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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안산시 경기도 안산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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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 (목치)
경기도 안산시 정보
◈ 안산시의 생활문화자원
◈ 전통생활민속 - 대원군과 와리농악, 둔배미놀이 / ◈ 구전설화 - 목내동의 관우물(棺井), 민(閔) 대감과 한명회 / ◈ 지역의 토산품과 특산품 - 대부포도, 방자유기
목   차
[숨기기]
 

1. 생활문화자원

 
 

1.1. 전통생활민속

◈ 대원군과 와리농악
현 안산시 와동(瓦洞)에서는 예로부터 풍물놀이로 농사일을 즐기며 전통생활민속으로 자리잡은 유래가 있다.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에도 농악대의 신명나는 한마당으로 길흥을 빌며 살았다.
 
생성된 유래는 확실치는 않으나 대원군(大院君)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 와상리에서는 「와상리 노역부대」라는 깃발을 앞세우고 참여해서 칭송이 자자해 격려품으로 농기와 농악 한 벌을 나라로부터 하사 받은 것으로 보아 매우 오래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후 계속해서 농사철만 되면 대원군으로부터 하사받은 농기(農旗)를 앞세우고 일을 했으며 오늘날에도 「와리풍물놀이」로 보존 전승되고 있다
 
◈ 둔배미놀이
안산시 초지동의 둔배미 마을과 신길동 능길마을에서 행하여지던 생활민속으로 둔배미 어부들이 고기를 잡으러 나가기 전에 올리던 당고사와 배를 타고 나가고 들어올 때 부르던 배치기소리, 그리고 능길마을 사람들이 논을 맬 때 부르던 농요(논매는 양산도, 얼럴럴상사디야)가 어우러지는 놀이이다. 특히 배치기소리는 경기도 내에서 유일하게 보존 전승되는 경기배치기 소리이다.
 
 

1.2. 구전설화

◈ 목내동의 관우물(棺井)
목내동은 능안으로 알려져 있다. 그곳에는 관우물(棺井)의 전설이 있다. 본디 능안에는 소릉(昭陵)이 있으며 현덕왕후 권씨를 모셨던 자리다. 현덕왕후는 단종(端宗)의 어머니이자 문종(文宗)의 비(妃)인데 세조(世祖)가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뒤 단종을 죽이고 소릉마저 폐지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덕왕후의 관은 파내기도 힘들었고 이를 바닷물에 띄워 버렸는데도 떠내려가거나 가라앉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를 두고도 꺼내서 다시 묻어주는 이가 없이 방치되던 터인데 어떤 순박한 농민이 은밀히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고 한다. 그 후 꿈에 현덕왕후가 나타나 고마움을 표시했고 그의 집안은 번창해서 잘 살았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중종(中宗) 때에 이르러 현덕왕후 권씨의 복위가 결정되었으나 시신(屍身)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한편 현덕왕후의 관을 묻어주었던 농부의 후손은 그때서야 묻힌 곳을 관원에게 알려주어 다시 찾게 되었는데 지금은 구리시 동구릉으로 이전되어 잘 보존되고 있다.
 
한편 그 바닷가는 육지가 되고 떠내려보낸 관이 돌아와 닿았던 자리는 우물이 생겨 ‘관우물’이란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현재는 그곳이 반월공단 일신산업주식회사 부지로 그 자리엔 표석(標石)만이 세워져 옛일을 말하고 있다.
 
◈ 민(閔) 대감과 한명회
안산시 팔곡동(남산뜰)에 살고 있던 민대감은 하인을 거느리고 충청도 청주로 길을 떠나게 되었다. 가던 길에 어느 주막집에서 하룻밤을 쉬고 가게 되었는데 마을에 들어서니 큰길 가운데서 두서너명의 소년이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소년이 길을 막고 “우리는 지금 성을 쌓고 있으니 길을 돌아 가십시요”라고 했다. 민대감은 하도 기가 막혀 큰기침을 하고 되물었다.
 
“너희들은 지금 길을 막고 놀이를 하고 있질 않느냐?”
 
“아닙니다. 저희들은 적의 침범을 막기 위해 성을 쌓고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돌아 가주세요.”
 
