처로 제공하면서 독립운동 투쟁자금을 조달하는 비밀아지트로 삼았다.
 
1919년에는 자본금 1백만 원의 백산무역주식회사로 발족시키고 기미육영회도 조직하여 뜻있고 유망한 젊은이들을 해외로 유학시켜 내일의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감시와 박해가 심해지자 회사경영과 무관한 지출원인 독립운동자금 조달로 말미암아 백산무역주식회사는 1927년 해산되고 말았다. 안희제의 교육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구포 지주인 윤상열을 설득하여 구포에 구명학교를 설립하고 부산진 공립보통학교와 영도 공립보통학교를 설립하였으며 만주로 건너가서는 발해학교를 설립하기도 한 교육자이기도 하다.
 
◈ 한국 최초의 영화 주연배우 이주경(1900∼1938)
초량에서 태어나 부산공립보통학교(부산상고 전신)에서 야구선수로 이름을 드날린 이주경은 능변가인 데다 사교성이 뛰어났다. 또, 당시 부산에서 당구솜씨가 첫째가는 명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발족한 동광동 5가의 조선키네마주식회사는 한국영화의 요람으로 군림하면서, 훤칠한 키에 인물 잘 생기고 한창 야구선수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이주경을 주연배우로 맞아 들여 최초의 영화 「해(海)의 비곡(悲曲)」을 제작하여 힛트를 친다.
 
그러나 이듬해 일본인 설립자들끼리의 갈등으로 영화사는 문을 닫게 되어 이주경은 1년 짜리 주연배우로 남게 되나 사나이 이주경은 말술의 호주가이면서 통국수 132그릇도 거뜬히 비우는 술고래이자 대식가였고 열혈 청년이었다.
 
◈ 부산경찰서장에게 폭탄을 던진 의열단 박재혁(1895∼1921)
3·1독립운동이 있은 이듬해 1920년 9월 2일 용두산 동남쪽 기슭의 부산경찰서에 폭탄이 투척되어 경찰서장이 사망하고 일본 경관들이 혼비백산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박재혁의사가 던진 폭탄사건이었다. 좌천동에서 태어나 부산상업학교를 졸업한 박의사는 사업차 건너간 중국상해에서 독립투사들을 만나 사업을 팽개치고 항일투쟁을 할 것을 결심하였다. 귀국하여 중국고서상으로 변장, 부산경찰서장을 만나 독립투사를 붙잡아 괴롭힌 사실을 꾸짖고 폭탄을 던진다. 사형언도 후 그는 일본인의 교수대에 설 수 없다고 단호히 자진, 절명한다. 순사(殉死)한 박재혁의사의 유해가 부산역에 도착되었을 때 부산역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박의사의 의로운 죽음을 애도하였다.
 
 

1.3. 내 고장의 문화유산

■ 기념물
◈ 약조 제찰비(지방기념물 제17호)
부산시립박물관 소장. 왜관의 경계지점에 5가지 금지조항을 새긴 비로, 원래는 초량왜관이 있던 용두산공원에 있었다.
 
◈ 척화비 (지방기념물 제18호)
부산시립박물관 소장. 원래 부산진성터에 세워져 있던 것을 용두산 공원으로 옮겼다가 시립박물관으로 옮겼다.
 
■ 비지정 문화유산
◈ 용두산공원
동광동 2가 이순신장군 동상, 4월 민주혁명 희생자 위령탑, 백산흉상 등
 
◈ 구 아메리칸 센터
대청동 2가 24-2, 일제시대 동양척식회사 지점으로 건립, 해방 이후 미국문화원 및 영사관으로 활용 후 1999년 우리 정부로 반환됨.
 
◈ 백산기념관
동광동 3가 10, 백산 안희제 선생의 항일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백산상회 자리에 설립함.
 
◈ 새마당매축비
중앙동 4가 49, 정석빌딩. 새마당매축에 관한 내력을 새겨 넣은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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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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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