민대감은 처음엔 대수롭지 않은 어린이들의 놀이라고 생각했다가, 그들의 자못 진지한 모습에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민대감 일행은 샛길로 돌아 주막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이튿날 그 아이들의 내력을 살펴보니 그 중의 한 소년이 한씨 문중의 소년 한명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을 다 보고 돌아오는 길에 청주의 한씨댁을 찾아 한명회를 양자로 삼을 것을 간청하자 부모가 이를 허락해서 데리고 와서 잘 키웠다.
 
민대감은 자식이 없는 터라 한명회를 남에게 주기를 꺼려했다. 그래서 데릴사위를 삼기로 하고 잘 가르쳤다. 후에 그는 수양대군을 도와 좌부승지, 도승지가 되고 이조판서와 영의정까지 이르는 벼슬길에 올랐다. 그가 죽은 후에 남산뜰에 묻혔다고 전한다.
 
 

1.3. 주민의 종교생활

우선 언급해야 할 것은 샤머니즘이다. 기원은 단군신화까지 유추할 수가 있다. 또한 불교와 유교도 우리의 샤머니즘에 영향을 끼쳤다. 일제(日帝)는 미신타파라는 미명 아래 우리 민족종교를 탄압 내지 말살하려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8·15 해방이후 샤머니즘은 민족전통예술의 차원에서 재조명 받게 되었다. 안산은 신도시 개발과 더불어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민족신앙의 계승, 유지, 발전이 이루어졌는데 잿머리성황제가 대표적이다.
 
다음으로 유교(儒敎)를 들 수가 있는데 향교를 통해 맥이 이어지고 있다. 불교(佛敎)는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등 5개 종파가 화림선원, 고려선원, 청룡사 등 28여 개 사찰을 중심으로 신도수는 1천 6백 명이다.
 
원불교(圓佛敎) 안산교당은 안산시 원곡동에 위치해 있는데 교도수는 1천 3백 명에 이른다.
 
천주교(天主敎)는 공소시대를 거쳐 현재는 수암성당을 비롯하여 9개소가 있다. 신도수는 3만명이 넘는다. 성직자수는 24명이다.
 
기독교의 역사는 113년이 된다. 유서가 깊은 교회는 1907년에 세워진 천곡교회(샘골교회)를 들 수 있다. 이 교회에서는 1931년 최용신 선생이 농촌계몽운동 지도자로 살면서 샘골학원을 세우는 등 교세가 날로 확장되었다.
 
현재는 장로교 299, 감리교 87, 성결·침례교회가 각각 32, 순복음교회가 10, 기타 16개소 등 4백76개소가 있다. 성직자수는 754명이나 된다.
 
 

1.4. 지역의 별미음식

 
옛부터 안산지역은 서해안 바다를 인접하고 살아온 터라 별미음식으로는 해산물이 주종을 이룬다. 현재도 대부동 일대에서는 조개, 바지락 등 패류와 낙지, 쭈꾸미 등이 많이 잡힌다. 따라서 안산시에서는 1999년에 조개칼국수, 2000년에는 쭈꾸미를 주재료로 한 여러 가지 음식을 집중 개발해서 내고장 향토음식으로 정착시켰다. 예컨대 쭈꾸미 강회, 쭈꾸미 숯불구이, 쭈꾸미 전, 쭈꾸미 무침 등이다.
 
 

1.5. 지역의 토산품과 특산품

◈ 대부포도
안산시의 농경지는 신도시 개발사업으로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따라서 골고루 생산되던 농작물도 외지에서 생산되는 것을 구입해서 생활한다. 다행히 대부동 일대에서는 신품종의 당도 높은 포도를 재배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1996년부터 대부포도축제가 열려 관광상품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 방자유기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방자유기장 이봉주씨가 안산시 성곡동에서 ‘납청유기’라는 공방을 운영하며 징, 꽹과리를 비롯한 농악기와 각종 그릇류의 방짜유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경기도 안산시 정보
• 안산시의 역사문화자원
• 안산시의 생활문화자원
• 안산시의 예술문화자원
(2005.06.1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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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